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린날의 단상 & 완벽한 어머니
나의 유아 시절은 거의 기억에 없지만 마치 사진처럼 박힌 듯한 몇 가지 감각적 기억이 있다.
증조부의 길고 가지런한 숱이 적은 흰 수염, 푸른 하늘과 함께 보이던 검은 갓,
‘아가’하고 어머니를 부르던 증조부의 쉰 쇳소리,
그리고 증조부 초상치루던 날의 하얀 천이 나부끼던 천막,
왁자한 소리, 지짐 음식 냄새, 어두운 하늘 은빛가루 같던 은하수, 흔들거리던 촛불,
촛농이 머리에 떨어질 때의 뜨거움, 그리고 나의 울음소리, 나를 둘러업던 숙모의 몸 내,
동네가 깨어나는 시간, 사람 소리보다 먼저 들리던 가축 소리 등
아득히 아련하게 몸으로 기억하는 몇 안 되는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달랑 형제라곤 두 살 어린 남동생 하나뿐이었는데 그 숙부가 결혼해서 얼마간 우리와 함께 살았다.
내가 음력 삼월 초닷새 생인데 숙모에 의하면 나는 또래에 비해 말이 좀 빠른 편이라 했다. 주로 나를 돌봐준 분이 바로 숙모였으니 잘 알았을 일이다. 그나마 나의 유아 시절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내가 커가는 동안 만날 때마다 숙모가 이야기를 재미나게 해 주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나를 데리고 동네 어귀 작은 시냇물을 건너는데 숙모는 먼저 건너가서 이제 서너 살인 나에게
스스로 건너오지 않으면 먼저 가버리겠다고 겁을 준 일이 있었단다.
어머니가 물 공포가 심한데 나는 오죽했을까, 숙모는 놀리느라 나를 두고 건너가 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사람들이 나를 알기 위해 시험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암튼 숙모는 이때 세 살 꼬맹이의 기상천외한 말을 듣고 기함했다고 했다.
"작은 아버지한테 다른 작은 어머니 얻어 오라 해야지."
그러면서 날 건네주지 않으면 작은 엄마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까지 하더란다.
잔망스러운 7세 이전의 나의 유아동 시절의 모습은 숙모의 재미있는 입담으로 내게 전해졌다.
숙모는 어린 나에게 장난치고 말 붙여주고 뭐라 뭐라 종알거리면 대거리해주는 나의 어른친구였다.
나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던 것 같다. 지금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꼭 물어본다.
의문이 생기면 끝까지 묻고 이해해야 자리를 벗어난다.
그러니 바쁜 어머니보다 느릿느릿한 숙모가 적격인 것이다.
숙모는 내가 뭔가 궁금해하면 마치 나를 친구 대하듯이 설명을 해주곤 했다.
어머니는 바쁜 집안일을 제쳐두고 아이 말대꾸나 해주는 숙모를 못마땅해했다.
그럼 나는 눈치를 채고 벗어날 궁리를 하는데 숙모는 눈치가 없는 편이라,
“자네는 애한테 별 쓰잘 데 없는 말을 그렇게 하는가? 어서 광에 가서 무말랭이나 내오게”
'땍' 거리는 소리가 나야 멈춘다. 그제야 숙모는 무심하게, ‘네’하고 광으로 가신다.
두 분의 성격이 이렇게 다르니 나이가 들어가고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두 분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깔끔하고 부지런하고 야무진 솜씨는 음식 장만이든, 농사일이든 무얼 하든지 빛났다.
고향 마을은 집성촌이라 거의 한집안 간으로 살았는데, 어머니에 대한 평가와 인심은 그야말로 갑이었다.
서울로 일찌감치 올라온 우리와 달리 고향을 지켜오던 먼 친척 할아버지, 할머니, 당숙분들이 계셨다.
설, 추석 명절에 부모님과 함께 고향 마을에 가곤 했는데 갈 때마다 그분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버선발로 나와 반겨주었다. 사실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반긴다는 것은 나는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각 집에 가져갈 선물로 언제나 하얀 봉투에 빳빳한 현금을 넣었다. 아버지가 고기, 과일 어쩌고 하면 하얀 현금이 든 봉투를 들어 보이며,
"이거 하나면 돼요. 무겁게 무얼 그리 바리바리 챙겨가요. 시골음식이 더 맛난데."
그리고 명품백에 고향 어르신들에게 드릴 하얀 봉투들을 정성스럽게 담았다.
나의 눈치 빠름도 어머니의 촉 능력을 물려받은 거 아닌가 생각했다.
어머니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적도 동지로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
기가 막히게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간파하고 그것을 적시에 내밀었다.
어머니의 갑을(甲乙) 관계의 타고난 감각적 판단 능력은 모두의 입장을 알아주고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이해시켜 어떤 송사 날 일이라도 어머니가 나서면 해결이 되었다.
엄마의 그런 능력에 대해 칭찬이 가득한 평판이 드높았다.
단, 어머니는 당신의 유능함과 지혜에 대해 칭찬과 인정함이 없는 사람은 말귀가 어둡고 말이 안 통한다고 판단하고 그 사람에게는 귀와 입을 굳게 닫았다.
그것은 어머니가 사람관계에서 실수하지 않는 매우 탁월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노년에 많이 외로워지셨다.
실수하지 않는 나의 어머니! 완벽한 어머니!
그 슬하에서 자란 우리 형제자매들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러나 어디 인생이 호락호락하던가.
우리는 실수 투성이 삶을 살아내고야 말았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기어이 많은 수강료를 지불하며 깨달은 것,
'실수는 어릴 때 해야 수강료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