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모두 열거하라면

할 수 있나요?

by 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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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분포 곡선에서

빨간색 화살표 범위가

가장 많은 것(또는 사람)을 포함한다.


화살표 바깥의 왼쪽과 오른쪽은

극단적인 소수이다.




어린시절부터 한평생을

잠시도 멈추지 않고

완벽하게 행복하기만 한 집단과

완벽하게 불행하기만 한 집단은

화살표를 벗어나는 양쪽 극단으로 가정한다.


늘 행복하기만 했던 집단은

앞으로도 잘 살아갈테고,

늘 불행하기만 했던 집단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테니

논외로 한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형제자매로부터,

친구로부터, 어른들로부터,

직장동료로부터, 배우자로부터

누구나 상처를 받으며 성장했고,

여전히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면,

100% 당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면,

그 과정에서 우리도 그 사람들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왔다.


너가 먼저 그랬으니까.


나만 당할 수 없으니까.




나도 상처를 줬으니,
남이 준 상처를 잊자는 말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정규분포 곡선에서

가운데 부분을 차지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라는데서 출발해야함을

말하고 싶다.


평범한 우리.....




부모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온 사람에게,

그동안 부모로부터 받은 모든 상처를

열거해보라고 하면,

얼마나 열거할 수 있을까?




한때, 나는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다.

원망도 많이 했고, 분노의 마음을 오래도록

품고 살았다.


과거의 내 상처와 현재의 고통, 내 마음은

모두 아버지 때문이라며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때가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서,

나 자신에게 묻고 싶다.


아버지가 준 모든 상처를 전부 열거해보라고.




분노, 원망, 미움이 가득한

그 때의 내가 대답한다고 해도,

그렇게 많이 열거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분명 그렇다.




내 기억에 이상이 생긴 적도 없고,

내가 강제로 지운 적이 없으므로

나의 기억은 온전하다.


따라서, 지금 열거할 수 있는게

몇개 없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도 몇 개 말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만약, 그 당시에 열거할 수 있는게

엄청나게 많았는데, 지금은 몇개 없다면,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매우 기쁜 소식이자 증거가 된다.




시간이 자연스럽게 한 일이든,

뇌가 정확한 기전에 의해서 한 일이든,

어쨌든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이렇게 희미해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가만히 돌이켜본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끊임없이

대적하며 상처를 주고 받은 게 아니라면

상처는 자연스럽게 아무는 것 같다.




또렷한 상처 몇 개는 내가 놓아주지 않고
부여잡고 사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성장과정에서 아버지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고,

많이 힘들었고, 답답했고, 원망스러웠다.

길러지는 그 긴 시간 동안 말이다.




그런데,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 아버지의 잘못을

끝없이 열거할 수 없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같은 양식의 여러 행동들은

하나로 범주화 하기 때문 아닐까?


나에게 가했던 그 많은 원칙, 벌, 상처는

'보수적이었다.'는 하나의 범주로

모두 들어갈 수 있기에...




둘째,

가장 강렬한 몇 개만 기억하기 때문 아닐까?


상대방이 항상 그리고 끊임없이,

최대 한계치의 고통과 상처를 준게 아니라면,

여러가지 중에서,

가장 큰 것 몇개 만을 기억하는게 아닐까?




가장 큰 걸 기억해야,

그것을 상대에게 말할 수 있고,

상대를 가해자를 만들 수 있고,

사과를 받을 당위성이 생기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동업자와 끝없는 소송을 벌이며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될때까지 싸우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이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매일 상처주며

바닥까지 내려가기를 서슴치 않은 부부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누군가가 준 상처를 대부분

몇 개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정규분포 곡선에 들어가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주고 받은 상처는

시간이 치유해주도록 놔두는게 어떨까 싶다.


30년전에 상처를 준 부모나,

10년전에 배신한 동업자를

지금 이야기해서 무엇하겠는가...




내가 부여잡고 기억하는 한,

나의 뇌가

세상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지워가는 그 과정을

더디게 할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