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의 무언가와 '그랑 플리에'
Op.38, No.6 'Duetto'
그녀는 비쩍 마르고 키가 컸다. 거의 매번 긴 망토 같은 어두운 색 외투에 리본이 달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 한 때 그런 블라우스가 유행했던 것 같다. 블라우스와 똑같은 천이 길게 리본 모양으로 목에서 매듭을 짓는 그런 블라우스 말이다. 그녀가 입었던 다른 옷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길지 않은 빛바랜 금발머리가 군데군데 흰머리와 섞여 어린 왕자처럼 꼬불거리며 머리 위로 엉성하게 윤기 없이 엉켜있었고 나처럼 꽤나 불규칙적인 치열을 하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오래된 듯한 금속테를 두른 안경을 끼고 조용히 들어와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가 일단 수업이 시작되면 그의 수더분한 외모와는 달리 우아하고 섬세한 피아노 곡조가 기다란 손가락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녀는 발레 수업 시간 내내 다양한 움직임에 맞춰 음악을 연주하는 반주자였다. 그녀는 몸을 구석구석 이해하고 있다는 듯이 세밀하고 감성적인 피아노 운율로 무용실의 여백을 채웠다. 다른 반주자들의 음악도 훌륭했지만, 그녀의 연주는 왠지 더 편안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녀는 영혼이 아름다운 연주자였다.
학교에는 나이 든 남자 발레 선생님이 있었다. 나는 그 선생님과 특히 친하게 지냈다. 발레를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도 있었지만 그는 인간을 발레 동작에 인위적으로 맞추기보다는 발레를 통해 인간을 달래는 듯한 수업을 했다. 그리고 웃겼다. 나는 그의 유머를 좋아했다. 그는 늘 튀어나올 곳은 다 튀어나온 채 축 늘어져 누렇게 변색된 회색 바지를 입고, 마치 어린 학생들을 사랑하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것처럼 발레를 가르쳤다. 몸은 나이가 들었지만 그는 노련했고 그의 움직임은 아름다웠다. 그는 늘 두 발을 크게 벌리고 무릎을 깊게 구부려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그랑 플리에' 동작을 하면서 수업을 끝냈는데, 그날 오후 수업 시간은 특히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여러 방향으로 흐르던 시간이 한 지점에서 만난 느낌이랄까?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져 황홀한 쾌감 같은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랄까? 형용하기 어려운 이런 순간이 인생에 여러 차례 찾아오는데, 그때 그 행복감은 주변이 환해지면서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듯한 것과 비유할 수 있다.
나는 살면서 발레 수업이 즐겁지 않은 때가 없었다. 나는 발레라는 용어와 함께 흔히 떠올려지는 전형적인 발레 무용수는 아니다. 그렇지만 발레와 무관한 무용수도 아니다. 나는 현재적 시점으로 재창조한 나의 발레를 한다. 발레의 접근법은 각자의 몸에 다르게 적용이 되고 발전이 된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만의 발레를 즐길 수 있다. 클래식 발레 레퍼토리는 안무 작품으로써 일관적으로 존재하지만, 발레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발레는 결국은 그저 춤일 뿐이고 그 안에 최초의 원형과 그 원형의 지속적인 변형이 있을 뿐이다. 이를 이해하고 발전시키고 이어가는 것은 발레를 추는 모든 사람들과 이를 새롭게 작품으로 창조하는 안무가이다.
그날 오후 수업 마지막에도 '그랑 플리에'가 시작되었다. 움직임과 음악으로 가득 찬 한 시간 반 남짓의 수업시간에 온전히 집중한 후 흘러내린 땀과 가빠졌던 호흡을 정리하는 시간, 가만히 마지막 피아노 반주 음악을 기다리며 서있는 그때 그녀가 전에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던 곡을 연주했는데 나는 그날만큼 '그랑 플리에' 동작이 아름답고 우아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나는 너무나 황홀해서 눈물을 흘렸다. 어떤 빛이 흐르는 길을 팔을 펴고 날아가듯 걸어가는 것 같았다. 나중에 그 곡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멘델스존의 무언가에 포함된 소품곡 'Duetto'였다. 유튜브로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들어보았지만, 그녀가 연주한 그날의 'Duetto'만큼 아름답게 들린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쿵하고 내려가는 저음 부분에서는 내 심장도 쿵하고 내려앉았다가 다시 올라붙었다.
나는 이후로 반주자와 친해졌다. 그리고 'Duetto'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들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언젠가 이 곡에 가사를 붙여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싶다. 그녀가 연주하는 Duetto를 무용실에서 다시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