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문화예술 강국인 이유
하지만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벗어난 러시아는 다 비슷한 시골이라고 여기곤 한다. 도시 규모나 건물, 대중교통 등은 수도와 큰 차이를 보일지 모르지만, 지방도시들도 알고 보면 나름의 멋이 있다.
시베리아나 극동의 미술관 소장 전시에서 레핀과 쉬시킨, 아이바좁스키의 그림을 만난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지 않을까?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이나 러시아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그림이라 더 귀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나 또한 이들 작품을 지방 미술관에서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순간 물음표가 달렸다. 모든 시스템이 수도 중심으로 돌아가는 러시아에서 명화도 마찬가지로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다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국보급 그림이 어떻게 먼 지방까지 오게 되었을까? 나의 호기심은 그때가 시작이었다.
러시아 지방 미술관에서 어떻게
유명 작가 그림을 소장하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어쩌다 명화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느냐' 이 말이다.
러시아가 옛날에 중앙의 주요 미술관 그림들을 지방으로 이관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얼핏 듣기는 했었으나, 호기심에 몇몇 지방 거점 도시 미술관 위주로 히스토리를 찾아보았다. 지방에 명화가 자리잡게 된 사연은 저마다 달랐지만 대부분 비슷한 맥락이었다. 이번 글과 다음 글을 통해 4가지로 그 배경을 살펴보겠다.
이미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우리가 아는 아주 통 큰 컬렉터가 있다. 바로 예카테리나 2세다. 그녀가 1764년 유럽 화가의 그림을 개인 소장하게 된 이래, 소장품이 너무 많아져 작품 보관용으로 궁전을 증축한 걸 보면 여제는 상상 이상의 컬렉터였다. 예카테리나의 소장품 보관소는 현재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에르미타주가 되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러시아에서는 개인 소장 문화가 유행하는 분위기였다.
귀족은 물론, 돈 많은 상인도 그림을 구입했다. 러시아 예술가들의 성장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 파벨 트레치야코프와 기업가 사바 마몬토프가 그러했으며, 귀한 프랑스 명화들을 수집했던 상인 세르게이 슈킨과 이반 모로조프가 그러했다. 이들이 모은 작품들이 소련시절에는 국유화되어 귀족이나 거상의 저택에 보관되기도 했다.
그 시절의 컬렉터는 재력만 있는 게 아니라, 작품 보는 눈도 탁월했던 것 같다. 훌륭한 작품들이 지금까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남아 많은 관람객들을 놀라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개인 소장의 좋은 예를 찾았다.
바로 시베리아에 있는 이르쿠츠크 주립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의 명칭에는 19세기 이르쿠츠크 시장을 지낸 블라디미르 수카초프의 이름이 붙는다. 미술관에 그의 이름을 명명한 이유는 미술관이 수카초프가 수집한 소장품들로 구성된 개인 미술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르쿠츠크 출신 정치인 수카초프는 데카브리스트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모스크바에서 트레치야코프의 소장전을 보고 감흥이 없었을 리 없다. 이 소장품 전시의 영향을 받은 수카초프는 1870년부터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을 사기 시작했고 작품 수는 점점 많아졌다. 결국 그 또한 트레치야코프처럼 미술관을 세워 자신이 소장한 그림들을 전시하게 되었다.
특별히 수카초프의 미술관에서 주목할 작품으로는 일리야 레핀의 1874년작 <거지. 소녀 어부>가 있다. 이 그림은 수카초프가 레핀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구입한 것으로, 빛의 화가답게 생명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후에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은 이 그림을 수리코프의 작품 둘과 맞바꾸자고 제안할 정도로 무척 가져오고 싶어했단다. 다행히 이르쿠츠크 미술관은 레핀의 그림을 잘 지켜낸 덕분에 지역을 빛내는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
이만하면 이르쿠츠크를 방문할 이유가 충분히 생기지 않았는가?
러시아 사람들의 오랜 예술품 개인 소장 문화는 그 결과물들이 현대까지 이어져 러시아 지역도시를 아주 제대로 빛내는 중이다.
대부분의 지역 미술관은 이같은 기증의 방법으로 명화를 받게 되는 것 같다.
지방은 수도권에 비해 보유 작품 수가 현저히 적고 문화적 혜택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19세기에는 예술계의 브나로드, 찾아가는 전시(이동파)도 있지 않았는가? 예술은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작품들이 항상 이동만 할 수는 없을 터. 지역 미술관에 유명 작가들의 그림이 있게 된다면 지역 예술도 살아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에르미타주, 러시아 박물관 등 중앙의 대형 미술관에서 지역 미술관에 소장품들을 기증해왔다. 기증 덕분에 유명 작가가 그린 다른 그림들을 지역 미술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당대 미술계의 거장 일리야 레핀, 이반 쉬시킨, 이삭 레비탄, 이반 아이바좁스키 등의 그림은 지역 미술관 기증 1순위 그림이고, 20세기 아방가르드 작품들도 기증되고 있다.
한편, 개인이 기증하는 경우도 있었다.
니즈니 노브고로드 국립 미술관은 19세기 예술 아카데미 교수 코셸레프와 화가 카렐린이 기증한 그림들과 유명 작가들 그림들로 첫 전시를 시작했다. 그보다 미술관 컬렉션을 더 풍부하게 만든 의외의 인물이 있다. 이 도시 출신의 소설가 막심 고리키이다. 열성적인 컬렉터였던 그는 자기가 소장한 상당한 그림들을 미술관에 수차례 기증하여 니즈니 노브고로드 예술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다.
고리키가 기증한 그림 중에는 미하일 네스테로프가 그에게 헌사한 <봄 풍경>도 있었는데, 작품 아래 작가 서명에 희미하게 '러시아 자연의 영광스러운 시인 막심 고리키에게. 네스테로프로부터 1901'라고 적혀있다.
1936년 고리키는 사망했고 그의 유언에 따라 보리스 쿠스토디예프의 <러시아 비너스>, <차 마시는 상인의 부인> 등도 니즈니 노브고로드 국립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이중 <러시아 비너스>는 지난 글*에서도 소개했듯 양면 그림이다.
걸작들을 소장하고 있던 고리키의 안목에 박수를 보내고, 예술을 나누고자 한 그 마음은 그저 아름답다.
* 쿠스토디예프의 <러시아 비너스> 양면 그림에 대한 내용은 아래 글 후반부 참고
사마라 주립 미술관도 개인의 기증으로 시작되었다.
이곳 소장품은 현지 상인이자 예술가인 콘스탄틴 골로프킨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그는 독학으로 미술을 배웠지만, 본인이 주도하여 현지 예술가들과 함께 그림 전시를 개최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후에 기증을 통해 1897년 박물관 미술부의 기반이 되었다. 더 나아가 골로프킨은 당대 유명 화가들에게 서한을 보내 작품 기증을 요청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미하일 네스테로프와 바실리 박셰에프로부터 작품을 기증받았고, 예술 아카데미 졸업생들의 졸업 작품들도 들어왔다.
이처럼 기증이라는 방법에서 시작하여 러시아 지역 미술관의 컬렉션이 한층 더 풍성해질 수 있었다.
참으로 멋진 문화이며, 진정 예술을 향유할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민족이다.
역시 러시아 문화예술의 선순환은 오랜 소장 문화와 작품 기증에 있었다.
예술가들은 컬렉터의 작품 구입으로 실력도 인정받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으며,
그렇게 수집된 무형의 예술은 기꺼이 나누는 마음에서 함께 향유하는 기쁨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가 문화예술 강국이 된 이유가 아니겠는가?
지역 미술관에 유명 작가의 그림이 있게 된 다른 두 가지 배경은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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