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밤나무

밤나무 때리지 마요!

by 이영선

몇 년 전 작은 산이 깎이고 동네가 새로 생겼다. 이곳에 나의 부모님도 살고 있다. 동네 어귀에는 오래된 밤나무가 두 그루 서 있는데, 가을이 되면 가지를 다 뒤덮을 만큼 밤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린다. 처음에는 재미 삼아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조금씩 익은 밤송이를 따서 가져갔는데, 해가 더해질수록 밤이 조금이라도 여물라치면 누군가가 와서 아직 여물지도 않은 밤까지 욕심을 내어 몽땅 다 따서 가버린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은 막대기로 사정없이 두드리고 나무둥치에 올라 나뭇가지를 꺾어서라도 밤송이를 훑어가 버린다. 이 밤나무는 개인 소유가 아니다. 원래 개인 소유가 아닌 과실은 주워가는 것도 불법이라고 들었는데 전국의 나무를 공공기관이 다 관리하기도 힘들어서인지 가을만 되면 밤나무가 몸살을 앓는다. 밤을 다 털리고 난 밤나무는 처참해 보인다.


두 그루 밤나무 둥치는 현수막을 걸기에도 딱 좋은 구조물이고 위치도 삼거리에 서 있어서 늘 너덜너덜하고 촌스런 각종 불법 광고물이 걸려있는 것은 물론이고, 신호등, 전봇대, 셀타워까지 밤나무 옆에 바짝 세워져 있다. 5G가 생겨나고 셀타워가 더 촘촘히 들어서면 전자파의 영향도 더 커지는걸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셀 타워가 밤나무 가지 사이를 뚫고 솟아있다. 아무리 자리가 없어도 살아있는 나뭇가지를 헤치고 셀타워와 시종일관 깜빡거리는 신호등을 나무 옆에 바짝 설치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내가 밤나무라면 전자파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깜빡이는 불빛 때문에 잠을 못 자서 불면증과 병적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밤나무는 가을이 되면 또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다. 이 정도 스트레스면 열매를 안 맺거나 적게 맺을 법도 한데 말이다.


작년에 밤을 따갔던 사람들은 때를 기억하고 어김없이 다시 오는데 이 중에는 아예 차를 가지고 일을 삼고 가족들과 멀리서 오는 사람도 있었다. 한 번은 밤나무가 불쌍하고 사람들이 얄미워서 뭐라 말은 못 하고 가까이 가서 그 모습을 말없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더니, 본인들도 민망한 듯 차를 타고 가버리는 듯하다가 내가 집으로 들어오는 틈을 타서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와서 밤을 마저 따간 적도 있다. 그 정도 차를 모는 사람들은 밤은 충분히 사서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일 텐데 재미 삼아 몇 개 따는 것도 아니고 꼭 저렇게 자루와 도구까지 준비해서 밤을 따서 가져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 현재 작업실 앞 시유지 정원에도 살구나무와 모과나무가 있는데 분명 여름에 주렁주렁 열렸던 열매들이 지금은 아주 높은 가지에 있는 몇 개를 빼고는 다들 어디론가 사라졌다. 건물주의 말에 의하면 어디선가 노인들이 와서 때가 되면 몽땅 따간다고 했다. 지금 달려있는 모과들도 아직 새파랗게 익지도 않았는데 익기도 전에 모과들이 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근처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갔더니 과실수 아래에 ‘당신의 양심을 믿습니다’라는 표지판이 걸려있다. 그 표지판은 별 효과가 없는 듯하다. 손 닿는 곳에 있는 사과, 모과, 감들은 언제 붙어있기나 했던 것인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아니면 꼭대기에만 열매가 몇 개 달리는 과실수인 것일까?


오래전 외국에 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억 중 하나가 주렁주렁 열린 빨간 사과와, 밤과 호두들을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것이었다. 거리에 백설공주에서 나올법한 예쁘고 빨간 사과가 달린 나무들이 많았는데 바닥에 떨어져 썩을 때까지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친구들 말로는 예쁜 외모에 비해 사과가 맛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꼭 그것만이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밤도 한국 밤과는 다르게 생기긴 했지만 밤송이가 지천으로 떨어지다 못해 밤 껍데기 안에 알맹이가 하얗게 터져서 도로에 가루가 퍼져있을 때에도 다람쥐 이외에는 그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동물로 태어난다면 그곳의 다람쥐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한국이었다면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누군가가 자루째 주워갔을 것 같다. 나는 살면서 호두나무도 직접 본 적이 없었는데 공원 발 밑에 동그랗게 자갈처럼 떨어져 발에 차이는 게 다 호두 열매였던 걸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가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두꺼운 껍질이 벗겨진 호두를 몇 개 주워가기도 했는데 몇 사람이 싹쓸이를 해가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었다. 잘 사는 나라의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어떤 여유 같은 게 느껴졌다.


매달린 것을 보면 따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도 일부 이해할 수는 있지만 누가 따갈까 봐 밤나무를 마구 때리고 나무 위를 짓밟고 올라서서 가지를 꺾거나 채 익지도 않은 밤송이까지 경쟁적으로 싹싹 거두어 가는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 밤나무도 동물들도 다들 우리가 다스리고 먹고살아야 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덜 폭력적이고 덜 잔인한 방법으로 이것들에게 감사하며 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것은 꼭 동식물에 대한 태도이기보다는 우리 자신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 때에도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밤송이를 경쟁적으로 쓸어 가려는 몇몇 사람들이 밤나무 아래를 서성거렸다. 나는 그냥 놔두라는 식구들의 말을 뒤로하고 잽싸게 핸드폰을 가지고 밤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는 대신 카메라 셔터를 대놓고 마구 눌렀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이들을 한껏 노려보며 그들이 스스로 민망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곧 자리를 피하거나 행동이 덜 과격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곧 떠난 후에, 나는 밤나무에게 가서 말했다.


-내년에는 아무 열매도 맺지 마. 열매를 맺으려거든 꽁꽁 힘을 주고 있다가 사람들이 오면 머리 위로 밤송이를 다 쏴버려. 밤송이를 잡을 때마다 사람들 손가락을 독기 어린 가시로 콕콕 찔러주란 말이야!


내년에는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하나 둘 떨어지는 밤송이를 가을 내내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무로 태어난다면 한국의 길가에 있는 밤나무로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제 저 밤나무에서 딴 밤은 알도 작고 맛도 별로 없다. 밤나무가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그걸 알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유리벽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