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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Aug 04. 2021

두 번째 작업실

동네가 중요해

두 번째 작업실은 한적한 동네의 3층 건물의 2층에 자리 잡게 되었다. 두 번째 상가를 부동산을 통해 계약하면서 상가 임대 수수료가 주거용 건물의 수수료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 수수료를 언급했을 때 뭔가 돈을 빼앗기는 느낌이었는데 상대 입장에서는 오히려 내가 수수료에 진지하게 놀라는 모습에 황당했을 것도 같았다. 결국 부동산 중개인은 너무나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백 원을 주고 비싼 레고 박스를 집어가는 어린애를 대하는 것 마냥,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어이없이 낮은 수수료를 받고 계약서를 써주었다. 건물주 할머니가 입주민을 까다롭게 구해서 좋은 조건임에도 잘 나가지 않는 상가였는데 내 인상을 보고 선뜻 승낙을 했다고 했다. 사실 상가 임대 부착물을 먼저 발견하고 계약서를 다음날 바로 써서 부동산에서는 별로 나를 위해 수고한 일이 없었다.   


여기에서도 그리 오래 있지는 못했다. 나는 그저 조용하고 널찍한 장소면 작업실로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동네나 주변 사람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주인 할머니는 3층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나를 좋아했다. 당시에는 1층 상가도 비어있는 상태였는데 얼마 안 있어 삼계탕을 파는 식당이 들어섰고 공사하는 동안 뚝딱거리는 소음에 한참을 시달려야 했다. 나이 지긋하고 붙임성 있는 식당 여주인은 자주 2층에 올라와서 뭐하는 곳이냐며 친근함을 표시했는데, 나는 그분이 올 때마다 그냥 ‘날 좀 그만 내버려 두기’를 소망했던 것 같다. 


식당이 오픈을 하고 잠깐 몇 주 동 안은 여느 식당이 그러하듯이 그렇게 일상이 흘러가는가 싶었다. 저녁때가 되면 지성소와도 같은 내 공간에 각종 한식을 조리하는 냄새가 올라오고 트로트 가락이 흘러들어와서 조금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도 없는 건물에 밤늦게까지 혼자 있는 것보다는 약간의 성가심이 어떤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래층에서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 많았고 귀를 막고 싶을 정도의 상스러운 욕지거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얼마 안 가서 식당이 아예 문을 열고 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내 작업실만을 드나들었는데 2층으로 가는 통로의 유리문이 굳게 잠겨있어 밖에서 황당한 기분을 맛보았을 때에는 급기야 뭔가 심상치 않은 불안한 기운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작업실에 오는 시간은 외부의 여러 일들을 하다가 자투리 시간을 내어 겨우 오게 되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는데 소중한 시간들이 이유 없이 문밖에서 낭비되고 있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20분 정도 사방으로 전화를 하고 문을 두드리고 하던 중 3층에서 1층 식당 주인이 졸린 눈을 하고 내려와서 미안하다며 문을 열어 주었다. 깜박 잠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식당 주인이 왜 3층에서 잠을 자고 있으며 2층 세입자가 버젓이 있는데도 전체 출입구를 통제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틈을 타서 1층 식당 주인이 3층을 자기 집처럼 파고들어 흡사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살고 있었고, 남편인 줄 알았던 다른 식당 주인은 실제 남편이 아니었다고 했다. 둘은 매번 싸우다가 헤어졌고, 이사 나가기를 거부하며 안하무인의 행태를 보이던 식당 주인은 경찰에 의해서 건물 밖으로 쫓겨나가게 되었다. 영화에 나올법한 얘기지만, 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보일 때는 식당 주인이 하자는 대로 했고,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노발대발하며 식당 주인을 내쫓으려 했다고 들었다. 결국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멀리 시골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아들이 와서 데려가고 낡은 건물엔 덩그러니 나만 세입자로 남게 되었다. 나도 건물을 자주 오랫동안 드나들지 않는 상태에서 관리비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되지 않아 쓰레기와 먼지가 쌓인 건물 계단을 드나들면서 여러 스트레스를 경험해야 했다. 연락이 닿은 아들은 미안하다고만 했고 건물은 곧 다른 사람의 소유로 바뀌었다. 단 하나 고마웠던 것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니 절대로 임대료를 올리지 말고 그대로 사용하도록 해주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상가 관리를 맡은 부동산업자는 이 말을 내게 전하며 사실은 이 때문에 새로운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돌려서 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부동산업자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나를 못살게 굴었다. 아무 때나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커피 한 잔을 달라고 한다거나 갑자기 수도관을 잠그기도 하고 다시 켜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하거나, 건물 관리를 해야 함에도 건물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나는 이 촌스럽고 뭔가 추잡스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낡은 동네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작업실 내부만 괜찮으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내 착각이었다. 


나는 첫 연습실의 여파로 인테리어에 많은 비용을 할여할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들인 비용에 대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 건물에 정이 떨어져서 계약기간 전에 그곳을 나가고 싶었다. 아마 이런 결과를 일부러 유도했던 것 같은 부동산업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소정의 이사비용을 지불하고 계약을 종료할 것을 제안했다. 나는 그 동네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두 번째 작업실에서 1년도 안 되는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두 번째 작업실을 통해 배운 것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옛날 복덕방 같은 사무실에 어울리지도 않는 구닥다리 BMW 차량을 길에서 닦고 있던 부동산업자의 간악함이었고, 건물주가 독거노인인 경우 계약의 존속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아무리 교류가 없는 예술가의 작업실이라도 동네의 분위기와 입지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또 나의 슬픈 두 번째 작업실의 역사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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