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의 어머니

시어머니 요양원에 모시는 날

by 운정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

점점 식사량이 적어지고 죽만 겨우 조금 드시더니 대변이 안나와 얼마간을 고생하셨다. 노구를 일으켜 안고 업고 차에 실어 병원에 왔다갔다 해드리는 등 형님네가 근처에 사시니 매일 아침저녁으로 드나들며 구완하고 있었다. 하도 기력이 쇠하시니 홍삼액을 드린다, 진밥을 해 미역국에 말아 드린다 이것이 좋을까 저것이 좋을까 다 해보셨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날부터 울컥울컥 다 토해내어 병원에 갔더니 이제 건더기는 넘기기 어려우니 죽만 드셔야 했다.

요양원에 모시기를 조심스레 의논해오셨다.

형님은 친정어머니도 안아픈데가 없다시니 가까이 사는 형제들이 돌아가며 돌보고 있어 일주일에 이틀 이상은 친정에 가셔야 했다. 남편은 형제가 셋인데 그나마 시누형님은 서울사시고 우리 내외는 맞벌이에 두시간 거리 다른 도시에 살고 있으니 시아주버니 혼자 너무 벅찼을 것이다. 어쩔수없이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

노인 돌봄은 신생아 돌봄과 똑 같다. 하루 종일 자다깨다를 반복한다. 잠시 눈뜨면 뭘 먹을걸 달라하고 물과 두유같은 음료를 간식으로 드려야한다.

삶에 대한 집착? 이랄까 애착욕구라고 해야 할까?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잊어버려도 구강기의 아기처럼 입에 뭐라도 들어가야 살아있다고 확신하는거 같다.

형님네가 금토일 연달아 모임과 작은 딸 혼인전 가족상견례가 있다고 서울에 며칠 다니러 가신다며 금요일 오전일찍 오라 호출하셨다. 나는 상담예약이 없었던 터라 시댁에 오전 일찍 먼저 오고 남편은 오후 반차내고 오후 늦게 왔다.

그 와중에 서울사는 큰 시누이는 어머니가 다녔던 교회 목사님에게 어머니 심방예배를 부탁하여 우리에게 손님까지 치루게 하였다. 심방오신 목사님은 우리내외에게 설교를 하셨다. 암튼 오셔서 안수기도 해주고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실것을 빌어 주었다. 좋은 말씀에 감사했다.

열심히 찬송가 부르며 맘속으로 기도했다.

어머니 편안하게 살다 돌아가시기를.

그러고보니 어머니 돌아가시는게 당연하다 여기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진정 우리는 노인이 되면 죽는거라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왜 노인이 되면 죽는거라고 생각하는걸까?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서?

아무 가치있는 일을 못하니까?


신생아는 미래가 있어서 정성껏 돌보고

노인은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미래가 있어야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미래가 있다는건 인간관계,사회적, 경제적 측면의 생산적 가치를 말하는 건가?

극도로 쇠약한 노인과 중증 장애인처럼 스스로 생존하기 어려운 사람에 대한 가치 존중은 무엇일까?

생명에 대한 경외와 존중,

어떠한 조건도 가치도 뛰어넘는 그것,

나는 이것을 존엄성이라 부르고 싶다.


어머니는 정신이 깨어나기만 하면 말씀하신다.


"몇시냐?"


"너흰 밥먹었냐? 꼭 먹어라."


"편안히 잤냐?"


아들인 남편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살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요?"


"어, 젊어서 일할 때가 행복했지.. 음, 일할 때가 좋았어,."


토요일 오후에 할머니 돌봐드리겠다고 막내딸이 왔다.

딸은 요즘 일하는게 힘들다고 투덜투덜대며 어떤 일이 가장 자신에게 맞는 일인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노환의 할머니가 하는 말에 적잖이 놀랐나보다.


'일할수 있는 때가 행복하다'


딸은 노환에 든 할머니를 보고 인간의 생애전체를 조망해보는 것 같았다.

나또한 4일째 되는 오늘까지 어머니수발을 들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전망해보기도 했다.

부모의 삶은 자식에게로 전수되며 끊임없이 인간은 더 나은 삶을 꿈꾼다. 삶의 의미는 각자 모두 다를것이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아무것도 할수 없는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 아무것도 도움을 줄 수 없는 그런 때가 누구나에게 온다는 것이다.

오늘 오후에 형님내외분이 서울에서 오시면 어머니는 요양원에 입소하게 될 것이다.


내가 결혼한지 36년째,

그러니 어머니를 만난지도 36년이 지났다.

부족하고 서툴던 나를 많이 어여삐 여겨주신 어머니,

나에게 두번째 어머니인 시어머니는 참 친절하셨다.

어머니는 순하고 다정하신 분이었다.

또 한편으로 어머니는 매우 고집스럽고 줏대가 강하신 분이었다. 어머니가 하기로 결정한것은 그대로 해야 했다.

살면서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뭔가를 결정할 때 어느 한쪽편만 고려하는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이점을 따져서 신중하게 취사 선택하여 결정한다는것을. 그래서 한번 결정한 것을 뒤집는 법이 없었다. 어머니의 결정은 절대적으로 옳다기 보다 당신이 선택한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80세 되던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아침먹고나서 아들 며느리 한데 모으시고,


"이제 올해부터는 모든 제사, 명절을 나는 지내지 않겠다. 큰아들, 작은아들, 며느리들이 알아서 결정하여라.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너희들 결정을 따르겠다."


그리고 큰시누가 원하는대로 어머니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교회를 다니셨다.

하, 우리 어머니 머리 진짜 좋으시다!

감탄이 나왔다.


결국 큰아들 집에서 두번의 명절만 지내는데 추도 예배로 대신하고 각자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큰집에 모여 먹고 놀기로 했다.

명절날, 모여 밥먹고 근처 주변 여행을 다녔다.


오늘은 96세의 시어머니가 요양원에 입소하는 날이다.

5년전, 아버지는 93세로 요양병원에서 2주정도 계시다 돌아가셨다. 집에서 거의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평생을 사셨다.

이제 어머니는 요양병원이 아니라 요양원으로 가신다.

아무도 어머니를 24시간 돌봐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의 일생은 그렇게 쓸쓸히 혼자서 스러져간다.

어머니, 자주 찾아 뵐게요.


2025.9.22. 월. 낮 12시 2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