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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Nov 09. 2015

안녕, 러시아!

무시무시할것만 같은 그 나라에 손을 내밀다

"어떻게 러시아어를 전공하게 됐어요?"


러시아와 17년지기인 나에게 자주 들어오는 질문이다. 이제 내겐 자연스럽고 익숙한 질문이다. 아마 나라도 그 이상한(?) 외국어를 배우는 이유가 궁금했을것 같다.


"제가 러시아를 선택한게 아니고, 러시아가 저를 선택한겁니다. 운명이지요. 허허..."


그렇다. 운명적으로 삐끗해 미끄러지게 된 시험 결과로 내 삶의 키는 러시아 방향으로 돌아가있었다. 그 때의 선택되어짐이 지금까지도 내 삶을 좌우하게될 줄이야.


밀레니엄을 앞둔 당시, 고등학생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하기에는 너무도 생소한 언어였다. 암호처럼 생긴 알파벳하며, 욕하는 것 같은 된소리 발음하며. 그래도 남들 다 하는 불어, 독일어보다는 희소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정말 신세계였다.


공산주의 때를 벗지 못한 무표정의 회색빛 러시아에 나는 그렇게 손을 내밀었다.



그 무시무시함을 뒤로하고 한편으로는, 교과서 표지에서 처음으로 접한 러시아는 나에게 테트리스 배경에 나오는 성당들이 가득한 동화 속 나라였다. 감히 가볼수 없을 것 같은 미지의 세계. 무섭지만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그 곳. 그래서 더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어를 잘하면 러시아 사람들하고 대화도 할 수 있을거고, 그러면 갈 기회도 있겠지? 저기 그림 속의 장소들 다 가볼테야 꼭!"


내게는 어느 대학에 가느냐의 문제보다 러시아어가 주는 즐거움이 더 컸다. 그렇게 미지의 언어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 그렇다면 러시아에 모험을 걸어보자!



나의 러시아어 필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단연 대여 1순위였다. 노한사전 하나밖에 의지할 곳 없던 당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나는 나름의 방법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교과서 속의 흑백 사진 내지는 오래된 빛바랜 컬러 사진만이 내게 러시아풍경의 전부였는데 늘 내게 오라는 손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만해도 영어 공부의 압박이 사방에서 짓눌러오니 상대적 관성으로 러시아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러시아어 교과서가 마르고 닳도록 봤다. 시험공부하라고 시키면 더 다른짓을 하고 싶은 심리인데, 좀 더 발전적 형태라고나 할까.


대학 진학을 앞두고, 나는 별달리 러시아어만큼의 매력적인 분야를 발견하지 못해 선뜻 전공어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그 때의 내가 즐겁게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건 러시아어밖에 없어서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고등학교 기간동안 배운 러시아어라고는 나중에 알고보니, 기껏해야 대학교 정규과정으로 약 2주만에 다뛰는 아주 기본적인 수준이라는 점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조기교육 한 셈 치리라.)

다행히도(?) 당시 노어노문학과는 비인기학과여서, 난 그 덕에 편하게 대학에 진학한 수혜자가 되었다. 우리는 역시 운명인가보다.

그래, 이제 두번째 너에게 모험을 걸어본다!


그 모험을 선택하게 된 순간부터 나는 다이내믹한 삶의 파도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래도 누구에게나 흔한 일을 하는 것보다 누구도 잘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하며 그 영역을 점차 넓혀나가는 것이 훨씬 의미있는 생의 흔적이 아닐까. 그리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하고서 손에서 놓아주지 않은 나의 의지는 참으로 대견하다.


그렇다고 나는 남들처럼 거창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뛰어난 러시아어 실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배운 기간과 실력은 비례하지 않더라는..)

그 가운데 20년 가까이 이어온 나의 러시아에 대한 무한애정과 인연 속에서 소소한 모험 이야기들은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아직도.


나의 소박한 소원이 있다면,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러시아를 좋아하게 되고, 그 나라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하나씩 깨뜨려갔으면 하는 것. 그리고 러시아인들과 삶에서 가치있는 일들을 함께 조화를 이루며 해나가는 것, 그것이다. 러시아 전도사라고나 할까?


나는 아직 꽤 젊고. 러시아는 정말 넓고. 내가 할 일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앞으로 러시아와 함께하는 삶이 기대된다!



★ 게재한 모든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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