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합니다.
'관계'에 필요한
최소 인원은 2명이다.
한 때 나는,
어렸을 적 아버지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것들이 현재의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면,
당연히 원망, 상처, 분노라는
감정이 잇따른다.
비로소,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지는 순간이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나에게 상처를 주어
악영향을 미쳤을 때,
나 스스로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없는 무력한 나이
또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그 상처가 멈춰진 채,
수십년이 흘러서도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게 내버려두는 것은
명백히 나의 잘못이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것은
부모 잘못이지만,
가난한 채로 죽는 것은
내 잘못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선택할 수도 없고,
현명하게 대응할 수도 없었던,
상황, 환경, 나이였다고 해도,
오랜 시간이 흘러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것을 끌어안고 살면 안된다.
또 한 가지 생각해야 될 것은
상대가 A라는 행동을 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B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식을 기를 때,
자식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르친다.
나와 내 동생은
어기면 안되는 동일한 규칙을
아버지로부터 들었으나,
난 그것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고,
동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방향으로 했다.
나는, 아버지가 지키라고 한 것을
어겼을 때,
그것을 왜 지키지 않았냐고 말하는
아버지의 표정, 목소리, 어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싫었다.
절대로 그 길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세운 규칙은
평생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가슴 속에 화를 계속
쌓고 있었다.
동생은,
아버지가 세운 규칙보다
자신이 무엇을 더 하고 싶은가를
중심에 두고 행동했다.
설사 원칙을 어겨서,
아버지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져도,
잠시 그 순간에 머물렀다가
또 다시 자신의 삶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 속으로...
수십년이 흘러,
내 마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고,
동생에게는 그런 것이 거의 없었다.
같은 아버지에게서
같은 원칙으로 길러졌지만,
나와 내 동생이 아버지에게 느끼는
감정은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와 동생의 이야기를
따로 듣는다면,
같은 아버지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내가 부모에게,
또,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나의 책임도 절반인 것이다.
'관계'에 필요한 최소 인원인 2명에서,
내가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색깔은 달라진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이래서,
신혼초에 시부모가 이래서,
남편이 이래서,
아내가 이래서,
직장 상사가 이래서....
이런 말은 사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나와 상대방을 철저히 2분법으로 나누고,
나를 피해자로 만드는 말들이다.
나는 식물인간이 아니다.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언제나 나의 성격, 성향, 판단에 따라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살아왔다.
내 책임이 절반인 것이다.
일방적으로 당한 범죄가 아니라면,
내 책임이 절반이며,
당사자와 떨어져 살거나,
헤어진 상황이면,
그 문제와 관해 내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하는 몫은
100% 나의 것이다.
마음의 치유란
어디가서 받는 것이 아니라,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잘못된
피해자, 가해자 논리를
바로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