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고기를 그리는 방법

by 이영선

나는 내가 보는 흥미로운 것은 꼭 만져보는 습성이 있다. 길에 꽃을 봐도, 나무를 봐도 조금이라도 손으로 만져서 느껴봐야 대상을 다 본 것 같다.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가서도 사기로 결정한 물건은 최종적으로 손으로 만져보는 과정을 거친다. 눈으로 봐도 충분히 모양을 알 수 있는 단순하게 생긴 딱딱한 물체라도 비용을 지불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만져봐야 분명히 대상을 다 본 것과 같은 안도감이 든다. 물론 대상을 해할 정도로 무례하게 만지거나, 사지도 않을 것을 상품가치를 떨어뜨릴 정도로 굳이 만져보면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는다. 눈으로도 잘 보이는 걸 나는 왜 꼭 만져봐야 다 본 느낌이 드는 걸까. 그냥 습관화된 버릇일까도 생각해서 의식적으로 만지지 않고 대상을 보려고 했는데, 눈이 나쁘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뭔가 대상이 시각적으로 분명하지 않은 느낌이 들곤 해서 단지 습관의 문제는 아닌듯했다.


나는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지 않는다. 시간도 많이 들고, 사 먹는 게 여러모로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굳이 집에서 해먹을 경우 준비시간과 치우는 시간을 최소로 하는 간단한 요리를 하곤 한다. 예를 들면 잘라먹거나, 씻어서 그냥 먹거나, 까서 먹거나, 데워먹거나, 물만 넣고 끓이면 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래도 상당히 다양하고 건강한 식품을 먹을 수 있고, 재료를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맛과 영양이 더 좋은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손질되지 않은 생선과 생닭 등을 사용하는 요리는 거의 해본 적이 없다. 끽해야 손질되어 있는 냉동 생선을 그대로 구워 먹거나, 닭이 먹고 싶으면 후라이드 치킨을 시켜먹는 정도이다.


가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재미 삼아 복잡한 요리를 시도해 보기도 한다. 한 번은 무작정 생닭을 사 왔는데 닭을 씻다가 난생처음 구멍이 뚫린 뱃속에 손을 쑥 넣는 기분이 너무 묘하고 징그러워서 이후로는 절대로 생닭을 사서 집에서 요리를 한 적이 없다. 그 닭은 오븐에 넣으니 관절마다 피가 배어 나와서 오븐에서 꺼내어 놓고도 이미 비위가 상해 버려서 그대로 버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관절을 잘못 잘라 분해하면 피가 나오기 때문에 우유 같은 액체에 몇 번을 담가놓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비싼 우유를 잔뜩 넣어서 핏물을 빼서 요리를 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닭을 포기하고 그 우유를 마시거나 닭의 몸을 우유에 담그는 것보다 내 몸을 거기에 담그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스스로도 모순이지만 남이 해놓은 닭요리는 잘 먹는다.


같은 이유로 생선도 직접 손질하지 않는다. 한 번 시도를 했다가 날카로운 지느러미에 손가락이 찔리고, 지느러미라는 게 우산살이나 개구리 발처럼 쫙 펴졌다가 다시 접히는 느낌도 이상하고, 잘라낼 때는 가느다란 연필심을 나란히 눕혀놓고 자르는 우둘투둘한 느낌도 이상했다. 어디까지 손질해야 다 손질을 한 건지 구분도 안 가고, 이것 저것 잘라내고 씻어내고 파냈더니 남은 살도 거의 없고, 그 과정에서 비린내와 징그러움에 역시나 먹지를 못했다. 생선은 그냥 하얗고 이쁜 오징어가 제일 좋은 것 같다.


얼마 전 우연히 손질이 안된 생선을 누군가로부터 받아오게 되었는데, 이를 버릴 수는 없고 냉동실에 내내 있던 것을 꺼내어 직접 손질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번엔 인터넷을 검색해서 미리 손질 방법에 대한 준비를 단단히 하고 시작했다. 특히 생선은 비늘 부분이 가장 징그럽다. 보기엔 매끄러워 보이는 데 칼로 표면을 긁으니 투명하고 동그란 플라스틱 같은 비늘이 꺼칠꺼칠 소리를 내며 형체를 드러낸다. 요리되지 않은 생선살의 느낌은 물에 젖은 사람 손의 살결 같기도 하고 아무튼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독특하다. 이번엔 얼추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깔끔하게 모양을 갖추도록 손질을 한 것 같았다. 물론 생선살은 구워지면서 다 부스러지고 바닥에 붙은 후 각기 다른 색상으로 형체가 다 흩어져버리긴 했다. 생각보다 요리란 복잡한 과정이다. 역시나 생선을 직접 손질해서 요리를 하는 것은 당분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나는 평소에 실제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기억에 있는 추상화된 이미지를 가지고 마음대로 그림을 그린다. 어쩌다 보니 물고기 그림이 많은데, 당연히 실제 물고기와는 형태가 많이 다르다. 최근에 물고기를 또 그려야 할 일이 있었는데 약간 막연하기도 해서 시작은 하지 않았는데 생선을 손질해본 이후에 물고기를 보지 않고도 물고기를 자유자재로 떠올리며 이를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손으로 만져본 물고기의 지느러미, 눈, 비늘, 배 등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보기만 했을 때와 다르게 대상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고, 그 대상이 눈앞에 없어도 수월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물고기가 뒤집혀 있든 엎어져 있든 상관이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물론 이건 객관화된 이론이 아니라 철저히 나의 주관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상을 본다는 것은 눈의 시각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각적 경험도 촉각과 다른 감각적 경험과 공간의 차원으로 이해하면 더 구체화되고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이건 오감으로 경험하면 대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그런 추상적 차원의 당연한 이야기와는 다르다. 나는 내가 왜 물건이나 대상을 보면 자꾸 만지려고 했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만지고 대상을 입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시각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건 단지 의식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눈으로 볼 때도 더 잘 보이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당연히 대상을 통합적으로 인지하게 되고, 더 오래 구체적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시각 장애인이 대상을 인지하는 방식이나 두뇌의 감각 통합 방법에 대한 학문적인 근거는 잘 모르지만 생선을 손질하면서 이에 대한 이론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 장애인이 실제 개안수술을 하면 시력은 멀쩡해도 오히려 보지 못하고 더 불편해져서 초기에 적응기를 거친다는 내용을 얼핏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나는 실제 시력검사 수치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그 수치에 비해 사물을 잘 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는 어려움이 많이 없다. 그래서 밤에 모르는 초행길을 운전해야 하는 것이 아니면 안경을 거의 쓰지 않는다. 한 번은 안경을 맞추러 안경원에 갔는데 실제 시력에 비해 시각능력이 굉장히 좋다고 들은 적이 있다. 시각과 시각능력이 어떻게 다른지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별다른 자료를 찾지 못해서, 그 직원이 본인도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는 줄 알았다. 아무튼 물고기의 모양을 보지 않고도 자신 있게 떠올릴 수 있고, 내 손에도 시각에 도움이 되는 뭔가가 달려있는 것 같아 신기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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