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치면 괴로움에 빠진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당장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리고 상황이 진정되길 기다리거나, 난관에서 벗어나려 무던히 애를 쓴다. 정상 궤도에 복귀하기까지 시간은 걸리지만, 그래도 지나고 나면 한층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대부분.
고등학교 1학년, 환경이 바뀌고 공부 스트레스로 갑자기 피부병이 찾아들었다. 그것도 얼굴에 새하얗게! 멋을 부리지도 않았지만 숙녀 낯바닥에 피부병이라니! 사는덴 지장 없고 얼핏 잘 안 보이기도 해 정작 난 심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얼굴이라 빠른 치료가 필요해 매주 병원을 다녔다. 약을 먹으면 온몸이 부어 힘들었고, 해를 보면 안 되니 체육시간엔 교실이나 그늘에 앉아있었다. 멀쩡하던 난 졸지에 병자였다.
환부가 줄기는 했지만, 금방 끝날 것 같던 치료는 몇 년이 흘러 대학생이 되고, 졸업 후까지 이어졌고 완쾌되지 않았다. 오히려 스트레스 심할 때마다 피부병은 얼굴에 해처럼 더 빛났다. 이놈 덕분에 난 대학생이면 다들 다녀온다는 배낭여행 한 번 못 갔고, 어디든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실천하며 그늘을 찾거나 얼굴엔 늘 찐득한 선크림을 잔뜩 발라야 했다.
내 주제에 무슨 여행이야...
아예 포기하고 여행할 생각을 접었다. 언제 터질지 몰랐던 혹을 달고 사는 동안 병원 의사 선생님은 이미 나의 성장기를 다 보셨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러시아 교환학생을 다녀온 1년 동안은 내 피부가 잠잠했다. '이건 뭐지?' 심적으로 러시아가 편했던 걸까.
학교를 졸업하기 전 회사에 입사하는 바람에 내 젊은 시절 여행 찬스는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다. 남들 어디 다녀왔단 얘기만 들어도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내심 아쉬움이 남았나보다. 그런데 그 때까지도 몰랐다. 여행이 나의 유일한 치료약이라는 것을.
직장에 들어가고 꿀 같은 휴가기간 나는 여행의 걸음마를 시작했다. 휴가 때 쉬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업무 환경이라 나는 어디론가 최대한 멀리 떠나야 했다. 얼굴 따위는 이제 선크림으로 다 덮어버리고 가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처음 여행을 시작한 것이 동기 언니따라 떠난 우즈베키스탄 여행!
첫 여행의 기억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직장인 5년차, 설렘 안고 처음으로 유럽 자유여행을 떠났다. 물론 많은 국가는 아니었지만, 준비 과정이 즐거웠고 여행가방을 어떻게 꾸리는지 몰라 다 내 방식대로 시작했다. 여행하는 동안 엄청나게 걸어다니며 사진으로 접한 곳들을 직접 보니 마냥 행복했다. 그렇게 20대 끝나락 여행에 맛을 들였다.
나는 늦깎이 여행자
그렇게 시작된 여행을 매년 조금씩 이어갔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을 비롯해 이제는 러시아 위주로 드나들면서 피부병은 점점 잊혀진거 같았다. 놀라운 건 여행을 가서, 특히 러시아에서 찍은 나의 사진은 하나같이 다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이었단 사실. 그리고 얼굴의 병도 잘 보이지 않았다. 행복한 마음이 병을 이긴 건가 보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거로구나!
여행을 대학생 때 많이 해보지 못한 건 분명 아쉽다. 하지만 사회도, 세상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한들 나라면 아마 보지 못한 것들이 더 많았을 것 같다. 오히려 지금은 스스로 많은 어려움을 지나 세상을 어느 정도 알고, 또 넓게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겨서 한층 더 다른 세상을 만나는 여행이 가능해졌으니.
나의 이십년지기 업보 같았던 피부병은 지금에야 보니 내게 적절한 여행 시기를 알려준 것 같다.
내가 아직 완쾌하지 못한 너를 이겨낼 방법은 오직 행복해지는 일 뿐, 그건 바로 러시아 여행이라는 것!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삶의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구나 싶다.
물론 그걸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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