미용실에서도 말이 안 통하는데

다른 관계는 어떻겠어요.

by 영순

여자는 미용실에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말할 때,

측정 장치가 모두

몸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어깨까지요.

귀밑 3센치요.

눈썹까지요.


하지만, 남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전적으로 언어에 의존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남성들 머리 스타일이다.

스포츠 머리도 아니고,

장발도 아니다.


그런데 언어에 의존해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수십년을 그래왔다.


얼마전, 5년간 다니던 미용실이

문을 닫으면서,

나는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문득

소통이 되지 않아

이상한 헤어스타일이 되었던,

지난 날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1. 단정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다 아는 것처럼

"네~"라고 당당하게 말해놓고는

너무 짧게 깎아버린다.




2. 너무 짧지 않게 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다 아는 것처럼

"네~"라고 말해놓고는

약간씩 다듬기만 하고 끝내버린다.




3. 좀 짧게 해주시되,

길지는 않게 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다.

이런 경우는

짧지도, 길지도 않게 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수시로 물어본다.

수시로 물어보며 확인하기에,

성공 확률이 가장 높다.




4. 제가 보통 3주가 머리 깎는 주기거든요.

긴 만큼 단정하게 잘라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3주 동안 얼마나 기는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냥 단정하게 하면 되죠?"

라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단정'은

사람마다 모두 다른데 말이다.




5. 제가 자고 일어나면

옆머리가 뜨거든요.

너무 하얗게 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면,

하얗게는 안 치는데,

너무 위로 올려 깎아놔서

머리가 뜬다.




6. 제가 자고 일어나면

옆머리가 뜨거든요.

너무 하얗게 치지 마시되,

위로 올려치지도 마세요.


이렇게 말하면,

이젠 밑에만 약간 다듬어서,

머리가 동그랗게 된다.




수십년간 머리를 깎으면서,

새로운 미용실에 가게 되었을 때,

실패하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3주 주기로 자르는데요.

옆머리가 자고 나면 뜨기 때문에,

너무 하얗게 치지도 마시고,

너무 올려치지도 마시구요.

머리는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게

단정하게 잘라주세요.


그런데, 이렇게 말해도,

단정의 기준이 다르고,

짧고 긴 것에 기준이 달라서,

모두 다르게 잘라 놓는다.


휴.....




내가 미용실을 고르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3번 정도 갔을때,

내가 요구하기 전에,

"전처럼 잘라드리면 되죠?"

라고 하고,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알아서 해줄때.


난 이러면 10년이고, 20년이고 간다.




사람 사이의 소통도 이런게 아닐까?


미용실에서 그 간단한 몇 마디,

"짧지 않게,

길지 않게,

너무 하얗지 않게,

너무 올려치지 말고,

단정하게."


이것도 수도 없이 서로 조율해야 하고,

말해야 하는데,

사람 사이의 대화는 어떻겠는가.


가족, 친구, 직장 동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 마음과 생각을

충분히 털어놓고 지내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고,

내가 그럴 성격도 못되고,

상대도 그런 성격이 아니다.

그렇게 나 혼자 생각하고,

미루어 짐작하고, 판단하고,

나 혼자 배려하고, 최선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갈등이 생기며, 관계가 망가진다.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대화를 해야 한다.


난 이 말도 틀렸다고 본다.


말을 해도, 서로 생각하는 기준,

판단기준, 해석 방식이 모두 다르므로,

결국 서로를 이해시킬 수 없다고 본다.




그러니, 상대에게 상처받았다며

나 자신을 아프게 하기보다는,

결코 이해시킬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언어를 모르는 날아가는 새와 같다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같은 언어를 쓴다고,

대화를 했다고,

그것이 상대를 설득할 수 있거나,

상대에게 나를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니까.


내 입장을 충분히 이야기했음에도

오히려 나를 공격하고,

내가 잘못했다고 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말한다면,

우린 커다란 내상을 입게 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사람 사이에 대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건 아닐까?


이해는

'가슴으로'

'그냥' 하는 것이다.


미용실에서 난,

가끔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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