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속에서
내가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2021년 1월 6일, 폭설과 혹한의 추위에 대한 예보가 며칠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일기예보에 눈이 오는 시간대가 늦은 저녁시간 이후로 바뀌어있었고 예상 적설량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늘도 맑고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아서 직접 차를 가지고 길을 나서기로 했다. 폭설과 혹한의 추위보다는 공공장소를 거쳐 코로나의 감염 위험에 노출되는 게 더욱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겨울과 추운 날씨를 아주 싫어해서 매년 11월부터 스트레스를 받곤 했는데, 미국 북부에 있는 매우 추운 도시에서 4년 정도를 살다 온 이후로 한국의 겨울에 대해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길 양쪽에 눈이 키높이까지 쌓여있는 것은 기본이고, 어그부츠, 장갑, 목도리, 모자 등으로 살점을 가리지 않고는 도저히 밖에 나갈 수 없는 추위 속에서 살았는데 한국의 혹한이라고 해봤자 초봄 날씨 정도라고나 할까?
새해부터 기분 좋게 안국동 한 갤러리의 공간 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갤러리 대표와 처음 만나는 약속이라 약속일을 굳이 변경하고 싶지 않았고, 전시 공간을 빨리 보고도 싶었다. 낮 시간이라 그런지 고속도로와 서울 시내를 거쳐 거의 한 시간 반 만에 수월하게 천안 집에서 안국역까지 도착했다. 미팅을 끝내고 교통체증 시간을 피해 바로 집으로 내려왔어야 하는 건데, 코로나로 근 일 년 만에 서울을 방문한 거라 그간 전화통화만 하던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여러 전시를 보러 이 일대를 종종 들르곤 했는데 평소와 달리 거의 텅 빈 거리 풍경이 무척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한적한 산책을 즐기기엔 무척 좋은 조건이었다. 친구와 발길 닫는 대로 서촌과 북촌의 동네길을 한참 거닐고, 사람 없는 커피숍에서 간단한 요기도 하면서 그간 못한 얘기를 나누다가 거의 6시가 되어서야 현대 계동사옥 주차장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차도가 온통 퇴근하는 차들로 주차장으로 변한 서울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설상가상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흰 눈이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상으로는 아홉 시나 돼서야 눈이 온다고 표시되어 있어서 당황스러웠지만, 한두 시간 내에 무슨 일이 있으랴 싶은 생각에 어떻게든 집으로 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벽까지 눈이 온다면 다음날에도 길을 나서긴 힘들 것 같기 때문이었다. 또한 운전을 하고 있어서 숙박을 예약하기 위해 핸드폰 앱을 만지작 거릴 상황도 아니었다.
눈은 갑자기 굵게 변하며 광화문 일대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길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남산터널 입구까지 거의 삼십 분 넘게 걸렸던 것 같은데 눈이 쌓여 앞에 가는 차들이 터널로 가는 낮은 오르막길 곳곳에서 서거나 미끄러지며 차선을 막아서 시간은 더 지체되었다. 나는 터널만 지나면 직진방향으로 고속도로까지 오르막을 미끄러질 염려는 없을 것 같았고, 어떻게든 버텨 고속도로까지만 나가면 왠지 제설작업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굵은 눈에 시야는 가려지고 고속도로 나가는 출구는 눈에 덮여 어디인지 분간이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고속도로 입구까지도 거의 두 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정말 차를 세울 수도 어디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그대로 여러 차들과 함께 빽빽하게 앞으로 브레이크만 떼고 굴러가는 정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이런 날 차를 가지고 서울에 오고 눈길을 그대로 운전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류들이라 비난했을 텐데 이 날 내가 딱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왜 그런 경우 미끄러운 눈길을 굳이 그대로 운전하며 가야 할 수밖에 없는지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몇 번 안 오는 눈 때문에 도시에서 스노타이어를 장착하고 다니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고, 일단 도로에 나온 상태라면 미끄러운 타이어를 달고 예측 불가능한 도로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위험을 감수하고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갓길 주차공간도 없는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에서 나 혼자 살겠다고 차선 하나를 다 막아서고 기약 없이 차를 두고 나올 수도 없는 일이고 나와서도 어디로 걸어서 빠져나갈 방법도 없다. 차선 변경을 하려고 해도 빽빽한 차들 사이에서 앞차의 바퀴가 지나간 곳을 따라 조심히 가는 상황에서 옆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을뿐더러 자칫 차선에 두껍게 밀려 쌓여있는 얼음 눈을 지나면서 핸들의 통제력을 잃게 되면 그대로 여러 차들을 박고 미끄러지는 참사가 일어날 것 같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나는 내 운전 인생에서 최악의 날을 맞이했다. 안국역에서 천안의 집까지 6시간 가까이 걸렸다. 처음에는 그냥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적설량이 1-4Cm 정도라고 했고 그 정도는 스노타이어 없이도 저속으로 충분히 안전히 갈 수 있는 상황인걸 이미 외국 도시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타이어를 교체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연료도 충분히 있었으며 미리 화장실도 다녀온 상태라 주변을 둘러보며 그러지 않은 차량들도 있을 것 같아 남 걱정까지 하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도로 한가운데에서 바로 앞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보는 것도 나름 독특한 경험으로 생각하면 신나는 일 같아서 오히려 즐겨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거의 세 시간쯤 지나 기온이 더 떨어지고 적설량이 예상치를 넘어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쌓여서 흰 눈으로 있던 것이 나중에 녹은 물과 엉겨 붙어 밤이 깊어지면서 떨어진 기온과 합세해서 완전 우둘투둘한 얼음이 되었는데 정말 진퇴양난의 상황이 이런 것인지 서지도 가지도 못했다. 정말 여차하면 미끄러질 것 같은 운전의 한계 상황에 다다르자 나는 공포 속에서 핸들을 꼭 붙잡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울기 시작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곳곳에 차들이 깜빡이를 켜고 서거나 사선으로 미끄러져 있었고, 나는 차선 변경은 꿈도 못 꾸고 고속도로 전용차선 옆 2차선에서 앞차들이 지나간 바퀴 자국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면서 낮은 속도로 운행을 계속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가야만 했다. 아직 팔십 키로를 더 가야 하는데 벌써부터 자꾸 ABS가 작동하면서 드르륵 거리면서 나를 더욱 공포에 몰아넣었다. 와이퍼에 굵은 눈이 눈사람처럼 커다랗게 뭉쳐서 엉겨 붙었고 밖의 기온 때문에 안에서 히터를 켜도 차창밖으로 얼음이 끼어 와이퍼가 거의 망가질 지경이라 작동을 안 하느니만 못했는데 눈은 자꾸 내렸다. 나는 운전을 한다기보다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로 그저 핸들 하나를 목숨처럼 부여잡고 곧 일어날 사고의 순간을 맞이하는 상태로 극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부상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부터, 차가 구르면 돌아다닐 딱딱한 물건들을 가방에 미리 넣어두어야 하는지 등 여러 잡다하고 극단적인 생각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얼른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며 뛰어다녔을 때 나는 늘 놀이를 시작하자마자 잡혀서 술래가 되곤 했다. 어느 날 술래가 된 아이가 나를 거의 잡을 만큼 가까이 왔을 무렵 나는 다른 때처럼 미리 포기하고 잡히는 게 아니라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도망을 갔고, 그 날 이후로 술래가 되는 일이 많이 없어졌다. 그동안은 마지막 잡힐 것 같은 순간에 미리 포기하고 나를 술래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에 술래가 된 것이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상대는 그걸 본능적으로 아는 듯했다.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맹수의 추격으로 잡힐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도망을 가서 살아남는 동물들도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끝까지 도망가고자 하는 의지가 쫓아오려는 의지를 넘어섰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처럼 보였다. 생각은 행동을 리드하는 씨앗인 것이다.
나는 내가 사고가 날 상황이라고 체념하면 나의 그런 생각이 사고를 필연적으로 낼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우선 집에 드디어 도착해서 따뜻한 샤워를 하는 것을 계속 상상했다. 그리고 내가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던 사람이란 걸 그제야 떠올렸다. 나는 내 몸과 차가 일체가 된 것처럼 예민하게 느끼면서 스케이트를 지치는 것을 상상했다. 실제로 스케이트를 타고 나와 운전을 하면 스케이트처럼 부드럽게 차가 나가면서 도로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 같은 매끄러움을 느끼곤 했다. 아마 발의 감각이 섬세해져서 그런 것 같았다.
사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단 한 가지 남은 할 수 있는 것을 했는데 그건 기도였다. 나는 여러 번의 실망스러운 경험으로 인해 교회를 나가지 않은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참 이제 와서 기도란 걸 하고 하나님을 찾는다는 게 좀 민망스럽긴 했지만 뭐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마구마구 떠오르는 대로 기도를 했다. 아무튼 다 내가 잘못했고 성경책도 앞으로 꼭 읽어보고 앞으로 착하고 겸손하게 살 거니까 집까지 잘 데려다 달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살면서 그렇게 잘못을 하고 살았나 싶었는데 긴 시간을 달리면서 끊임없이 생각해보니 별 세세한 것이 다 잘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감사하게도 집에 기적처럼 도착을 했다. 다음날 아침까지도 내가 살아있는 게 실감이 안 나서 멍하니 있었으니 내가 얼마나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상황을 견디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차에서 내려보니 차량 상태가 가관이었다. 나는 내 하얀 차가 이렇게 새까맣게 변할 수도 있는지 처음 알았다. 석탄을 뒤집어쓴 모양새에 번호판이고 유리창이고 얼음이 두껍게 엉겨 붙어 떨어지지도 않았다. 차는 이틀이 지난 지금도 주차장에 검은 차가 되어 그대로 있다. 다행히 밤새 살짝 눈이 한 번 더 내려 검은색을 다시 덮어서 지붕은 조금 나아 보인다. 더러워서 세차를 해야 하는데 날씨가 풀려야 번호판에 얼음이라도 떼어내고 세차장까지 운전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이 최악의 폭설 운전을 하면서 기도한 것이 있어서 앞으로 겸손하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