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난데즈 (가명)

청각 장애인 아닌 그냥 친구

by 이영선

미국 학교에서 발레수업을 가르쳤을 때 학기가 시작되기 전 학교로부터 이메일 안내문을 받은 적이 있다. 수업에 청각장애인 학생이 수강을 할 것이고, 수화통역자가 동반을 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나는 장애인을 주변에서 직접 접한 적이 거의 없고 특수 교육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난감했다. 신체장애가 꼭 지적 장애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학생의 지적 능력도 남들보다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외국인이 영어를 잘 못하면 지능이 덜떨어진 사람인 것처럼 취급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도 모르게 나의 무지에서 상대에 대해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얼굴도 아직 못 본 학생이 약간은 두렵기까지 해서 학기가 시작되기 전 어떤 이유에서든 그 학생이 강의 신청 취소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 수업이 시작되었고, 학교에서 지원하는 수화통역자가 나에게 입모양을 크게 해서 얼굴이 보이게 해 달라는 등의 간단한 부탁을 했다.


꽤 긴장이 되고 나름 신경이 쓰이는 첫 수업이 끝나고 학생과 홀로 대면할 기회를 가졌다. 워낙 모르는 건 상대에게 대놓고 물어보는 성격이라 그 학생에게도 이런저런 솔직한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우선 음악과 박자를 어떻게 듣고 동작을 하는지 물었다. 매 수업엔 피아노 라이브 반주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피아노 소리가 바닥에 울리는 진동을 통해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바디랭귀지와 핸드폰의 메시지 창을 사용해서 그럭저럭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청각장애인이긴 하지만 입으로는 소리 없는 문장을 만들 수 있어서, 어느 정도 그녀의 입모양을 보며 단어를 유추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날 대화를 시작으로 서로와의 거리를 좁혔고, 이후로 친구가 되어 같이 작품도 하면서 지내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우리가 여느 사람들과도 겪는 소통의 다름의 차원이지 뭔가 온전하지 못한 존재와 온전한 존재와 같은 차별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당시의 내 모습이 오히려 '꼴값'이었다. 미국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그녀는 미국인이었고, 나는 외국인, 그것도 작은 아시아 국가의 외국인이었으므로 다양함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였다면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사회적 약자로서 편견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서로가 어울리며 다름을 경험하는 속에서 우리는 모두 다 같이 존중을 받아야 하는 인간임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 같다. 그것은 서로를 무조건 같아지게 하거나 동정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벽 때문에 생기는 원초적인 두려움이나 더 나아가서는 적대감과 집단적 이기주의를 녹이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와 친해진 후에 그녀는 더 이상 수직관계처럼 놓여있는 학생도, 장애인도,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할 사람도 아닌, 그저 누구나처럼 그녀만의 독특한 특징과 이름을 가진 나의 좋은 친구였을 뿐이다.


그녀는 내 작품의 좋은 멘토이기도 했다. 나는 작품을 완성해서 발표하기 전에 그녀에게 내 작품을 보여주었는데 그녀는 별다른 설명이나 소리 정보가 없이도 내 작품을 아주 잘 이해했다. 내 작품은 추상적인 움직임, 말 그대로 순수한 몸의 움직임의 표현이 많은데, 추상적 사고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내 작품이 난해하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아마도 본인들이 아는 뭔가에 나의 작품을 끼워 맞추듯이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그녀가 내 작품을 이해했다면 내가 표현하려는 것이 잘 완성이 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예술 전공자도 아닌 그녀가 내 작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그녀가 말하길, 나도 시각적인 사고가 발달된 사람이기 때문에 작품에 시각적 표현이 강조되어서 그렇다고 했다. 물론 나는 대체로 눈치가 없는 것만 빼고 다른 대부분의 감각이 다 과민할 정도로 발달한 사람이긴 하다. 내가 주먹구구로 사용하는 바디랭귀지도 실제 수화와 비슷하다고 했다. 그래서 수화를 배울까 하다가 여러 여건 상 여유가 안되어 배우지는 않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감각이 다 다르게 발달이 되었다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청각장애가 있으면 청각 대신 다른 감각이 더 발달될 수밖에 없고, 주로 시각적인 것에 더 의존해서 세상을 소통하고 이해하니 그녀의 시각적 이해도가 더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이 친구를 알게 된 이후로 나는 다른 안무가의 작품을 볼 때에도 일부러 음악이나 다른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몸의 언어에 집중을 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진짜 강한 춤은 음악이나 조명 등의 효과를 배제했을 때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모든 청각장애인들이 비슷한 감각발달 성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청각장애인이라는 단어로 소수의 각기 다른 사람들을 동일한 집단명으로 구분 짓는 것이 적절해 보이지도 않고, 그건 내 글의 의도가 아니지만, 사회적 소통의 편리를 위해 그런 구분어를 쓰며 글을 쓰고 있음을 양해 바란다. 다름을 이해하는 방법을 누군가 하나로 정리하고 규정해서 강요할 수 없다. 그보다는 다름들이 만나는 작은 경험의 장을 열려있게 하는 것이 인간 사이의 벽을 너머 따뜻한 이해를 돕는 방법인 듯하다. 같이 섞여 있음으로 서로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누군가는 '굳이 왜 그렇게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데?'라고 불평을 털어놓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래서 이들의 삶은 다수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특수학교를 설립하려고 하면 주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서로의 벽을 넘는 일은 돈을 벌고, 먹고사는 일보다 더 고급져 보인다.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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