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이는 족쇄로부터 자유하기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6학년이 되어서 소위 말해서 '불주사'라고 불리던 결핵 예방 주사를 맞게 되었다. 일괄적인 검사에 일괄적인 처방이 내려진 주사. 물론 겁이 많은 나는 제일 끝 순서에 교실 안을 도망 다니다가 선생님과 간호사에게 붙잡혀서 고래고래 악을 쓰고 울면서 주사를 맞게 되었고, 주사를 맞은 후에도 두렵고, 서럽고, 성질이 나서 한참을 울었다. 나는 켈로이드성 피부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보다 주사 자국이 흉하게 부풀어 올랐다. 지금은 많이 흔적이 사라졌지만 꽤 오랫동안 내 신체의 콤플렉스였다. 겁이 많으니 흉터를 제거하기 위해 병원을 가지도 못했고, 부모님이 나 대신 알아보니 성인이 되기 전엔 내버려 두는 것이 좋으며 흉터를 없애기 힘들다는 대답뿐이었다. 나는 거의 평생 그날 학교에 간 것과, 간호사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어깨에 흉터를 만든 그 사람을 저주했다. 할 수 있으면 만나서 따지고 싶었으니 말이다.
민소매가 유행이던 여름, 나도 어깨가 시원스럽게 드러난 원피스를 입고 싶었는데 남들이 내 어깨만 쳐다볼 것 같아서 망설였다. 아무도 안 쳐다본다고 주변에서 말했지만 나는 사람들이 안 쳐다볼 수 없을 것을 알았다. 뉴욕에 여행 겸 연수 겸 약 한 달간 무용 수업을 들으면서 머물렀는데, 무용 수업에선 어차피 상체를 아예 훤히 드러낸 옷을 입고 자기 몸에 집중하느라 내 어깨에 별로 시선이 집중되지 않았지만 일상의 거리를 다닐 때에는 더운 여름 뉴욕 한복판에서 당시엔 구하긴 힘든 촌스런 반팔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 친한 미국인 친구가 괜찮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내 어깨의 주사 흉터 자국이 싫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친구가 투피스를 선물로 사주었다. 민소매로 된 세련된 푸른색 색상의 옷이었다. 옷은 너무 예뻤지만 집에서만 입게 될까 봐 난감했다. 친구가 말했다.
"내가 사주는 것이니까 꼭 입어야 해."
친구는 내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해 주려고 일부러 그 투피스를 선물로 준 것이었다.
한국에 와서 고마운 내 인생 친구를 생각하며 방 안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처음으로 어깨를 드러낸 그 민소매 투피스를 입고 복잡한 시내 거리를 활보했다. 처음의 내 우려와는 달리 사람들은 별로 내 어깨에 관심이 없었다. 물론 한 두 명 내 어깨에 대해 별 뜻 없는 질문을 던지며 호기심을 보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그 옷을 입은 이후로 어떤 옷도 가리지 않고 입게 되었다. 친구의 투피스가 오랫동안 자리 잡은 어깨 흉터에 대한 나 스스로의 편견을 깨고 자유롭게 만들었다. 방 안에서 망설일 땐 몰랐는데 드러내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건 스스로의 콤플렉스였을 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괄적으로 접종을 한 사람들 대부분 그런 흉터를 어깨에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나처럼 흉터가 좀 더 눈에 띄게 자리 잡은 사람도 더러 있었는데 내가 그런 사람들을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어깨에 문신을 한 줄 알기도 했다. 할 수 있으면 문신을 할까도 생각했는데 피부 표면이 변형이 되어 문신을 하는 게 적절치 않아 보였고, 우선은 난 겁이 많았다. 지금은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되었고 있어도 내 의식 속에서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이 글을 쓴 다음에 이참에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겠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친구의 투피스가 아니었으면 나는 절대로 이 정신적인 투명 족쇄를 벗어던지지 못했을 것이다. 무언가에 매인 것 같은 순간을 경험할 때, 나는 늘 그 친구가 사준 투피스를 생각한다. 좋은 친구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