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료시카: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모르는 이야기

장난감을 넘어 러시아 상징하는 기념물이 되기까지

by 모험소녀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그 목각 인형 맞죠?


마트료시카 Матрёшка

한 번쯤 본 적은 있어도 명칭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형 안에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있는 특성은 이미 알려진 사실. 색상이 화려해 장식용으로 이만한 게 없고, 열고 닫는 인형 꾸러미라 아이들이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러시아보다 마트료시카에 대한 인지도가 더 높아 보인다.


러시아어를 전공한 나에게 마트료시카는 오래 전부터 친숙한 대상이었다. 한편으론 너무 익숙했기 때문인지, 러시아 인형의 기원이나 특징은 딱 가이드북 수준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탁자 위 마트료시카를 보며 러시아를 추억하다 문득 던진 질문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가만, 얘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더라?' 기억을 더듬어봐도 어렴풋한 이야기만 맴돌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정작 서로는 잘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다시 호기심을 품고 찾아서 정리해 본,

누구나 알지만 한편으론 아무나 알지 못하는 마트료시카 이야기 이번 글에 담아보고자 한다.




'러시아 스타일'에 충실한 장난감 마트료시카


중첩의 목각 인형 마트료시카는 1890년대 러시아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살짝 엿보자면, 러시아에서는 급속한 경제 발전과 문화 번성으로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 민족 의식이 높아진 시기였다. 이에 따라 민속적인 것을 부흥시키려는 일종의 예술 운동 '러시아 스타일 русский стиль'이 유행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릇이나 가정용품, 인테리어 등 각종 생활 디자인을 고대 러시아 스타일로 채워나갔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장식품과 옷, 장난감 등을 옛 스타일로 복구하는 전문 작업실이 있을 정도였다.


19세기 러시아 예술 부흥에 크게 기여한 기업가 사바 마몬토프의 형 아나톨리 마몬토프도 이러한 러시아 스타일 관련 사업을 전개했다. 그는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 '어린이 교육'이라는 상점을 열고, 거기에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만드는 예술 목공소도 운영했다. 이곳에서는 러시아의 민속성이 살아있는 다양한 지역 전통 의상의 목공 인형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져 판매되었다. '어린이 교육' 목공소의 장난감 창작 활동은 모스크바 인근 사바의 영지에 조성된 예술가 마을 아브람체보 작업장과의 협력이 있어 가능했다. 어린이를 위한 이 창조적인 예술 목공소가 바로 마트료시카의 탄생지가 된 것이다.


아나톨리 마몬토프, 그리고 '아동 교육' 목공소 일꾼들 사진(출처: ru.wikipedia.org, dzen.ru)


추측만 가득한 탄생 히스토리


사실, 안타깝게도 이 전설적 장난감 마트료시카의 기원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여러 연구자들의 '설'만 있을 뿐이다. 그중에서도 유력하게 등장하는 설들이 있다.


중첩으로 되어 있는 일본의 후쿠로쿠주와 다루마 인형(출처: culture.ru)


마트료시카는 일본 전통 인형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일본에서 건너온 전통 목각 인형이 장난감 목공소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아마도 당시 마몬토프의 가족이 일본을 방문하고 오면서 사왔던 것 같다. 일본 인형은 지금의 마트료시카처럼 속이 열리는 중첩식이었는데, 정확히 어떤 종류였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시치후쿠진(칠복신) 중 후쿠로쿠주 인형이었다고도 하고, 코케시 또는 다루마일 수도 있다고 한다. 종류가 무엇이 됐든, 당시 '어린이 교육' 목공소에서 이 일본 인형의 형태와 아이디어를 참고하여 러시아 스타일로 재해석하여 탄생한 것이 마트료시카라고도 한다.


세르게이 말류틴 자화상(촤), 바실리 즈뵤즈도치킨(우)(출처: wikipedia.org)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세르게이 말류틴이 마트료시카의 창작자로 인식되고 있다.

'어린이 교육' 목공소 예술가였던 그는 러시아 여러 지방 출신 장인들의 작품이 보관된 수공예 박물관에 있는 장난감을 눈여겨 보고 밑그림을 그렸다. 이를 기반으로 장난감 선반공 바실리 즈뵤즈도치킨이 나무를 깎아서 최초의 마트료시카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수탉을 든 소녀' 마트료시카는 스카프를 두르고 사라판을 입은 농촌 소녀 인형이었다. 총 8개로 이루어진 중첩 인형으로, 가장 큰 인형은 한 손에 검은 수탉을 들고 있는 소녀가 묘사되고 있다. 그 뒤로 작은 인형에는 낫과 바구니를 든 소녀와 남자 아이가, 제일 마지막 인형에는 포대기에 싸인 아기까지 있다. 너무나 민속적이다.


말류틴과 즈뵤즈도치킨의 첫 마트료시카(출처: ru.wikipedia.org)


최초로 완성된 이 8개의 중첩 목각 인형은 '마트료시카'라 부르게 된다. 원래 가장 유명한 이름을 붙여야 기억하기 쉬운 법 아니던가. 19세기 말 러시아에서는 '마트료나 Матрёна'라는 이름이 유행했는데,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 명칭은 '가족의 어머니'라는 뜻을 가진다. 어머니를 의미하고 있으니 과연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라 할 만도 하다. 마트료시카는 바로 이 마트료나의 애칭이다.

그밖에 다른 탄생 설들도 있는데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물론 앞의 이야기처럼 마트료시카는 일본 인형을 참고했을 수도, 다른 장난감에서 영감을 받은 것일 수 있다. 또 인형 아이디어의 주인이 말류틴이나 즈뵤즈도치킨일 수도, 아니면 다른 이름 모를 예술가일지도 모른다.


누구의 어떤 아이디어였든 하늘 아래 어디 완벽하게 새로운 예술이 있던가? 알고 보면 우리 주변 창조물들은 기존의 다양한 것들이 섞여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탄생된 것이리라.



마트료시카는 태어난 후 지금까지 계속 전성기


여러 탄생 비화들을 차치하고, 어쨌든 19세기 말 탄생한 마트료시카는 곧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 예사롭지 않은 장난감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되었다. 놀랍게도 관람객들의 높은 평가와 인기로 인해 동메달을 수상했다. 파리뿐만 아니라 마트료시카는 해외에서 여러 차례 전시되었다. 런던, 독일, 그리스, 터키 등 수공예 시장에서 그 이름을 알렸다.


해외에서 얻은 인기 덕분에 러시아 내에서도 유명해지면서 마트료시카의 대중화와 상업화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렇게 마트료시카가 상업적 상품으로 떠오르자, 이제는 '어린이 교육' 목공소에서만 제작하기 어렵게 됐다. 이에 따라 모스크바 근교 황금고리 도시 세르기예프 포사드에 제2의 마트료시카 작업소가 조성되었다. 그곳에는 목공이 발달했고 수공예 장난감 장인들도 살고 있어, 개선된 제작 기술로 러시아 스타일의 다양한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후 세르기예프 포사드는 마트료시카 생산의 중심지가 되고, 그 명성에 걸맞게 현재도 그곳에는 마르툐시카 공장과 마트료시카 박물관이 있다.


세르기예프 포사드의 러시아 마트료시카 박물관(출처: museum-sp.ru)


마트료시카는 상징적인 창조물로도 인식되었다. 특별 주문 제작된 마트료시카가 결혼식이나 기념일, 기타 축하 행사용 아이템으로 등장했다. 그 예로, 1909년 작가 니콜라이 고골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문학 작품 <타라스 불바>, <검찰관>을 바탕으로 한 마트료시카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또 조국 전쟁 발발 100주년이 되던 1912년에는 전쟁의 주요 인물인 나폴레옹과 쿠투조프를 주제로 한 러시아군과 프랑스군 마트료시카가 제작되었다. 사라판 의상을 입은 소녀라는 전통적 마트료시카의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 부여가 시작된 것이었다.


<타라스 불바>를 묘사한 마트료시카, 나폴레옹과 쿠투조프 주제의 마트료시카(출처: museum-sp.ru, orgonomicscience.org)


소련 시절에도 마트료시카의 생산은 계속됐다. 인형 제작 기술은 지역 장인들에게 전파되었고, 소련 때는 거의 전국적으로 생산이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지역마다 마트료시카의 고유한 색채 기법과 주제를 가지게 되었고, 특별히 세르기예프 포사드를 비롯해 세묘노프, 뱌트카 등에서 생산된 마트료시카는 지금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다양한 주제로 센스 있게 제작된 마트료시카는 러시아를 더욱 잘 기억하게 한다. 러시아 동화, 위인들, 역대 지도자 등 테마별로도 만나볼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 오랜 시간 인기를 끄는 건 단연 전통 스타일의 소녀 마트료시카일 것이다.


다양한 테마의 마트료시카(출처: ozon.ru, etsy.com)


마트료시카의 저변은 확대되어갔다. 행사 때 등장하는 크고 작은 구조물에서도 마트료시카가 보인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형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마트료시카는 단연 러시아를 상징하는 대체 불가한 이미지이다.


모스크바에 설치된 황금 코코시니크 마트료시카와 자랴지에 공원의 마트료시카 미디어 아트(출처: gazeta.ru, mos.ru)



마트료시카 제작 과정과 선별법


요즘은 마트료시카 제작을 체험할 수 있는 곳들이 꽤 있다. 잘 깎인 나무 위에 내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자기만의 마트료시카를 만드는 것이니 얼마나 특별한가.


아이들을 위한 마트료시카 마스터클래스(출처: museum-sp.ru)


마트료시카를 만들 때 사용되는 나무는 대부분 피나무이다. 피나무는 재질이 부드럽고 건조 시에 나무가 잘 갈라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오리나무나 자작나무도 드물게 사용된다고 한다. 통나무째로 몇 년 동안 보관하며 건조된 후에야 상품의 가치가 있다. 아무래도 러시아는 삼림 부국이기도 하기 때문에 재료 조달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선반에서 형체가 다듬어지는 마트료시카(출처: culture.ru)


마트료시카 제작 과정은 이렇다. 목재가 준비되면 유일하게 일체형인 가장 작은 인형부터 만든다. 인형 본체는 가운데가 열리는 특성상 상부와 하부로 나뉘는데, 그 안에 작은 인형이 들어갈 수 있도록 다음 큰 인형의 상하부 안쪽의 나무를 제거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어 그 다음 크기의 인형도 같은 식으로 반복해서 가공한다. 이때 돌아가는 선반에서 이루어지는 장인들의 다듬는 기술이 핵심이다. 인형 개수는 적게는 3개부터 열개 넘게까지 다양해질 수 있다.


마트료시카 장인의 채색 작업(출처: culture.ru)


형체가 다져진 목각들에는 바니시를 바른다. 목재 최종 건조와 광택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예술가의 채색 작업이 들어갈 수 있다. 그림은 수채화, 구아슈, 템페라, 그리고 가끔은 유화로 그린다. 마트료시카 장인들은 대체로 마르면서 색이 진해지는 구아슈를 선호하는 편이다.


마트료시카 바닥에는 그림을 그린 작가의 사인이 남아있다. 특별히 양질의 것을 선별하고 싶다면 마트료시카 세트가 잘 열리고 닫히는지 하나씩 다 열어볼 필요도 있다. 잘못된 공정 과정으로 뻑뻑해서 잘 열리지 않는 것도 있고, 어떤 것들은 헐거워 너무 쉽게 열리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마트료시카(출처: sivka-burka.com)


큰 인형부터 가장 마지막의 인형까지 그림이 정교하게 그려졌는지 살펴보는 것도 포인트이다. 어떤 것들은 인형을 열어 안으로 들어갈수록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충 그려진 것도 있으니 말이다. 가격은 크기와 품질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같은 가격이라면 이런 세밀한 것들을 비교해보면 된다.


마트료시카도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좋은 것을 골라내는 재미도 있는 게 아닐까.

이제는 단순히 아이들의 장난감을 넘어서 어른을 위한 장식용 예술 작품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인천 연안부두에 가면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이 있다.

인천과 상트페테르부르크는 2010년부터 자매 도시라 특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물론 명칭에 비해 대단한 게 있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광장 초입에 러시아식 탑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대신 해안가에 세 개의 마트료시카 단면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역시나 누가 뭐라 해도 러시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직관적이고 기분까지 좋아지는 알록달록 상징물 아닌가.


인천 연안부두에 있는 마트료시카 구조물


마트료시카는 이처럼 우리에게도 이미 너무나 익숙해진 '러시아' 이미지임은 분명하다.


언제든, 아디서든 마트료시카를 만나면 자연스레 이렇게 인사하게 될 것 같다.


안녕, 러시아!


*원문 관련 영상[장난감에서 러시아 대표 이미지로, 마트료시카]

출처: 유튜브 채널 여행과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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