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해드렸습니다...
아침 8시 10분에 전화벨이 울렸다.
이른 시간에 누구지?
사실, 이 시간에는
거의 전화가 안오는데 말이다.
아버지였다.
내가 중년이니, 아버지의 나이를 짐작해보면,
그 나이 한국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대화와 통화는 뻔한거 아니겠는가.
그나마, 손자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통화시간이 길어졌지,
손자가 없을 때는 3분 넘게
통화하는게 불가능했었다.
그렇다고,오랜만에 통화에서
바로 끊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 불편한 대화를 피하려고,
아버지와 통화를 더 미뤘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도 나이가 드시니,
그런 어색한 남자들의 대화를
먼저 청하실 때가 있다.
내 걱정이 가슴에 차고 넘쳐서,
엄마나, 동생으로부터 충분한
이야기를 듣지 못할 때,
그때 겨우 카톡을 보내시는데,
그마저도 충분치 않으면,
가슴에 걱정이 터져버려서,
전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로부터의 전화는
1년도 넘은 것 같다.
내가 엄마, 아버지께
먼저 전화를 건 것도
2년 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근 몇년 동안 사업이 너무
고되고 힘들었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한 사업이,
바닥에서부터 시작한 사업이,
참 고단하고 힘들었다.
사업 외의 여러 일들도
나를 짓눌러 여전히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래서, 부모님께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전화해서 밝은 척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거짓말을 하며 잘 지낸다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설사,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부모는 거짓인걸 다 아니까....
부모님께 내가 힘든 것을 말 안해도
얘기하는 첩자가 한명 있는데,
바로 내 동생이다.
동생은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야기하는
큰 의지가 되는 존재다.
부모님 걱정하시니까 말하지 말라고 해도,
형은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동생도 버티다 버티다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말하는가보다.
이런 정보의 부재로
걱정이 흘러넘치면,
그제서야 카톡을 보내신다.
괜히 걱정할까봐, 신경쓸까봐
조심스럽게 보내는 카톡말이다.
그러다가,
견딜 수 없이 걱정이 커지면,
전화를 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이 그런 날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많이 힘드냐고 물으셨다.
눈물이 날 것 같고,
목소리가 떨리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 큰 걱정 안하실 것으로
고르고 골라서 작은 것만
몇개 말씀드렸다.
그래도, 부모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얼마나 힘들겠냐고.
얼마나 속상하겠냐고. 하셨다.
아버지도 많이 늙으셨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데,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울컥 눈물이 나고,
목이 메여서
더 통화를 하기 어려울 것 같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살갑고 끈끈한 부자관계가 아니었는데도,
부모도, 자식도 나이가 들다보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느껴진다.
오후에 갑자기 아버지로부터
다시 카톡 메세지가 왔다.
사업이 어느 정도 힘든지,
구체적으로 물으시는거였다.
들으시면 속상하기만 하시죠~ㅎㅎㅎ
제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너무 걱정마세요~
이렇게 답장을 했다.
"알았다오~"라는 답장이 오고
더 대화는 오고 가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얼마나 걱정을 하실까....
몇 시간 뒤,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먼저 카톡을 했다.
부모가 가장 가슴 아플때는,
자식이 고통받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때가 아닐까?
참두릅을 사달라고 했다.
참두릅을 참 좋아하는데,
봄철에 잠깐 나오고 들어가는게
늘 아쉬웠고, 마트는 너무 비쌌다.
당장 내일 새벽 시장에 가서,
사서 보낸다고 하신다.
참두릅이 이제 끝날 철이라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투가,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몇 시간 있다가 다시 메세지가 왔다.
내가 처한 상황이 금방 좋아지지 않을것이기에,
아버지의 걱정도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새벽 시장에 나가실 생각에,
적어도 오늘 하루는 마취가 되셨겠지.
내일 부치고 나서 잘받았는지 궁금해하고,
맛있게 먹었는지 궁금해하고,
맛있게 먹은거 같아 뿌듯해하고,
그렇게 일주일은 버티시겠지...
마음 아파하는 아버지께
내가 드릴 수 있는
마취주사와 일주일치 진통제 처방이다.
마취도 풀리고,
진통제도 다 떨어지면,
다시 고통스러워지시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