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를 치유에

사용할 수 있다면

by 영순

버킷리스트라고 하면,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소망 목록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버킷리스트에 있는 것을 하나 했다면서

해외 여행 사진, 음식 사진,

물품(옷, 가방, 보석류, 자동차, 아파트)사진이

지인의 SNS에 올려진 것을 볼때 그렇다.




나에게 버킷리스트란,

죽는 순간에 "아~ 그걸 내가 왜 안했을까?"라는

뼈에 사무치는 후회가 되는 그런 것들을 의미한다.




죽는 순간에,


"아~ 그 음식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아~ 그 카페에서 이쁜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아~ 그 보석, 그 옷, 그 가방,

그 자동차, 그 아파트 사진을

왜 SNS에 올리지 않고

이렇게 죽음을 맞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멍청한 인간은 없다.


그런 사진들을 올리는 것은

살아 있을때 자신을 과시하거나,

낮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하는

불쌍한 보상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죽기 직전에 5분의 시간이 주어지고,

그 시간에 후회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삶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들 중에서

꼭 해야될 것을 하지 못한 것에

깊은 후회를 느낄 것이다.




내게 버킷 리스트란 그런 것이다.




나는 해마다 1월 1일이면,

한해 동안의 버킷리스트 계획을 세우고

목록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이루어나간다.




몇년 전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아버지, 동생과 술 한잔 먹는거였다.


술 한잔 먹는게 뭐가 대수일까 싶지만,

아버지는 아들 둘이 나이 마흔이 넘어가도록

함께 술한 잔 하자고 청하신 적이 없다.




언제나, 명절에 누구 끼어서,

술판이 벌어지면, 그때 다른 친척 어른들이

우리를 부르면 그때서야 술잔을 부딪혔다.




어색하고 쑥스러움에 그러셨을거라고,

그 시대 남자들은 다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

아버지도, 나도, 남동생도 수십년을 술을 마셨지만,

단 한 번도, 부자간에 술을 마신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꼭 한 번은 술 한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단둘이 술 한잔 하는 것은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함께 하는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섞여있을 때는 가질 수 없는

그런 소중한 시간 말이다.




어느 날, 동생과 아버지께 우리 셋이만

술 한잔 하자고 했다.


나는 타지에 살고,

동생과 아버지는 같은 지역에 산다.




아버지는, 이게 무슨 일인가 어색해하셨고,

동생은 "형 굳이 뭐 나가서 먹나,

집에서 먹지."라고 했다.

동생은 집에서 술 한잔 먹는 것을

편하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과 어떤 시간을
함께 하느냐에 따라,
할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자들만 셋이 모이면,
배우자들이 있을 때 하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나, 고통, 슬픔,
약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생이 원하듯 집에서 먹으면,

애들 싸우는거 중재해주고, 애들 밥먹이고,

닦아주고, 씻기고, TV 틀어져있고,

어수선하기 그지 없다.


남자 셋이 술 한잔하는게 처음이지만,

내켜하지 않는 아버지와 남동생과 함께

술 한잔 하기 위해, 어느 한 주말 시간을 내

먼길을 달려갔다.




아버지 좋아하시는 것으로

메뉴를 정하라고,

내가 사겠다고....


서로가 수십년을 술을 먹고 살아왔는데,

어떻게 부자지간에

술 한잔을 한적이 없냐고...

이게 내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그래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는 이것을 버킷리스트에 있던 것을 하나 하면서,

단순한 소망을 채우려는 게 아니었다.




어렸을적부터 아버지에게 큰 상처를 받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에게 날카롭고,

예민함과 분노가 조금도 해소되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며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와 화해하고,

나 자신도 용서하고,

위로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고, 쉽지 않았다.




남자 셋이 술 한잔 하는 것을 계기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서로 간에 새로움도 느끼고,

그렇게 끈끈함도 느끼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가슴에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술자리가 시작되기 전에,

"아버지~ 우리가 각자 술을 수십년을 먹었는데

부자지간에 술 한잔 한 적 없이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어요.

제가 고향에 내려온 이유는,

꼭 한 번 그런 시간이 있어야,

먼 훗날 제가 후회하지 않을거 같아서예요.

엄마나, 제수씨, 아이들이 있는데서는

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도 있구요..."

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 말이 끝나는 즉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래. 난 니가 내려온 이유를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에미가 잘못한거는 잘못한거야."




난 무슨 말씀인가 싶었다.




동생에게 들어보니,

아내가 엄마, 아버지께서 속상하실 만한

말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갈등 아닌 갈등이 최근에

있었나보다.


난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갑자기 큰 아들이 술을 먹자고 하니,

'아~ 이 놈이 자기 마누라 편들고 그러려고

급하게 내려왔구나' 생각하셨나보다.




난, 정말 멋진 시간을 꿈꿨다.

낭만적이고, 죽는 순간에 떠올려도

눈물나게 흐뭇한 그런 시간을 기대했다.


더불어, 어렸을적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도

많이 치유되길 바랬다.




하지만, 아버지는 냉랭한 표정으로

내 말을 끊으며

"니가 내려온 이유를 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있지." 이러시면서,

차가운 태도로 그 시간을 일관했다.




나는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떠나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아버지와 동생의 비위를 맞추며,

아내가 한 실수들을 다 들으며,

이해하시라고 하는 말들만 하다가,

술값을 계산하고 그 시간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운전하는 내내 내 가슴속에는

분노, 원망, 상처가 더욱 커졌다.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미쳤지.

굳이 무슨 남자들끼리 술을 먹겠다고...


무슨 치유를 스스로 해보겠다고...


사람은 바뀌지 않는 건데,


이제 와서 뭘 해보겠다고..."




가슴의 상처를 혼자서 치유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던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