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되어가는 사람들

by 이영선

오래전 해변을 끼고 있는 친구네 별장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친구는 14년을 넘게 함께 한 커다란 개를 늘 데리고 다녔다. 나는 개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개의 근처에 가는 것을 꺼려했는데 친구가 미안해할까 봐 싫은 내색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리고 가능하면 개와 친해져 보려고 노력했다. 친구는 개가 나이가 들어서 사람을 위협하는 일은 없으며, 귀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같이 타고 온 차 안에서부터 오후 한 나절을 내내 함께 보내면서 개도 나도 서로에게 조금은 익숙해져 갔다. 그렇다고 그 늙고 커다란 개가 좋아졌다는 건 아니었다. 나에게는 도무지 그 늙고 커다란 할머니 같은 개가 귀엽거나 사랑스럽게 보일 부분이 전혀 없었는데, 친구는 그 개를 매 순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나는 정말 친구와 나 사이에 나이 든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처럼 그 개와 함께 있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친구의 시선으로 개를 사랑해보려는 노력을 멈추지는 않았다.


늦은 오후 우리는 집 앞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한참 해변을 걷다가 모래밭에 앉았는데 그 할머니 개도 내 옆에 앉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옆에 얌전히 엎드려 있는 개에게 모래를 끼얹으며 마치 모래찜질을 하는 모양새를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화들짝 놀라서 개를 덮고 있는 모래를 황급히 털어내었다. 모래는 거의 개의 다리 위까지 덮고 있었다. 해변에 가면 으레 모래를 가지고 놀다가 모래찜질을 해주는 놀이를 하는데 그때는 모래찜질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개를 묻고 있는 묘한 느낌이었다. 나는 개에게 묻은 모래를 샅샅이 털어주고 개를 바로 일으켜 세워 산책을 했다. 나는 개에게 묘한 동정심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이 조금 더 개에게 다가갔다. 여행을 갔다 온 후 몇 달 안 가서 친구의 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로 나는 절대로 해변에서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 모래찜질을 하지 않는다.


몇 주 전 우포늪에 여행을 갔는데 한참을 홀로 이곳저곳을 거닐다가 늪을 둘러싼 기다란 제방 옆으로 펼쳐진 좁은 농로로 홀연히 들어선 적이 있다. 그곳은 그야말로 화창한 가을볕 아래 광활한 흙밭이 펼쳐져 있는 곳이었는데, 그날 마지막 가을을 즐기러 늪을 찾은 사람들이 제방 위로는 제법 많았지만 굳이 늪의 반대편인 밭길로 내려와 그곳을 거니는 사람은 없었다. 그곳에서 생각에 잠겨 홀로 서성이고 있는데 내 앞으로 전동 휠체어를 탄 어느 나이 지긋한 여성분이 농로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마을 주민인 듯했는데 나는 그때 그 해변가의 일이 생각이 났다. 이 넓고 평평한 흙밭에서 나도 그도 마치 흙이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가 농로를 길게 가서 벗어날 때쯤이면 그는 점점 흙이 되어 없어질 것만 같이 보였다. 그리고 나도 이 흙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잠시 발에 힘을 잃고 넘어져 엎어진다면, 이 흙은 금방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흙은 너무나 거대해서 나라는 한 인간을 소화시키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닐 것이다.


밭을 뒤덮고 있는 흙은 그냥 흙이 아니라 그간 이 세상을 거쳐간 아주 많은 생명의 잔재들처럼 보였다. 우리가 발 밑에 두고 우리와 별개인 것처럼 마구 사용하는 이 흙이 사실은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흙은 바로 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상의 광활함과 그 긴 생명력에 비해 내 존재가 정말로 미미함을 느꼈다. 더 나아가서는 온갖 소소한 다툼과 복잡함과 소음으로 가득 찬 인간사회가 억만년 동안 묵묵히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 자연 앞에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땅의 힘을 이기고 똑바로 서서 튼튼한 다리로 땅을 치며 걸어 다닐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다시 내게 백 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하더라고 그 시간은 자연 앞에 얼마나 우습도록 짧은 시간일까? 이 흙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고, 나의 존재를 빨아들이고 나서도 그 광활함을 아주 긴 세월 동안 지속할 것이다.


나는 쌀쌀해지는 저녁 공기와 늘 그렇듯이 때가 되어 환희에 찬 붉은 노을빛을 온 세상에 펼치고 있는 아름다운 하늘을 보면서 가슴이 울컥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건 슬픔도 기쁨도 아닌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환희와 아름다움과 행복과 아쉬움과 적막감과 슬픔과 공허함과 스산함, 그리고 삶과 죽음, 그 모든 미묘한 감정이 뒤섞인 기분이었는데, 나는 사라져 가는 노을빛을 뒤로하고 더 어둡기 전에 길을 나오면서 꺽꺽거리면서 마구 울었다.


내게 세상 사람들이 가진 10분을 맘대로 사용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성인이 된 모든 사람들에게 식물의 싹이 뾰족 뾰족 솟아나 있는 이 너른 평야의 흙 위에 10분간 홀로 서 있도록 하고 싶다. 나는 흙 위에 있으면서 무엇을 놓을 것인가, 무엇을 살 것인가, 그리고 다스리거나 이기는 것이 아닌 공존과 순환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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