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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Dec 20. 2022

중앙아시아 추억 - 우즈베키스탄(2)

현실 도피와 CIS 국가 탐험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단상은

지난 이야기 참고.

2007년,
어쩌다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사회 초년생 때 나는 러시아어가 통하는 국가면 어디든 좋았다.

당시 직장도 그래서 선택한 것이었고,

아마도 나를 중앙아시아로 파견 보냈어도 기꺼이 나갔을 것이다.

러시아어권이면 무엇이든지 수용 가능할 정도로 그때의 나는 더 열린 마음을 가졌었으니.


사진과 함께 추억을 되새겨본다. 사진 대방출!

(2007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찍은 사진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으니!)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독립광장 야경

여행의 동기는 단순했다.

친한 회사 동기 언니가 종종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야기를 평소 기억에 담아두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우리 엄마 얼마 전에 코이카(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에 나가셨어. 몇 년 동안 계실거야."


그렇다. 언니네 어머니가 계시는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어권이라 더욱 관심이 갔던 거다!


한창 고된 회사 생활로 한껏 짓밟혀 지내던 시절, 지칠대로 지친 나는 탈출구가 절박했다.

당장이라도 퇴사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순간이 여럿 있었는데,

어느 날 언니가 여름 휴가로 어머니께 다녀온다는 말에 다짜고짜 언니를 붙잡고 졸랐다.


"언니, 나 러시아어 할 줄 아는데... 같이 가면 안 돼요? 제가 다 도울게요!"


다행히 '재밌겠다'며 언니는 흔쾌히 나의 동행을 수락했고,

그렇게 10여 일의 여행을 함께 시작했다.

그때 나에게는 우즈베키스탄 여행은 현실 도피였고, CIS 국가 첫 탐험인 셈이다.


나의 첫 우즈베키스탄행. 반신반의 현지 항공사 처음 타봤다_2007년

생각했던 것보다 우즈베키스탄은 참 기분 좋고 따뜻한 나라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먹은 길쭉한 노란 멜론(дыня 듸냐)은 너무 달콤하고 맛있어 배탈 나도록 먹었고,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선량했다. 물가는 또 얼마나 착한지!

내가 배가 터지도록 먹은 듸냐. 나중에는 배탈이 나고 말았다_2007년


내가 혹처럼 붙어서 가는 바람에 언니의 어머니 상봉도 현지에서 함께 기뻐했고,

그렇게 셋이 같이 우즈베키스탄 주요도시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여행할 도시는 수도 타슈켄트를 비롯해 옛 제국의 영광이 숨쉬고 있는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행선지 비행기 티켓 사러 매표소에 가 간만에 러시아어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매표소에서 비용을 지불하는데 신기한 걸 발견했다.

신용카드가 되는 곳은 거의 없었고 현찰을 내야 했는데, 현지화(숨 сум) 당시에는 큰 단위 화폐가 없어

거액이라도 지불하게 되는 날엔 늘 돈을 커다란 가방에 뭉텅이로 들고 다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산대 근처에는 늘 지폐 계수기가 있었고, 이건 참 진귀한 풍경이었다.

그나저나 돈을 지불하는 순간까지 그 큰 돈가방을 들고다니려면 얼마나 불안할까?


매표소 직원 돈 세느라 좀 고생할듯_2007년


도시 간 택시 이동도 이색적이었다.

히바에서 부하라까지는 거리가 380km나 되는데, 그 사이는 카라쿰 사막이 펼쳐져있다.

이동편이 마땅치 않아 택시를 잡아타고 간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먼 거리 택시 이동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다소 황당했는데, 그 사이 변변한 휴게소도 없이 안 쉬고 줄창 몇 시간 동안 모랫바람 맞으며 달린다는 것도 대단했다.


카라쿰 사막을 가로지르다_2007년
사막에서. 저곳은 변소였던가?_2007년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를 승용차로 타고 가는 중에,

자칫 사고라도 난다면 과연 우리가 발견될 수나 있을까 생각하니 살짝 아찔하기도 했었다.


열차여행도 해볼 만하다.

러시아에서 타본 횡단열차만큼이나 우즈베키스탄 열차도 탈 가치가 있다. 겉은 다소 오래된 느낌이지만 내부는 깨끗한 편. 2007년 처음 타본 열차는 기대 이상이었다.


기차역 풍경_2007년
열차 내부. 좌측은 개방형 침실형 객차, 우측은 일반 좌석열차_2007년


2022년 다시 경험한 우즈베키스탄의 일반열차는 객실이 리모델링되었지만, 곳곳은 아날로그다.

거대한 철제 사모바르와 오래된 수세식 화장실, 육중한 열차 문, 옛날 다방 같은 작은 매점 식당칸, 바구니 들고 객차를 다니며 먹을 것을 파는 승무원.... 모든 것이 예스럽다.


일반열차 풍경. 객차와 식당칸_2022년
식당칸 풍경_2022년
일반열차 내 사모바르와 화장실_2022년
기차역 풍경_2022년


다행히 일반열차 외에 아프로시욥(Afrosiyob)라는 고속열차가 다녀서,

도시 간 이동 소요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옛날에 머물러있는 듯해도 점점 좋아지는 우즈베키스탄이다.


아프로시욥 고속열차. 이 열차로는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지 2시간이면 간다_2022년

우즈베키스탄 주요도시 여행

방문한 도시마다 보석처럼 귀했다.

사막 너머 서쪽에 위치한 사막성 히바Khiva는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듯한 도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찬칼라 성채로 둘러싸인 모랫빛 도시는 특히 일몰과 일출이 아름답다. 칼타 미노르 미나렛은 이곳 사막색깔 도시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랜드마크!


히바의 이찬칼라 성채와 그 내부_2007년
히바 풍경_2007년
해질 무렵과 일출 무렵의 히바 풍경_2007년
이른 아침 히바 풍경_2007년. 푸른 칼타 미노르 미나렛이 아름답다.


히바에서 카라쿰Karakum 사막을 건너면 만나는 부하라Bukhara는 옛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다.


인도와 중국 섬유 교역으로 번영을 누린 한편, 종교의 도시로도 불린다. 이곳 연못이 있는 라비 하우스는 당시 행상들의 숙소였다고 한다. 낙타가 드나들고 활발하게 무역이 이루어진 흔적들이 남아있다.


부하라 풍경_2007년
교역이 활발했던 실크로드의 허브 부하라의 현재 모습, 지금도 상점이 즐비하다_2007년
옛날 행상들의 숙소가 있었던 라비하우스 풍경, 연못과 나귀를 탄 이슬람 학자 호자 나스루딘의 동상_2007년
기념품으로 만난 낙타_2007년
부하라의 어느 결혼식 풍경_2007년


부하라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가면 황금의 도시 사마르칸트Samarkand가 있다.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로 14세기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다. 티무르 왕족의 무덤이 있는 구르 에미르 영묘, 3개 메드레세가 마주보고 있는 레기스탄 광장, 티무르의 손자인 천문학자 울루그벡의 천문대, 옛 묘지 샤히진다, 티무르가 사랑했던 왕비 비비하눔 모스크 등 당대 티무르 시대 황금기를 보여주는 문화재들로 가득하다.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미르 티무르의 동상_2007년
사마르칸트의 풍경_2007년
레기스탄 광장 풍경_2007년
이슬람 사원과 메드레세 내 아름다운 문양_2007년
천문학자이자 티무르의 손자 울루그벡 천문대_2007년
티무르 왕족의 무덤이 있는 구르 에미르 영묘_2007년


그리고 가장 동쪽에 있는 수도 타슈켄트Tashkent!


이곳은 상대적으로 도시 느낌이 강하다. 한때 우리 대우기업이 들어와 끼친 영향력이 많았는데, 옛 기억을 더듬어보면 다마스 차가 타슈켄트 마을버스로 운행되고 있었다. 공원의 아미르 티무르 동상에서는 옛 시대의 영광을 기억하려는 민족성을 엿볼 수 있다. 도시 자체는 소련 느낌이 물씬 나도 곳곳에 이슬람 문화가 녹아있다.


아미르 티무르 광장과 공원_2007년
우즈베키스탄 호텔 배경으로 연못 분수_2007년
왕관처럼 생긴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_2007년
2007년 도로 풍경. 우리에게 익숙한 다마스는 당시 마을버스로 애용되던 차다_2007년
색색깔의 분수_2007년




이렇게 추억을 벗삼아 떠나본 우즈베키스탄 여행.

조금 더 살기 좋아졌다는 것을 제외하곤 15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도시 모습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 오가는 사람들만 달라질 뿐이다. 나처럼.

 

오히려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아 더 매력적이고 애틋하다.

사람도 마음만큼은 이처럼 변함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은 청년이 되어있을 우즈베키스탄의 어린이들_2007년


★ 게재한 모든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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