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늪으로의 여행
나만 알고 싶은 늪에 다시 가다
보이지 않는 늪의 출입문
봄에 갔던 늪에 다시 갔다. 원래 보라색 꽃이 가득할 5월 초에 가려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6월 초가 되어서야 다녀왔다. 늪에는 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늪의 초입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무와 물의 전경이 전혀 다른 세상처럼 펼쳐진다. 물은 연한 초록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초여름인데도 풀과 나뭇잎의 색은 봄에 갖 피어난 새싹 같은 싱그러운 연둣빛이었다. 못 믿을 일기예보 때문에 여행은 일정보다 이틀이 늦어졌고, 다행히 기온이 내려간 흐린 날과 햇빛이 가득한 이틀의 조합이 오랜 산책을 힘들지 않게 했다. 온통 초록과 연한 연두색으로 가득한 늪은 그곳에 있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유명해진다면 이곳 사람들처럼
이곳에는 조그만 오토바이를 탄 남자분이 가끔 늪을 돌아다닌다. 이분은 이곳의 상징처럼 늪을 아는 이들에게는 유명한 인물이다. 만일 유명해진다면 이 분과 이곳에 사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유명해지고 싶다. 이분들은 유명해지려고 마케팅을 하거나, 일부러 입소문을 내거나, 어디를 찾아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한 번 듣고 알게 되면 바로 기억하게 된다. 이들은 유명하다고 그에 맞게 무엇을 변화시키거나 치장을 하지도 않는다. 늪이라는 장소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늪의 물처럼, 나무처럼, 돌다리처럼, 새들처럼, 그냥 한 번 알게 되면 조용히 그렇게 유명하게 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것이 진짜 유명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삶으로써 존재가 알려지고 어우러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유명세가 아닐까. 유명세라기보다 그저 더도 덜도 아닌 자신의 존재감이 뚜렷이 드러나게 되는 것, 삶의 과거와 현재가 그대로 이어져서 그냥 그로 살면서 바깥의 세상과도 소통하고 어우러지게 되는 것,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에게 각인되고 인지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에 바깥세상은 너무나 시끄럽고 북적거린다. 사람들은 인구 감축을 우려하지만, 나는 그런 통계나 예측은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더 없어져야 지구가 행복해질 것이다. 아니면 밀도가 사방으로 많이 퍼져서 어느 한 곳도 다른 한 곳에 비해 더 중요하다고 비교할 수 없는 그 장소만의 가치가 살아있는, 바로 그런 것이 진정한 글로벌화라고 생각한다.
주중이라 사람들이 거의 없기도 했고, 나는 상대를 유튜브나 책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에 마치 서로 알았던 사람처럼 인사를 건네며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있도록 부탁했다. 그는 유쾌하게 포즈를 취했고 자신과 늪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신나게 해 주었다. 그는 참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고, 나도 내가 속한 곳에서 그렇게 늪처럼 자유롭고 개성 있게 사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비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의 삶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곳을 대변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는 주섬주섬 꼭꼭 싸맨 주머니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어 나에게 선물이라며 건네주었다. 여러 가지 늪에 사는 새들의 사진이었다. 나는 그에게 감사하며 사진을 빳빳한 스케치북 사이에 끼워 구겨지지 않도록 잘 보관했다.
햄버거 카페에서
이곳은 생태보호지역이라 그런지, 근처에 먹을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 늪에 한 번 들어가면 한 바퀴를 다 돌지 않고는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늪의 초입에 하나 있는 햄버거 카페에서 미리 배를 채우고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이른 시간 첫 손님으로 음식과 커피를 주문했는데, 주인 여자분이 테이블까지 음식을 가져와서 아주 친절하게 두툼한 햄버거를 손수 먹기 좋게 잘라주고 갔다. 주말에 오면 주문을 하고도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할 만큼 손님이 많은 곳인데, 주중이고 이른 아침이라 한산하기도 했다. 주인분은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면서 다정히 대해주었는데, 심지어는 늪에 가서 마시라고 시키지도 않은 않은 아이스커피 한 잔을 무료로 내주었다. 바람에 풍경 소리가 가끔 들렸는데, 웬일인지 모르겠지만 풍경소리가 날 때마다 현기증이 날 것처럼 가슴에서 뭔가 울렁거렸다.
늪에 사는 생물들
늪은 다양한 장소가 넓은 늪 몇 개를 둘러싸고 조합이 되어있는 모양새인데, 각 장소마다 각기 다른 소리가 들린다. 같은 늪이라도 각각의 새와 동물이 사는 동네가 구분되어 있는 듯했다. 어떤 새들은 촌스럽고 투박하게 왝왝거리는데 얼핏 들으면 강한 사투리로 심한 언쟁을 벌이고 있는 듯했다. 소나무 숲에는 뻐꾸기 소리가 많이 들리는데 내가 ‘뻐꾹’이라고 소리를 내었더니, 내내 정확한 박자로 울던 뻐꾸기가 울음을 멈추었다. 내가 따라 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나 보다. 커다란 쥐처럼 보이는 뉴트리아를 세 군데서나 보았는데 정확히 뉴트리아가 내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뉴트리아가 있는 곳마다 코로나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심하게 변조된 사람이 억지로 말을 하려고 할 때 나는 것 같은 걱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뉴트리아가 생태계를 파괴시킨다고 하던데, 늪에 생물과 수초가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뉴트리아가 좀 먹는다고 생태계가 파괴될까도 싶었다. 생태계가 뭔지도 모른 체 타국에서 실려왔다 버려져 그저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사는 뉴트리아들이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조심히 걷는다고 하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여기저기서 뭔가가 바스락거리면서 숨거나 도망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새들은 지난가을에 비해 많이 없었는데 그래도 일몰 때가 되니 어디선가 모여든 목이 긴 새들이 넓은 늪으로 날아와 물속에 서서 짙어지는 일몰의 핑크빛 하늘과 하나가 되고 있었다.
지난봄과 가을에 늪에 왔을 땐 그래도 사초군락지가 늪에서 가장 이국적인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길 옆으로 풀이 장대같이 자라서 풀숲 위로 가끔 고개를 내민 나무의 윗자락만 뭉게구름처럼 떠있었다. 마치 풀숲에 나무들이 잡아먹히고 있는 것 같았다. 가뭄에 풀숲 안에 숨겨진 연못조차도 작게 움츠러든 것처럼 보였다. 나무 사이로 뭔가 낭만적인 풍경이 펼쳐지길 기대했는데 여름엔 내게 이곳이 가장 인기가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풀 때문에 나뭇가지들은 보이지도 않았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도 힘들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풀숲 사이로 걸어갈 때 작은 벌레들이 자꾸만 내 주변을 따라오는 듯했는데, 실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앞으로 빨리 뛰어가면 벌레들은 내 뒤에서 쫓아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벌레 군단들이 내 얼굴 주변으로 다시 몰려들 때면 나는 다시 조금씩 앞으로 뛰어가면서 그리 성가시지 않게 풀숲 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꽃이 많았던 작년엔 작은 벌들이 지천에서 날아다녀 무서웠는데 그에 비하면 차라리 풀숲 벌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늪이 나를 하루 더 머물게 하다
늪을 나올 때에는 뒤를 돌아다보면 안 된다. 앞으로는 평범한 길과 풍경이 놓여 있지만 다시 한번 뒤를 돌아다보는 순간 이곳이 벌써 그리워진다. 그래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저 동화 같은 풍경을 내년에나 다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푸르른 나무 숲이 가지 말라고 하루 더 있다 가라고 붙잡는 듯했다. 나는 급하게 근처의 숙소에 예약을 했다. 밤새 여러 생각이 떠오르고 좋은 영감이 떠올라서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물론 그 영감들을 다 노트에 옮겨 놓지는 못했다. 그냥 누워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주차장에서 누군가가 나를 다급히 부르며 뭐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순간 ‘왜 저 사람이 나에게 화를 내지?’라며 기분이 언짢아졌다. 다행히 별일 아니었고 그 사람은 내게 다가와서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이곳이 나와는 다른 억양을 쓰는 동네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별로 말을 할 일이 없어서 다들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경상도 사람들의 말투가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내가 어쩌면 최근에 같은 억양을 쓰는 어떤 사람의 말을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상대가 내게 하는 말투가 이유 없이 나에게 화를 내는 것처럼 몇 번 느낀 적이 있어서 그간 기분이 나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결국은 나를 존중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어버렸다. 물론 그게 억양 때문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나를 존중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이곳 지역의 억양이 얼핏 들으면 늪에서 이름모를 새들이 투박하게 왝왝거리며 다투는 소리처럼 화난 목소리로 들리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늪을 나서며
가장 큰 제방에서 일몰을 지켜보다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거의 혼자서 마지막으로 늪에서 나오려는데 분홍 빛 하늘 아래 고고하게 서 있는 하얀 새들의 자태가 너무 신비하고 아름다워서 다시 한번 제방 위로 뛰어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늪에서 살면 행복할까? 정작 늪 근처의 사람들은 늪에 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여행은 아쉽기 때문에 좋다고 느끼는 것일까? 나는 새들이 돌아오는 가을과 겨울을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속에서 늪이 자꾸 떠올랐다. 늪이 조금 가깝거나 늪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오래 살게 되면 과연 이곳을 지금처럼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현재는 이 늪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좋다. 이런 자연이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