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형성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 중의 하나는 '갑을관계'이다. 나는 갑을이라는 말도, 그런 관계를 나에게 적용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회사에서, 또는 프리랜서로 일을 할 때, 나는 나를 주체로 둔다. 나는 세상의 관계를 상대가 필요한 만큼 나의 가치를 쓰고, 그에 걸맞은 비용을 지불하는 필요충분조건으로 본다. 고용주가 갑이라는 공식이 어떻게 기원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을이 되기를 허용하지 않으면 아무도 을로 몰아가지 못한다. 나의 인생에서는 내가 을이었던 적이 없다. 그래서 갑을관계의 논리 하에서 자신이 비굴해지는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다. 계약서에 명목상 갑과 을로 표기를 했어도, 나의 필요와 상대의 필요가 균형을 잡아서 내가 필요할 때 상대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그 관계를 언제든지 걷어찰 수 있는지를 항상 가늠한다. 사회적 통념으로 얼핏 본다면 사회생활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의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맘 편하게 사는 사람이다. 겉으로 보는 기준은 타인을 위한 것이지만, 세상은 내 속 편하고 행복할 때 가장 잘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살았어도 여태 잘 살아와서 감사히 생각한다.
대부분은 서로의 가치가 정확히 수량화되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럴 때 최소한의 수량화된 가치 기준을 정하여 관계를 맺고, 이외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서로 살면서 흔쾌히 주고받는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돈이 아니면, 그만큼의 즐거움, 혹은 배움을 얻는 것으로 그 가치를 부여받음으로써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한다고 보는 것이다. 갑을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는, 상대가 나에게 주는 가치가 훨씬 크거나,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바라는 것이 있을 때 형성되는 것 같다. 결국은 욕심의 균형이 맞지 않아 생기는 일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서 굳이 싫은데 타인을 위해 굴욕을 겪어야 하는 위치에 본인을 놓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세상의 관념이 대부분 진리인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일부는 그렇지 않은 통념들이 많이 있다.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사람들이 굳이 괴로움을 주는 부정적인 관념이라면 버리고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갑을관계는 세상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갑을이라는 이상한 단어가 사라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