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을 다시 디자인한다면

by 이영선

인간의 몸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할 만큼 우수한 메커니즘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가끔 신에게 인간의 신체 디자인을 약간 수정해 달라고 제안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사도 스페어타이어나 다른 스페어 부품 교체가 가능하고 일정 서비스 기간이 적용되는데, 인간의 몸은 일체의 여지도 없이 인색하게 태어나는 것 같다. 일부 문제가 있는 것처럼 태어나도 다시 공장으로 되돌려 보내어 새 것으로 교환해서 받을 수도 없다. 물론 그 모습도 완벽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의미를 보태어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솔직히는 이를 감당하기란 아주 힘든 일일 것이다. 보증 수리 기간도 없으니 문제가 있으면 온전히 인간 자신의 비용과 노력으로 감당해야 한다. 뭐 이런 불공정한 경우가 다 있는지 싶기도 하다. 짠돌이 회사에서 일체의 여유도 없이 재단해 나와서, 만드는 자만 보기에 완벽하고 정작 그것을 사용해야 하는 인간의 운용능력은 생초보인 상태에서 별도의 설명서도 없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 몸인 것 같다. 아무리 완벽한 제품도 사용자가 사용법을 몰라서 헤매는 기간이 필요하고 그 기간에는 서투른 조작에 각 부품이 과하게 마모되거나 망가지는 경우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몸이 완벽하다 해도 아기였을 때부터 몸의 각 부분의 기능과 사용법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 기능을 이해할 때쯤이면 이미 몸의 부분들이 망가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제야 어떤 몸의 부분들은 재생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럴 때면 아, 조금 더 조심하고 신경을 써서 내 몸을 사용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불가능하겠지만 가끔은 절실하게 신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이루어달라고 제안하는 경우가 있다;


1) 눈을 한 쌍 더 만들어 준다면


몸과 정신은 멀쩡한데 눈만 졸리고 피곤할 때가 있다. 몸을 꼬집고 별짓을 다하지만 졸음을 견뎌내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땐 눈알을 빼서 아주 시원하고 맑게 흐르는 물에 씻어서 졸음만 걷어내고 다시 초롱한 모습으로 원래 자리에 다시 넣어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틀니처럼 눈도 뺐다 넣었다가 할 수 있거나, 아니면 눈을 한 쌍 더 주면 좋겠다. 원래 눈 한 쌍으로도 한 인생을 살기에 충분했을 것 같으나 문명사회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시력이 빨리 나빠지는 것 같으니 말이다. 눈을 딱 한 쌍만 더 주면 이번엔 정말 책도 멀리서 보고 나쁜 것도 피하면서 아주 잘 사용할 것 같다. 물론 나는 아직 시력이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라서 비 오는 밤에 초행길을 운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안경을 거의 쓰지 않는다. 그래도 아주 잘 보이는 새 눈을 갖고 싶다. 그리고 눈이 한 쌍이 더 있다면 졸린 눈은 렌즈통 같은 곳에 담가 두어 푹 자게 하고, 다른 한 쌍의 눈을 바꿔달아 자는 것에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덜 뺏기고 더 많은 신나는 일들을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거의 3분의 1을 졸린 눈으로 잠만 자고 지내는 게 아까운 생각이 든다.


2) 이를 한 벌 더 나오게 해 준다면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오니 어쩌면 인간들은 이미 한 벌의 스페어 치아를 달고 나오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유치가 빠지는 시기가 너무 빠르고, 그때쯤에도 영구치가 정말 영구치라서 다시는 새로운 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실제로 인지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닌가 싶다. 이가 이렇게 소중하고 어렸을 때 교체되는 치아가 마지막이란 걸 좀 더 나중에 알았다면 좀 더 관리를 잘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구치는 20대에 교체되는 게 좋은 것 아닌가 싶다. 아니면 그냥 이를 한 벌만 더 주었으면 한다. 관리를 잘했다 해도 돈에 눈먼 치과의사를 잘못 만나면 일찍 이가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망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3) 몸의 모든 기관이 한 번씩 더 자랄 기회가 있다면


몸의 기관 특히 팔다리가 다시 한번 자랄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망가지면 머리칼이나 유치처럼 쑤욱 빠져나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에서 새로운 건강한 팔다리가 쑤욱 자라 나오면 어떨까 싶다. 팔다리는 일상생활을 하는데 정말 필수적인 부분인데 가끔 역 앞에 있는 노숙자들이나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4) 인간의 배에 지퍼가 있다면


나는 소화기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긴장을 하거나 낯선 곳에서 잠을 자야 할 때면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습성이 있어서 하루 종일 속이 더부룩하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꼭 배에 달려있는 지퍼를 쭉 내리고 창자와 위를 꺼내어 한 번 손으로 쭈욱 훑어 내리고 물로 깨끗이 씻은 다음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은 상상을 한다. 꼭 배변 운동에 문제가 있을 때가 아니더라도, 하수구와 싱크대의 거름망도 며칠 청소를 하지 않으면 음식물 찌꺼기가 끼어서 더럽고 냄새가 나는데 인간의 위와 창자 등 소화기관은 온갖 음식을 평생 동안 집어넣고 있는 곳이라 왠지 주기적으로 그 안을 깨끗하게 쭉쭉 씻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 생각만으로도 시원해지는 기분이 든다.


5) 인간의 피부가 1년에 한 번 씩 피부 갈이를 한다면


아, 정말 이것은 꼭 현실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주기적으로 상한 바나나 껍질처럼 칙칙해지고 늘어진 피부가 벗겨지고 다시 껍질 안에 있는 바나나 속살처럼 뽀얀 피부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건 누구나의 로망이 아닐까 싶다.


6) 인간의 몸에 시계가 달려있다면


가을이 되면서 더욱 샛노랗고 붉게 변하는 낙엽처럼 인간도 점점 아름답게 변하다가 그 아름다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냥 영혼이 빠져나가는 식으로 고통 없이 병원에 가지 않고 생을 마감한다면 어떨까. 나는 종교를 초월해서 모든 자연의 순환을 믿는다. 죽음이 꼭 슬프고 고통스럽고 부정적인 것이어야만 하는지는 모르겠다. 소위 말하는 노화라는 것이 소위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다가 영혼만 빠져나가는 방식이면 안될까 싶다. 그러려면 인간의 몸에 아주 작은 시계가 달려있어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이별 방식은 점점 노화로 병들고 안 좋게 되다가 이별을 예상하는 방식이라면 작은 생의 시계가 몸에 달려 있다면 죽음이 그리 비참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럴까? 하긴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정신연령과 일치가 되지 않는 노화는 참으로 짜증 나는 일이다.


신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만무할 것이다. 스스로 가장 옳은 일종의 완벽한 고집쟁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더 좋은 것을 상상해도 인체의 가동 원리는 별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 인류의 문명은 진화하고 발전했을지언정, 인간의 사고와 신체 기능에 그다지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록이 분명한 최근의 인류 역사만 보더라도 머리에 뿔이 있다가 없어졌다든지 팔이 원래 두 벌이었다든지 눈이 한 쌍 더 있었다든지 하는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환경은 변화했으나 인간 자체의 종을 넘나드는 획기적인 변화는 앞으로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잠을 자야 하는데 이번엔 눈이 아니라 뇌도 두 개여서 하나는 꺼내어 잠재우고 다른 하나로 이 밤을 계속 깨어서 글만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 차라리 나를 두 명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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