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입니다.
내 마음에 난 상처들을 누가 만들었는지
찾아내고 분석하는 것은
상처 치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 들어가면,
가해자와 피해자 프레임에 갇히게 되고,
그 사람의 태도나 말 하나 하나에
예민해지게 된다.
사과할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봐야 하고,
없다면 더 큰 상처를 받고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누가 상처를 주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그 사람이 내게 한 일들만을 생각하게 되고,
나는 거기에 멈춰서게 된다.
그의 인정과 사과를 받아야 치유가 된다면,
우리 상처 대부분은 치유되지 못한 채
남겨질 것이다.
진정한 인정과 사과를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섣부르게 자신의 상처를 말하고
사과를 요구했다가는
오히려, 역공에 빠질 수도 있다.
그게 왜 상처야?
니가 예민한거 아니야?
그럼 진작 말하지 왜 지금에서야 말해?
그걸 왜 내가 사과해야 해?
너 참 이상하다.
이렇게 2차, 3차 공격을 받고
내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버릴 수 있다.
상처의 치유는 안타깝게도
나의 몫이다.
쓰라리지만, 약을 발라야 하고
귀찮지만, 약을 챙겨먹어야 하고
불편하지만, 그 부위를 조심해야 한다.
상처가 났을 때,
치유를 위한 모든 행위가
오로지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상처를 받았을 때
더 이상 가해자가 누군지
그의 태도는 어떤지
사과할 의향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게 된다.
같은 공간에 있는 가족, 직장동료가
지나가다가 내 물건을 떨어뜨리면,
그는 즉시 그 물건을 주워서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
그렇게 한 것이 그 사람이고,
그것을 바로 잡는 사람도 그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이렇게 딱딱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 인생은 누가 한 짓인지도 모르는데,
깨진 창문을 갈아끼워야 하고,
무너진 담벼락을 다시 세워야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그렇게 한 행동의 책임소재는
타인일지 몰라도,
그 행동이 일어나기전으로
완전히 복구해야될 책임은
100% 나한테 있다.
내 집이고, 내 마음이고,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내가 책임자이자 관리자인 것이다.
내 마음과 내 인생이
상처받고, 깨지고, 얼룩져있을 때,
그것을 방치하는 시간의 크기만큼
내 마음과 내 인생은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그러므로,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을 시키기 위해
나 스스로 재빨리 나서는게 낫다.
상대에게 맡기려면,
내 상처를 말해야 하고,
그를 이해시켜야 하고,
그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고,
그의 인정을 받아내야하며,
그의 사과와 함께 치유의 약속을 받아내고,
마지막으로, 그가 하는 말과 행동으로부터
치유과정을 모두 지켜봐야 한다.
이 과정이 너무 느린데다가,
역공의 요소가 너무 많다.
그냥 내가 재빨리 처리하는 것이 낫다.
이런 생각을 반복하다보면,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었을 때,
즉시 일어서서
상처치유를 위한 행동을 하게 된다.
누가 한 짓인지,
그의 태도는 어떤지 파악하며,
2차, 3차 공격을 받을 준비를 하는게 아니라.
내 마음과 인생은
너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