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 원을 주고 되찾은 기억
10년 전 망가진 하드디스크를 복구하며
산지 얼마 되지 않아 고장 난 외장하드를 복구하며 10년 전 기억을 되살렸다.
오래전 컴퓨터가 방전되면서 함께 꽂아 놓은 외장하드가 순식간에 나가버렸다. 그간 찍은 사진과 온갖 파일들이 다 저장되어 있었는데, 디스크 복구 방법도 모르고 당시 복구 가격도 너무 비싸게 나와 있어서 생각해보니 굳이 당장 필요한 파일도 없는 것 같아서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쓰지도 못하고 10년간 없어도 그다지 큰 문제는 없어서 외장하드를 버릴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일부 소중했던 사진과 동영상 자료들이 자꾸 생각이 나서 디스크 복구 업체를 찾게 되었다. 복구 가격은 다행히 현금가 20만 원이었는데 무려 125기가만큼의 파일이 들어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다행히 99% 이상 복구가 되었고, 집에 와서 마치 책장에 묻어둔 타임캡슐을 열어보는 마음으로 디스크를 열어보았다.
과거를 돌아보면 사람이 우울해지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된다고들 한다. 그래서, 이사를 가거나 청소를 하면서 과거의 안 쓰는 모든 물건들은 버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든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당시의 모든 희로애락은 모두가 아름답고 슬픈 추억처럼 느껴져서 우울해지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파일을 열어보고 나의 추억을 되돌아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보는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 그런 기계는 아직 없지만, 사진이라는 것에 과거를 동결시켜 그 이미지만이라도 돌이켜 볼 수 있는 것도 일종의 시간여행이라는 생각이다.
한 달 전, 일 년 전, 문득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과거가 아닌 10년간 볼 수 없었던 파일들을 한꺼번에 되찾고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외장하드를 버리지 않고 복구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그 시간 속의 내가 내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 시절 나에게, 그리고 다시 현재의 나에게, 그리고 앞으로 이를 잊을 수도 있는 미래의 나에게 문득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Be Present!"
이 말은 설명과 해석이 아니라 오직 깨달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에게는 ‘존재감’이라는 용어를 쓴다. 이 의미를 깨닫고 볼 수 있기까지도 시간이 걸린다. 삶에서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주어진 환경, 시간과 공간, 그 순간을 온전히 살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속에 내가 보냈던 시절이 보였다. 웃고 있는 내 모습 뒤에 숨겨진 그때의 번민과 불안함이 보였다. 그냥 활짝 웃으면서 그 시절을 온전히 살기에 너무나 완벽히 주어진 환경이었는데 내 맘 속에는 늘 불만족과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 동시에 있었다. 늘 거기가 아닌 다른 어디여야 했고,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어야 했다. 다 불행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때의 순간들을 더 온전히 즐기며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어느 지점을 혼자 정해놓고 쫓기듯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삶은 없으며 그때보다 더한 무엇을 지금 찾는다는 것조차도 올바른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 속의 나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더 웃고, 행복해도 돼. 너의 고민이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아무것도 변하게 하지 못할 거야.”
성경에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무엇을 입을지 먹을지도 고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는커녕 약만 오르는, 열 받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을 보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걱정과 고민은 시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있어야 할 것은 있겠고 올 것은 와서 지나갈 때가 되면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걱정하고 신경 쓸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순간이라도 그저 내게 주어진 역할과 삶을 온전히 최선을 다해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행복하게 살아나가면 그뿐인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나에게 다짐한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의 사람들과, 내가 지금 밟고 있는 땅과, 내가 지금 바라보는 모든 것들을 그저 감사하고 사랑하고 즐기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