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설 연휴, 잠시 내려놓은 간병
— 동생의 치료가 잠시 숨을 고른 사이, 짧았지만 따뜻했던 시간, 그 안에서 다시 버틸 힘을 얻었습니다.
동생이 방사선 치료 35회를 하고 CT를 찍었다.
다음 외래 예약은 3월 말.
그 사이에 설 연휴가 끼어 있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연휴 기간에도 엄마를 돌봐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 도움이 아니었다면 서울 집에 다녀오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설 전날,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마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동생의 상태가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오랜만에 ‘환자 보호자’가 아닌
그저 집으로 가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2년이면 그래도 집이 나 없이도 잘 굴러가고 있겠지’ 싶던 생각은
금세 착각이 되었음을 알았다.
눈에 띄는 먼지들,
정리되지 않은 서랍,
냉장고 속 비어 있는 반찬통들.
나는 자연스럽게 앞치마를 둘렀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를 빨고, 반찬을 몇 가지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힘들지 않았다.
부산에서는 늘 긴장 속에서 움직인다.
엄마를 살피고, 동생을 지키는 생활.
여기서는 누군가의 간병인이 아니라
그냥 집안일을 하는 ‘나’였다.
집에서 잠시 숨을 돌리니
‘아, 내가 아직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 전날은 아버지 제사가 있어 큰오빠네로 갔다.
조카 손주들이 어느새 아가씨가 되어
공손히 인사를 건네는데 마음이 뭉클했다.
큰 조카 손주딸은 고3인데도 제사에 참석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던지.
시간은 이렇게 흘러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우리를 조금씩 늙게 한다.
설날에는 시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하고
남편 형님 댁으로 갔다.
형님 부부와는 나이 차가 거의 없어
친구처럼 지낸다.
남편 형만 세 살 위이고
나와 형님, 남편은 동갑이라
이야기만 시작하면 끝이 없다.
시댁 며느리는 나와 형님, 둘뿐이다.
형님은 둘째 딸네에서 손주를 봐주시느라
요즘은 거의 딸 집에서 지낸다.
덕분에 아주버님은 남편처럼 ‘독거노인 흉내’를 내고 계신다며 웃으셨다.
그런데 그 독거 생활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살림을 웬만한 주부보다 더 깔끔하게 해 놓으신다.
형님이 집에 오면
살림 도구가 조금만 자리를 벗어나도
괜히 짜증이 난다며 농담을 하셨다.
남편은
“나는 그런 건 괜찮은데.”
하며 웃고.
약주 한 잔씩 기울이며
서로의 흉도 보고, 자랑도 하고,
하하 호호 웃었다.
오랜만에
‘환자 이야기’가 아닌
‘사는 이야기’를 실컷 했다.
이번 설은 유난히 푸근했다.
친정에도, 시댁에도
제대로 인사를 드릴 수 있었고
아버지 제사에도 함께했고
시부모님 산소에도 다녀왔다.
부산으로 내려오기 전,
집 안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나는 다시 엄마와
동생을 지키는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번 설 연휴는
내 마음에 작은 등불 하나를 켜주었다.
가족은
힘들 때 버티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잠시 숨 쉴 틈을 허락해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
간병인의 삶은 길고
마음은 자주 지치지만
이렇게 한 번씩
마음의 고향 공기를 들이마시고 오면
또다시 버틸 힘이 생긴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조용히 묵주를 만지며 기도했다.
“주님,
제가 다시 돌아갑니다.
제 힘으로는 부족하지만
오늘도 제 몫의 사랑을 감당하게 해 주십시오.”
설은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면서도
내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시켜 준
은총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