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꽃

by 이영선

내가 사는 아파트 뒤에는 조그만 산이 산책로와 함께 이어져있고, 그곳에는 이 곳에 사는 사람들만 아는 숨어있는 복숭아밭이 있다. 이곳에 살면서도 이 곳이 복숭아밭인지 작년에 처음 알았는데 여름에 복숭아가 난데없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신기해서 이후 자주 가서 들여다보곤 했다. 내가 돈이 많다면 닭장 같은 아파트보다는 매년 아름다운 진분홍 복숭아꽃이 피고 탐스런 복숭아가 열리는 그 복숭아 밭을 사고 싶다. 주인이 왔다 가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복숭아가 제멋대로 크는 걸 내버려 두는 것을 보니 주인은 복숭아밭에 그리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렸을 적 시골 친할머니 댁에서 1년간 살았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옆에 신기한 것을 보았다. 회색 가지가 모두 분홍색 꽃으로 뒤덮인 무수한 나무들이 있었다. 난생처음 지천으로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을 보고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황홀했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집에 가져가면 모두들 놀라고 기뻐할 것 같았다. 그래서 손에 닿는 대로 꽃이 달린 가지를 마구 꺾어 양 팔로 한 가득 움켜쥐고 집의 대문 안에 들어섰는데 내가 무엇을 가져왔는지를 말하기도 전에 마당 툇마루에 앉아있던 가족들이 놀라는 표정으로 있다가 주위를 살피더니 꽃을 얼른 빼앗아 수돗가에 있는 커다랗고 빨간 고무대야에 집어넣었다. 나는 이 황홀한 것들이 왜 볼품없이 빨갛고 큰 고무대야에 몸을 숨기고 들어가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생각대로라면 이것들은 가족들의 감탄사와 칭찬과 함께 꽃병에 꽂혀야 했다.


"누가 본 사람 없어?"

나는 아무도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걸 왜 꺾어왔어?"

가족들은 난데없이 나에게 화를 냈다.


그게 복숭아꽃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과수원 주인이 보았으면 무척 화를 냈을 것이라고 했다. 꽃은 복숭아가 돼야 하는데 나는 꽃이 복숭아가 되기도 전에 마구잡이로 가지들을 꺾어서 복숭아를 훔치고 과수원을 망쳐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냥 아름다운 것들이 산에 지천으로 피어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에 주인이 있는 것인지 몰랐다. 이후 복숭아꽃을 보면 늘 그때의 장면이 생각난다. 복숭아꽃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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