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여행이 좋은 이유

by 이영선

나는 홀로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간혹 장거리 운전을 해서 숙박을 해야 할 경우에는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생각도 들지만, 서로 기호가 맞지 않으면 차라리 혼자 가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상대방을 잘못 골랐다가는 동네 카페나 음식점에서 앉아 수다만 떨고 있어도 될걸 돈과 에너지를 들여 괜히 멀리 갔다 온 것 같은 하릴없는 기분이 들뿐이다. 수다도 나쁘지 않지만 문제는 어떤 내용이냐가 중요하다. 대부분 동년배 지인들은 가족과 아이 등 일상의 먹고사는 잡다한 얘기를 한다. 귀를 물에 씻어내고 싶을 정도로 듣기가 싫다. 나는 이럴 경우 다시 날을 잡아 홀로 같은 여정을 반복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단지 소풍처럼 일상에서 휴식을 찾기 위한 거라면, 나의 여행은 영감과 그때의 새로운 감흥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단순히 무엇을 먹으러 식당이나 카페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허송세월처럼 느껴진다. 물론 어디에 가서 평소에 먹지 않았던 음식을 먹고, 낯 선 카페에 앉아 잠시 상념에 잠기는 휴식을 갖는 건 여행의 묘미이다. 한 끼를 먹더라도 단순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 아무거나 먹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은 내가 하는 여행과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것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흥미를 두지 않는 것들이다. 내가 사회적 맥락을 떠나 친한 사람들에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밥 먹자', '밥 먹었냐?', '밥은 어떻게 먹냐?', '밥을 잘 먹어야 한다' 등 '밥' 얘기가 들어간 문장들이다. 나와 형식적 관계에 놓인 사람들에게 나도 가끔 이런 의미 없는 질문을 하긴 하지만, 그러면 말 그대로 상대가 나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나는 '밥'을 잘 안 먹는다. 세상에서 제일 미련해 보이는 음식이 주먹밥과 초밥 같이 쌀을 그저 뭉쳐놓은 것들이다. 그래서 밥 얘기를 하는 게 싫다. 아무튼 하고 많은 이야기 중에 매일 기본적으로 반복하는 먹고, 마시고, 화장실에 가고 하는 이야기를 물어보는 의미 없는 질문들이 제일 싫다.


여행을 가면 나는 차를 한 곳에 세워두고, 그 장소의 삶을 가능한 샅샅이 관찰하고 경험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많이 걷는다. 한 목적지에서 다른 목적지로 이동을 해서 여행의 종적만 남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목적지도 중요하지만 그 목적지를 이어가는 과정도 모두 중요하다. 예전에 이모와 뉴욕에 간 적이 있는데 나는 지도를 살펴서 가능한 모든 곳을 가보는 것에 흥미가 있었는데 이모는 언제 어디에 도착하느냐고 계속 물었다. 심지어는 내가 지하철 출구까지도 정확히 안내하기를 원했다. 마치 쿠폰 카드에 도장을 찍듯이 한 곳에 진득이 머무르지 못하고 휙 둘러보고 다음 장소에 가자는 식이었다. 그렇게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여행은 정말 지루하고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역시나 이모는 열흘이나 머물며 여러 곳을 실컷 다녔으면서 나 때문에 고생만 했다고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여행은 점이 아니라 점이 이어지는 선이고 그 선이 울타리를 만드는 면, 그리고 그 안의 삶의 에너지를 느끼는 공간이다.


홀로 여행을 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또래의 다른 사람들이 걷지도 못할 만큼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건강하지 못한 줄 몰랐다. 같이 걷다 보면 얼마 걷지도 않아 상대가 뒤쳐지거나 돌아가자고 하는 경우가 많다. 바닷가에 가도 해변 끝자락에만 잠깐 앉아 있거나, 산에 가도 산자락 밑에 있는 주차장 옆 잔디공원에나 서성이다가 오는 경우가 많다. 어디에 다녀왔다고 생색을 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그게 무슨 여행일까 싶다. 나는 사실 사람들이 이렇게 몸이 허약하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고 놀랐다. 하긴 요즘 새로 형성되는 주거 공간을 살펴보면 걸어 다닐 일이 많이 없도록 되어있긴 하다. 걷지 못하면 세상의 많은 즐거움이 사라질 것 같다. 나는 내가 잘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사람들이 매우 허약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같이 여행 다니기 힘든 사람들 중 한 부류는 채식주의자이다. 한국음식에 채식만 있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특히 식당 중에 채식을 주로 제공하는 곳은 많이 없다. 또한 있다 하더라도 채식을 먹으려고 외식을 하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생선, 계란, 고기가 없는 음식을 굳이 비싼 돈 내고 사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채식주의자들과 여행을 한 경우가 두 번 있었는데, 음식점을 찾으려다가 못 찾은 경우도 많았고, 기껏 바닷가로 여행을 가서 온갖 찬란한 비주얼의 음식점을 뒤로하고, 구석진 곳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밀가루 칼국수나 먹고 왔을 땐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식당에서 파는 한국음식에는 하물며 비빔밥에도 고기와 계란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여행을 갈 때에는 자신의 음식을 챙겨 오거나 하면 좋을 것 같다. 본의 아니게 같이 여행을 간 사람들에게 상당한 민폐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은 골고루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잘 먹는 게 자연스러운 건강의 비결인 듯싶다. 내가 느낄 때 채소도 아파한다. 산 채로 이 사이로 와그작와그작 씹어먹는 채소나, 죽여서 먹는 육식이나 그저 우리는 감사히 잘 먹으면 되는 게 아닐까. 굳이 그래야 할 건강상의 이유가 있지 않다면 말이다.


감성과 기호가 잘 맞는 친구를 만나서 여행을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여행이 단순히 휴가의 개념이 아니라면, 홀로 여행을 하면서 세상을 세밀히 느끼고 낯 선 공간에 오로지 혼자서 있는 것은 시간에 질적인 깊이를 더하는 일이다. 죽기 전에 그런 여행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홀로 여행을 하기 전에 나는 늘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차에 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눈과 귀와 온몸의 감각을 열어놓고 시동을 켠다. 또 다른 인생의 그림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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