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타래를 풀지 말고

그림을 그리세요!

by 영순

내 마음 속에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사람,

내 마음 속에 가장 큰 억울함을 남긴 사람,

내 마음 속에 가장 큰 분노를 남긴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을 부정적으로

이끈 것은 아버지 때문이고,

내가 이런 것은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내 마음이 부정적이고,

성인이 되어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버지에게 날카로우며,

그런 마음과 생각들이 타인과의

관계속에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내 삶에 다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난 아버지를 용서하기 위해,

아버지와 화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야 했다.




이렇게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생겼던 지점으로

돌아가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의 마음인 것 같다.




그래야, 누가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누가 사과를 해야하는지,

누가 사과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수개월에 걸쳐 정신분석학적으로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이야기하며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 치유에 정말 도움이 된다해도,

과연, 그 긴 시간 동안 그것을 버텨낼 마음과

할애할 시간과 돈이 보통의 우리에게

충분히 있는가?




그럴 수 없으므로,

우리는 자연히 그것을 포기한 채

상처를 묻어둔 채 살아간다.


그러다가, 상처가 너무 쓰라려

치유하고 싶어지면,

스스로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

나에게 상처를 준 이와 함께 말이다.




나 역시도 한때,

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를

아버지께 말했던 적이 있다.


그걸 말했을 때,

아버지가 충분히 공감해주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하며,

나의 상처 치유에 함께 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작은 신호에도 민감하다.




상대가 내 말을 경청하는 것 같지 않다던지,

충분히 내 감정에 공감을 안해주는 것 같다던지,

내 말을 자주 끊는 것 같다던지,

묘한 표정이나 비웃음 같은 것을 느낀다던지,

오히려 내 잘못이라고 말한다던지,

아무 기억이 안난다고 말한다던지,

아팠다면 미안하다던지




이루 열거할 수 없는

수 많은 표정, 말, 어투 들이

그때의 상처를 치유하기는 커녕,

더 큰 상처와 갈등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온전한 공감, 이해, 인정, 사과, 경청, 치유는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대부분, 상처를 크게 준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고 적반하장 격으로 행동하기에,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내 아버지는

인정하고 사과하시는 쪽이었지만,

몇 번의 대화로 알았다.


내가 상상속에 그리던 온전한 치유과정이

내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깨달았다.




과거에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는

그 당시로 돌아가서,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치유되는 것이 아니구나.




어떠한 상처도

온전하게 치유되는 것은 없구나.




인간의 기억은 모두 자신을 위주로

편집되거나, 강화되거나, 잊혀지는구나.




그래서, 결론 내렸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는

과거에 이미 엉켜버린 실타래를

푸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더 엉켜버릴 수 있겠구나.




과거의 상처를

엉켜버린 실타래로 보는게 아니라,

일부가 망쳐진 캔버스로 봐야겠구나.




기억이니 말끔하게 도려낼 수 없기에,

잘못 그려진 것들을 앞으로 그려낼 그림에서

사용될 또 다른 획이나 모양으로 여겨야겠구나.




길게 그어진 획은
나뭇가지로,

동그랗게 튄 점은
어린 아이의 눈동자로

도저히 살릴 수 없는 것은
배경색으로 덧칠하면서 말이다.




기억이란, 상처란

온전히, 그리고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 번 강하게 각인된 그것들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상상속에서 내가 원했던 대로

상대가 모두 응한다고 해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그에게 형벌을 내리고 싶을 뿐.




치유란, 상처를 없애는게 아니라,
떠올릴 때 다시는 쓰라리지 않게
만드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난, 이미 벌어진 일,
내가 받은 상처를 이용해
다른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