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제일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상황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석하여
최종 판단을 내리는 시스템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일단 형성되고 나면,
알아차릴 수 없을만큼
순식간에 판단이 끝나는데,
판단이 끝나고 나면
그에 따른 감정 또한 순식간에 동반된다.
비만인 사람 100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양배추가 다이어트에 좋다"는
영상을 보여준다면,
어떤 사람은 눈이 번쩍 뜨여 영상을 시청한 후,
그날부터 그 다이어트를 시작할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는 생각도 없는데
왜 뜬금없이 이런 영상을 보여주는지
불만을 표출할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그 영상 자체를 자신의 몸을
비하하는 시그널로 인식해서
모욕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영상시청을 함께 하는 사람 중
일부가 자신을 쳐다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며 상대에게 심한 욕설을 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다르고, 그에 따른 판단도 다르다.
더불어 따라오는 감정도 다르다.
당연히, 판단과 감정 이후에 하는 행동 역시 다르다.
끔찍한 범죄자의 인터뷰에서
과거의 특정 상황의 특정 일화를 말하며,
그것이 범행의 동기였다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접한다.
누구는 기분 나쁘다는 생각을 하고 지나가지만,
누군가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뜻이다.
하나의 사건을 모든 사람이 달리 해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이유는
그 과정을 수행하는 모든 인지과정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후부터 길러지는 양육방식,
타고난 성격, 성장배경을 비롯한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다.
그리고,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자동적으로 처리해,
그것은 이제 그의 일부가 된다.
아니, 단단한 갑옷처럼
그의 전체를 감싸게 된다.
살면서 우리가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로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되었을 때,
사실은 그 사람이 내게 상처를 주기 위해
고의적으로 한 행동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대적하는 경우는 우리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이,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나의 인지체계가
그것을 상처라고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타인은 나에게 상처를 주는 가해자이고,
나는 상처를 받는 피해자가 아니라,
내 인지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그리고 순식간에
많은 것들을 상처로 인식하게 한다.
나의 상처가 타인이 준 것이라는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면,
상처가 되는 타인의 말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시간이 반복되면,
타인, 상처, 나, 3가지 요소에서
'타인'이 사라지게 된다.
타인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인셈이다.
하지만,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면,
나를 비난하게 되고, 부모 탓,
내 성격 탓, 내 환경 탓을 하게 된다.
나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대신
그저, 담담하게
나의 인지시스템을 바꿔 나가면 된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매우 견고하다.
그러므로, 고치는 공사작업도
매우 오래 걸린다.
결코 서두르지도 말 것이며,
결코 낙담하지도 말 것이며,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고쳐나가면 된다.
좋은 말도 듣고,
좋은 책도 읽고,
좋은 영상도 보고,
좋은 사람도 만나면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상처를 치유하는
강력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