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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Aug 03. 2021

첫 번째 작업실

인테리어 호구 게임 레벨 1

첫 번째 작업실은 누군가 쓰던 부동산을 그대로 작업실로 쓰게 된 것이었는데, 위치는 시내 중심에 있어서 좋았으나 아주 오래된 건물의 2층에 있었다. 나는 돈이 많지 않았고 매달 나가던 연습실 대관 비용을 조금 아끼겠다고 있는 푼돈을 모두 모아서 최소한의 공사를 진행했다. 다른 인테리어에는 일체 비용을 들이지 않고, 무용을 할 수 있는 충격흡수 마루와 원래 있는 가벽에 거울만 설치하고 낡은 부동산의 공간 구성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무용 전문 바닥 설치는 특수한 시공이라 무용인을 위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광고를 많이 하던 서울의 한 업체에 공사를 의뢰했다. 왠지 서울에서 무용인들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알려진 업체라면 신뢰를 해도 될 것 같았다. 광고만 보면 단정하고 예쁜 사람들이 친절하고 깔끔하게 일처리를 해줄 것만 같았다. 그간 시공했다고 하는 잘 알려진 학교나 기관들에 대한 리스트도 기재되어 있어서 더 신뢰가 갔다. 그 업체에서 무용 연습에 필요한 스테인리스 발레 바도 함께 구매를 했다. 여기서부터 이미 닥쳐올 미래의 불행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공사비는 업체에서 요구하는대로 순순히 모두 선불로 지불했다. 멍청한 짓이었다. 인테리어, 아니 세상살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저 마트에서 돈을 주고 물건을 사듯이 전문가에게 돈만 주면 알아서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줄 줄 알았다.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하고 소비자는 그에 대한 대가를 돈으로 지불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현실은 아니었다. 현실은 예쁘게 꾸며놓은 동화 속 그림 나라가 아니었다. 공사비는 가급적 공사를 마친 후 상태를 점검하고 지불하는 것이 관례였다. 뿐만 아니라 난 그 흔한 견적서나 계약서도 쓰지 않고 요구하는대로 현금을 지급했다. 업체 직원의 얼굴도 사무실도 본 적 없는 상대를 인터넷 광고만 보고 단박에 믿었다. 차라리 이들이 애초에 돈만 떼먹고 도망을 갔다면, 나중에 공사 하자와 철거비로 인한 고생은 오히려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오죽했으면 이런 생각을 하겠는가. 


공사 당일 오전까지 밤새 보슬비가 내리다가 그쳐 가고 있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와 음료수 등을 구비하고 인부들을 기다렸다. 트럭에 합판을 한가득 싣고 도착한 업체 담당자는 무용을 전공한 조카라며 이쁘장하게 생긴 젊은 남자를 대동했다. 그래서 더 신뢰가 갔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무용인이라면 서로의 사정을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할 것 같았다. 밤새 비가 내린 후라 젖은 합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했지만 업체 직원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나는 외부강의 등으로 돈을 벌고 있었으므로 잠시 짐을 내리는 것만 지켜보고 모든 것을 업체에 맡기고 저녁에 다시 와보기로 했다. 나는 아주 예의 바르게 진심 어린 인사를 거듭하고 잘 부탁 하노라는 말을 남기고 아무 생각 없이 현장을 벗어났다. 저녁에 돌아오면 드디어 원하는 댄스 플로어가 깔려있는 꿈의 스튜디오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맘껏 춤을 출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한껏 설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도둑에게 열쇠를 맡긴 격이었다. 더 저주스러운 기분이 들었던 이유는 나는 정말 신사적으로 이들을 대했기 때문에 느꼈던 인간적인 배신감이었다. 이들은 웃는 얼굴에 침을 뱉는 사람들과도 같았다. 집을 짓든, 건물을 짓든, 인테리어를 하든 어떤 종류의 건축 관련 일을 하려면 절대로 그 현장을 뜨면 안 되는 것이었다. 


공사가 끝나면 미리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저녁때쯤 돌아가 보니 연락도 없이 인부들은 모두 떠나고 자루에 담긴 목재 쓰레기만 몇 개 나동그라져 있었다. 연락을 해보니 다음날 잠깐 와서 설치한 합판 마루 위로 고무로 된 댄스 플로어만 깔면 된다고 했다. 각기 다른 색과 무늬의 합판들이 조잡스럽게 연결되어 조금 거슬렸지만 나무가 다 다르니 그러려니 했다. 다음날 밝은 회색의 고무판이 깔리고 공간은 그럴싸하게 보였다. 이후 대략 열흘 정도는 정말 기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까만 벌레들이 매일 고무판 위로 잔뜩 기어 나왔고, 합판마루 사이에 단차가 생겼으며, 바닥 일부분이 꺼지고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벌레들은 미국에 있을 때 야외 소나무 숲 사이에서 공연을 하고 난 후 온몸에 달라붙어 붉은 두드러기 같은 증상을 일으켰던 그 벌레들과 똑같이 생긴 듯했다. 나는 그 벌레들이 나무합판에서 나왔음을 확신했고, 당일 아침까지 내렸던 보슬비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지은 지 오래되어 콘크리트가 덜 마른 건물도 아니었고, 상당히 두꺼운 벽으로 튼튼히 지어져서 누수나 내부에 습기 등으로 벌레가 나오는 그런 구조의 공간이 아니었다. 낮에는 삼면으로 둘러싸인 창문을 통해 늘 밝고 은은한 햇빛이 블라인드를 통해 내리쬐는 공간이었다. 


건축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유일하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 각기 문양과 색이 달랐던 얇은 합판과 밤새 내린 보슬비였다. 어느 곳에 이전에 없던 문제가 생겼다면 공간에 준 변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추측이 아니던가. 나는 젖은 합판이 공기가 안 통하는 고무판 아래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업체 담당자는 바닥에 누수가 있거나 수도 배관이 지나가고 있지 않냐고 물었지만, 건물주와 확인한 결과 사무실 내부에는 수도배관이나 배수구도 없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햇빛이 잘 드는 2층이 아니던가. 그렇게 결론도 없이 몇 번을 통화하고 한 번을 방문한 후 담당자는 본인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잡아떼며 연락을 두절해 버렸다. 


나는 고무판을 걷어내 보았는데 고무판 밑으로 곰팡이와 습기가 잔뜩 배어있어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그런데 뜬마루 시공을 한 합판 및 사무실 바닥 공간으로는 습기가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실 바닥에는 습기가 통할리 없는 데코타일이 이미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변 건축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물어봐도 모두 나와 비슷한 추측을 했다. 새로 변화를 준 것은 합판을 갖다 놓은 것 밖에 없으니 원인은 당연히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가장 확실한 추측이었다. 일주일 정도 바닥을 열어놓고 합판이 마른 듯하여 다시 고무바닥을 덮어 놓았는데 며칠 안 가서 또 똑같은 문제가 일어났다. 건축을 아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젖은 합판이 마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으며 사용한 자재가 최저가의 저질 합판이라 바닥재로는 사용하지 않는 종류라고 했다. 건축 공사현장을 가보면 공사기간 동안 내장재가 아닌 임시 외장재로 대충 쓰는 그런 합판들이 있다. 업체가 사용한 합판은 바로 그런 류의 저질 합판이었다. 또한 나무는 아무리 말라있어도 어느 정도 습기를 머금고 있는데 그 위에 바람이 안 통하는 재질인 고무판을 씌워서 실리콘으로 빈틈없이 밀봉하는 공법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정말 그랬다. 괘씸해서 소송을 하려고 법률 상담을 했는데 계약서나 감리사가 개입되지 않은 인테리어 시공은 구제받기 힘들다고 알려주었다. 억울한 사실을 해당 웹사이트에 글로 올리려고 했는데 사실을 직시해도 공개적으로 글을 올릴 경우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읽고서는 시도하지 못했다. 해당 회사 정보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니 인테리어 시공이 아니라 발레 바 전문 제작 업체였고 대다수의 리뷰 댓글이 인테리어 시공이 아니라 발레 바 구입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름 꼼꼼히 살펴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정보는 늘 문제가 발생하고서야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이 과정에서 상당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받았다. 임대료를 내는 동안에도 난장판이 된 공간을 어떤 목적으로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만일 이것이 작업실이 아니고 상업 용도로 기획된 인테리어라면 나는 개업도 못하고 사업이 망하는 상태로 치닫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무용실 임대비용 조금 아끼겠다고 내겐 전재산인 푼돈을 모아서 공사를 진행했던 것에 크게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무용을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일주일 이상을 쉰 적이 없는데, 무용을 못하고 근 한 달이 지나가버리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뜯어내자니 내 몸을 뜯어내는 것 같이 괴로웠고 그대로 두자니 사무실로도 사용하지 못할 장소가 되어버렸다. 공사업체는 단지 몇 푼의 돈을 나로부터 취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내가 공사비용 이외의 소모한 비용과 시간, 에너지, 그리고, 좌절감, 정신적 상처는 몇 푼 공사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된 공간을 원상 복구하기 위해 내 돈을 들여서 시설물을 다시 철거하기로 했다. 내 돈이 아니라 사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철거도 인테리어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것인지 몰랐다. 합판은 그냥 뜯어서 버리고 재활용을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재활용 가능한 나무가 아니라 화학물질이 뒤범벅이 된 산업 폐기물이었다. 그걸 전체 바닥에 깔았으니 양도 어마어마했다. 더욱더 가관이었던 것은 철거를 하려고 보니 못을 나무 장선과 바닥에 깊고 촘촘히 박아놔서, 장선을 떼어낼 때마다 건물의 바닥이 다 울퉁불퉁 뜯겨 나왔다는 것이다. 참으로 끝까지 ‘빌어먹을’ 인간들이었다. 몇 년 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면서 분노가 다시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무용실 댄스 플로어라 불리는 회색 고무 바닥재는 희소성 때문인지 시공업체도 많이 없고 설치비도 비싸서 무용인들 사이에서는 고급 인테리어 마감재로 여겨지는데, 근처를 지나가는 재활용품 수거인에게 물어보니 차라리 오래된 구식 장판은 재활용이 가능해서 수거라도 해가는데 무용실 댄스 플로어는 말이 고무판이지 전혀 재활용이 안 되는 폐기물이라 쓸모가 없다며 그냥 가버렸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대다수 순진한 무용인들 사이에 이상한 인테리어 판이 형성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철거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철거 비용부터 천차만별이었다. 그나마 여러 업체에 견적을 의뢰해야 한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나는 물건을 흥정하거나, 거절하거나, 돈 얘기를 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흥정이나 견적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대부분 바가지를 많이 쓰는 편이다. 철거를 하러 온 인부 두 명은 오전 두어 시간 동안은 뭔가 열심히 하는 척을 하더니, 점심을 먹고는 오후 시간이 한참이 지나도록 일을 하지 않았다. 웬일인지 물어보니 연장을 안 가지고 와서 한 사람이 가지러 간 동안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다시 한번 일의 속도가 더뎌지기 시작했다. 인부 한 사람이 내게 오더니 생각보다 일이 힘들어서 20만 원을 더 올려줘야 하겠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하겠다고 하고 일을 진행시켰다. 다 뜯어놓은 것을 놓고 그대로 가버리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나중에 이것도 나쁜 작업 인부들이 자주 써먹는 하나의 ‘수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더 회의감을 느끼게 했던 부분은 그들이 가까운 지인이 소개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인테리어 업체나 공사인부는 소개를 받는다고 해서 신뢰할 수 있는 부류들이 아니라는 것도 이때 배웠다. 그래서 소개를 받아도 일일이 직접 객관적 검증을 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첫 번째 작업실의 공사를 통해 인테리어 업체와 일을 할 때 시공방법과 하자보수에 대한 내용이 명시된 계약서를 반드시 받아야 하고, 공사가 큰 경우에는 감리사가 있어야 법률구제를 받기가 수월하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인부들이 보통 오전에 일을 하며 일의 분량과 소요시간을 자기들끼리 가늠한 다음에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소위 말하는 ‘농땡이’를 치다가 마감시간이 다 되어 휘몰아치듯이 일을 끝내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을 벌여놓고 마무리를 짓지 않는 상태에서 웃돈을 요구하는 성향이 있으니 이것도 반드시 일의 시작에 확실히 해놓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상대 입장에서 보면 ‘삥뜻기 좋은’ 호구였다. 그렇지만 모른다는 이유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일에 상대를 꼭 호구로 만들어야 세상을 잘 사는 걸까? 나는 이들이 타인을 호구로 만들어 놓고 사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의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도대체 이런 걸 어디서 배워서 알 수 있을까. 나는 세상 사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책에는 이런 것이 안 나와 있고 시험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 업체 담당자는 아직도 자식들을 옆에 끼고 있는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려놓고 세상을 잘 살고 있다. 나는 이런 때 어딘가 있는 신에게 따져 묻고 싶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해달라고. 나는 패인 바닥을 메꾸고 다시 그 위에 바닥재를 새로 설치해 놓고 나오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전에 고급 치과에 들어가서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것 같다. 멀쩡하게 붙어 있던 금니를 상태가 어떤가 모르니 뜯어보자고 해서 죄다 뜯어서 열어 본 다음에 환자가 다시 붙일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비용이 이런데 안 하려면 말고’라는 태도로 고액의 치료를 유도했다. ‘인테리어 공사 (구강도 인체로 보면 인테리어, 즉 내부 공간이니 말이다)’라는 것에서 웃돈은 직종을 망라하는 것인가 보다. 속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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