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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Aug 09. 2021

세 번째 작업실: 얼떨결의 이별처럼

특약사항 확인하기

두 번의 어설픈 작업실 만들기 경험을 통해 심신이 지쳐있던 무렵, 내가 사는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에 지붕이 뾰족한 건물이 공사 천막을 걷어내고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 고급스럽거나 크지는 않았지만 아날로그적인 느낌의 건물을 좋아했던 나는 사방이 창문으로 트여있고 지붕이 뾰족하게 생긴 그 건물에 작업실을 만들기로 했다. 그간의 힘든 경험으로 한숨부터 나왔지만 일종의 오기가 생겼다고나 할까. 나는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법적 효력을 갖는 계약서를 확인하는 법을 배웠고, 하자가 난 작업실을 철거하고 보수를 하는 과정에서 인테리어 자재와 시공에 대한 정보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아파트 앞이라 좀 비싸긴 하지만, 집 앞이고 깨끗한 주거지역이라 확실히 느낌이 편안했다.


나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면서 시간이 될 때마다 그곳의 빈 공간에 우두커니 서서 온갖 상념에 사로잡혔다. 처음엔 토털 인테리어 시공업체를 두 곳 정도 알아보았는데 거의 실제 시공비의 1.5배 내지는 2배를 인건비로 포함시켰다. 예를 들면, 실제 시공비용이 천오백만 원이면 삼천만 원 정도를 불렀다. 그리고 불필요한 장식 및 시설을 추가해서 원하는 공간과 다른 모습의 디자인을 가져왔다. 내가 필요한 건 작업실이었고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필요한 것만 구비해서 가성비 있는 인테리어를 원했다. 그래서 직접 각 분야의 시공업자를 알아보고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우선 첫 번 째 작업실에서 철거한 바닥의 보수를 하면서 알게 된 바닥재 도매상에게 바닥재를 알아보면서 가벽을 만드는 사람과 거울 시공업자를 소개받았다. 그리고 매일 지나다니던 길에 있던 조명가게에 가서 조명을 의뢰했고, 인터넷에서 간판이 예뻤던 간판업체를 찾아 작업을 의뢰했다. 바닥은 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에 비용을 이유로 다른 대안과 타협하기 싫어서 고급 단풍나무 마루를 설치하려고 했는데, 업체에서 견적서를 전체 평수와 합계금액만 달랑 쓴 것을 보내와서 제대로 된 견적서를 요구했더니 얼마 안 되는 공사를 하면서 까다롭게 군다면서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결국은 다른 대안을 찾아 공사를 진행했다. 한 번은 속았지만 두 번은 이런 업체에 속을 수 없었다. 대안으로 찾은 바닥시공의 비용은 훨씬 저렴했고 그럭저럭 아주 나쁘지 않았다. 나름은 두 번의 실패를 발판으로 가성비 있는 공간을 완성했다고 생각했다.


이 작업실에서도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건물의 외관과 내부를 고려하여 간판을 직접 디자인하고 창문 주변을 비워놓았던 것인데 1층에 입주한 상가에서 촌스런 간판을 남의 상가 창문 아래 떡하니 사전에 말도 없이 붙여 놓았던 것이다. 나는 3층에 입주하고 있었는데 내 이마에 다른 사람이 이름표를 붙여놓은 것처럼 너무나도 화가 났다. 이름도 어이없게 ‘우등생’이란 단어가 들어간 공부방인가 그랬는데 저렇게 안하무인의 촌스런 감각의 간판이나 붙이는 사람들이 무슨 우등생을 가르친다고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우등생의 감각이나 사고능력은 전혀 가르칠 수 없는 부류의 사람 같았다. 결국 그곳은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아래층 다른 상가 주인과 건물주와도 다른 일로 갈등이 생겨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리고 배웠다. 상가 계약 시 해당 층의 주변에는 다른 상가의 간판이나 홍보물을 부착할 수 없도록 특약사항을 기재해야 한다는 것을.


뿐만 아니라 새 건물의 장단점도 알게 되었다. 새 건물을 처음 입주하게 되면 깨끗해서 좋은 점도 있겠지만, 건물을 처음 사용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각종 건축 하자의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픈 단점도 있다는 것이다. 건물이 바로 지어진 경우 각종 보수 때문에 공사 인부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걸 상대하느라 적잖이 성가셨다. 특히 멀리 사는 건물주 때문에 내가 마치 건물 관리인처럼 오는 인부들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건물에 생기는 문제들을 일일이 상관하느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천정에서 물이 새는 걸 발견해서 바닥에 설치한 나무 바닥에 하자가 생길까 봐 기겁을 했고, 급기야 건물주는 각종 보수를 하느라 공간을 사용할 수 없는 기간을 감안하여 임대료 지불 날짜를 연장시켜야 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쓰고 싶었던 책도 두 권이나 내고, 원하는 전시와 공연 프로젝트도 진행할 수 있었다. 매년 2-3명의 외국 무용 예술가들이 홈페이지를 보고 찾아와서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리고 이 연습실을 떠나 방황하게 만든 피겨 스케이팅과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지금은 피겨스케이팅도, 연습실 이전도 못하게 되어서 같은 도시에 다시 네 번째 연습실을 준비하고 있지만 떠나버린 연인처럼 세 번째 연습실이 많이 그립다. 지금의 연습실도 좋지만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던 손때 묻은 그 연습실이 못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안녕! 연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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