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절구는 지구로 떨어지고
글쓰기의 트랩에 갇히다
오래전부터 책을 하나 완성하려고 책에 포함할 글을 하나 더 구상하고 있다. 이미 완성한 글들이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난 아이디어를 단숨에 써 내려간 것이라면, 마지막 글은 거의 공백 상태로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요즘 들어 하루 대부분을 그 글에 대해 생각하느라 어딘가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소비하고 있다. 잘하려고 온갖 서치와 자료검색을 하다 보니, 상상력이 가득한 어른 동화가 되어야 할 글의 내용이 무슨 심층 분석 다큐멘터리가 나와야 할 것처럼 현실적인 언어로 변해서 머릿속을 채워가고 있다. 예를 들면 달에 사는 토끼에 대해 써야 하는 글이 뭔가 잘해보려고 달과 토끼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달에 있는 계수나무는 기다리다 지쳐 말라 비틀어 죽어버리고, 토끼도 절구통도 지구 위로 다 떨어져 버려서 달에 대한 과학적 사실들만 뇌리에 남게 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아, 도망가버린 토끼하고 절구가 어디로 갔는지 다시 찾아서 달 위에 올려놔야겠는데 오늘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
이럴 때는 사실 그 글을 잠시 잊고 떠나 있어야 하는데 오기도 있고 마음도 조급해서 의식이 계속 한 자리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는 이 글을 누가 쓰라고 한 것도, 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거나 꼭 완성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이를 꼭 써서 완성하고 싶은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이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앞서 완성한 글도 내보일 기회를 잃고 그간 보낸 시간도 헛수고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글을 아예 없었던 것으로 해버리는 건 또 어떤가. 나는 춤을 추면 되니까, 사실 굳이 그 글은 쓰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해본다. 하지만 역시 나는 이 글을 꼭 완성하고 싶다. 그냥 하던 대로 상상에 몸을 맡겨 써 내려가면 될 것을 무슨 진지한 작품을 만들어보겠다고 온갖 리서치는 해가지고 너무 잡다한 것들이 머릿속에 가득 쌓여버렸다. 글쓰기의 트랩에 갇혀버렸다. 이 글을 꼭 완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