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도 사기꾼이었을까?

영화 '사이비'를 보고

by 이영선

사기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교묘한 거짓말로 사람들의 재산과 마음을 훔치는 사람 (내피셜).


가장 악랄한 종류의 사기는 사이비 종교단체이다. 가난하고 피폐해진 영혼을 통째로 훔쳐가서, 그 눈에 콩깍지를 씌운 다음, 한 인간의 삶을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는 굴레 속에 가두어 두는 것이다. 그렇게 저당 잡힌 영혼은 그것이 사기인 줄도 모르고, 그 안에서 마냥 행복해한다는 것에 더욱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어느 마을에 갔는데 더럽고 천정도 낮은 좁은 돼지우리에 아름다운 여인이 갇혀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은 구정물 가득한 바닥에 앉아 진흙이 뒤범벅이 된 음식을 주워 먹으며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구해내야 하나, 그냥 지나쳐야 하나'라는 질문을 머금은 채 잠에서 깼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왜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꿈에서 깨어나서도 그 처참한 불쌍함에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서 그 여인에게 집을 찾아주고 싶었다. 동시에 세상에서 어떤 죄를 지어야 사람이 저런 상황에 놓이는가 스스로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도 저런 상황에 놓여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모습을 그 여인의 부모가 본다면 가슴에 철근을 달고 사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야 문득 그 오래전 꿈이 사기꾼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자의 모습으로 해석이 되어 다가왔다. 그 여인은 스스로 상황을 깨닫고 콩깍지가 벗어지지 않는 한, 그 영혼의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신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 것이다. 나는 꿈속의 그 여인을 위해 기도를 했다.


성경에 예수는 부자는 천국에 가기 힘들고 가난한 자의 것이라고 했다. 예수의 제자들은 죄다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다. 나는 이것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문득 예수의 전도방식이 현 사이비교주들의 포교방식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결핍이 있는 사람들은 상대의 작은 호의를 커다란 마음의 빚으로 느낀다. 오리 새끼가 가장 먼저 자기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을 엄마처럼 졸졸 따르듯이, 가장 결핍한 상태의 영혼에게 아주 작은 도움을 베풀면 그 사람과 영혼을 통째로 주워 담을 수 있게 된다. 경제 논리로 보면 이것은 참으로 가성비 있는 투자가 아닐 수 없다. 가진 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툭 던졌는데, 상대가 이를 천근만근의 보석으로 여기고 자신을 내다 바친다면 그거야말로 대박 사업이 아닌가. 상대가 베푼 고마운 부분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함을 간직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것을 너무 과하게 여기는 것도 좋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을 통째로 상대의 발밑으로 굴복시키는 영원한 갑을관계를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신은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생을 요구해도 상관이 없다. 어차피 그가 만들었으면,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사이비 종교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두 가지 질문이 있었다;


1) 사이비교주는 왜 잘나고 잘 사는 사람이 아닌 결핍이 있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일까? 그런 사람들을 포섭해봤자 단체에 짐만 되는 것이 아닐까?


영화를 보고 깨달은 바는, 교회 운영에는 똑똑하고 잘난 역할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무식하고 맹목적이어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청소, 요리, 밭일 등 허드렛일을 맡아할 사람도 필요한 것이다. 박수부대로도 큰 역할을 한다. 규모가 있어 보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애플 컴퓨터에 A급 기술 인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뭐라도 뺏을 것이 있는 나약한 사람들의 모든 것을 쉽게 빼내어 크게 만드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을 것이다.


2)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왜 무식하고 형편없는 교주를 따를까?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밖에 없다. 내게 있는 것보다 부족을 채우려고 내게 없는 것에 더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내가 돈이 있으면 애인을 고를 때 상대의 경제력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온갖 드라마에 재벌이 자기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자기에게 없는 부분이 있는 가난한 애인에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건 단지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부유하고 똑똑하고 다 가진 듯 보이는 소위 잘난 사람들이 엉뚱한 것에 결핍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아마도 교주가 자기들과는 달리 자유롭고 호기롭고 순수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족이 어루만지지 못한 부분을 어루만져준 것이 커다란 은혜처럼 다가갔을지도 모르겠다. 사이비교주는 여느 사기꾼이 그러하듯이 그런 것에 아주 능한 사람들이다. 카멜레온처럼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이 가능하다.


'사람을 얻으면 다른 것은 다 따라온다.'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라면 이것은 참 좋은 말이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한 말이다. 이것이 사이비교주들의 경영원칙일 것이다. 종교는 성경에도 나오듯이 사람을 낚는 사업이다. 문제는 사람을 낚아서 자기의 유익이 되게 하면 그것은 악마나 하는 짓이다. 세상에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신을 팔아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업, 그것이 바로 종교사업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 쪽 솥뚜껑에서 데이고, 저 쪽 솥뚜껑으로 옮겨가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통해 의존성을 버리는 것에 있다. 뭐든 쉽게 무엇에 의존해서 쉽게 인생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종교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에라도 매여서 어차피 인생을 고통으로만 느끼고 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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