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수요일 저녁, 소위 말해 여름 비수기, 외국의 큰 극장에 소속된 큰 무용단은 대부분 연습도 없이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긴 휴가를 보내는 기간, 지인들이 오고 싶어도 대부분 오지 못하는 시간, 주중 저녁 퇴근시간의 교통체증, 그것도 꽤나 복잡한 신촌의 어두컴컴한 지하의 한 소극장, 뭔가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순수 무용을 춤추는 사람들에게는 이나마도 기회가 없다. 열악한 컨템퍼러리 무용현실을 살아가는 기획사의 의도가 다분히 보이면서도 나름 '공모전'이라는 절차를 거쳐 이 무대를 감사히 선택한다. 직접 기획과 제작을 하는 개인 작품 발표를 주로 하는 나로서는, 나 대신 누군가가 공연을 기획하고 장소를 대관하는 등의 절차를 대신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수고로움이 덜한 느낌이다. 말 그대로 공연만 잘 준비하고 오면 되는 것이다. 작품을 하면서 온갖 행정일을 도맡아 하는 개인 공연은 장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나름 '가오'가 있는 작은 공연기획이다.
미국에 있을 때에는 큰돈은 아니더라도 돈을 받고 큰 무대에 섰다. 돈을 주지 않아도 기사에 평은 몇 줄 떴으며(한국은 돈을 줘야 뭘 써주는 이상한 문화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 언론이나 알량한 평론 따위를 믿지 않는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 잡지사는 1년 구독을 하면 평론을 좋게 써준다고 꼬셨고, 미국 언론사에 근무했을 때에는 광고를 안 준다고 막말을 했던 한국 대형 언론사 사장실을 쳐들어가 따진 적도 있다. 생각해 보면 웬만한 드라마보다 더 웃기는 에피소드가 살면서 참 많았다. 나도 웃겼지만, 세상에 웃긴 사람들이 참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다양한 관객들과 소통을 할 기회가 있었다. 무용을 하고 돈을 받는 일은 한국에 온 이후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난데없이 캔버스를 잔뜩 사도록 지원을 받아 커리어 하나를 더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나는 내 공연에선 2-3장을 제외하고는 절대 초대권을 그냥 발부하지 않는다. 오기 싫으면 안 오는 게 내 공연에 도움이 된다. 보기 싫어하는 관객 앞에서 귀한 작품을 공연해야 하는 상황이란 생각만 해도 메스껍다.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어 공연의 힘이 증폭되기도, 확 죽어버리기도 한다. 관객의 태도가 공연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백 명의 무감각한 관중보다는 다섯 명의 진지한 관객이 내게는 힘이 되고, 무대 위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한다.
미국도 무용계는 어렵긴 하지만 여기만큼은 아니다. 생활 속에 베인 문화예술 수준의 차이라는 것은 화성과 지구의 거리만큼이나 크다.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다. 여기는 여기이고, 그곳은 그곳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곳이 이곳이고, 달리 다시 갈 방법도 아직 모르기에 속으로는 몹시도 씁쓸하고, 혹여나 있을 타이밍에 탈출에 대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는 있지만, 내가 가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둘러싸인 환경이 다를지라도 작품의 고유성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매우 가치가 있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교통체증이 있는 도심 한가운데 컴컴히 자리한 소극장이던, 한 여름 비수기이건 간에, 그 어느 곳도 아닌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나의 행복감을 제외하고는 외부 세계에 대한 거의 아무런 기대가 없다. 우선은 모든 일이 그렇듯이 나를 위한 이벤트이다. 기획사도 나름의 목적을 위해 그들만의 이벤트를 하는 것인 줄 안다. 그렇지만 그게 서로 행복하게 느껴진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들도 무용을 좋아해서 이런 이벤트를 지속해서 기획한다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가오'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말에 어디선가 나만의 장르를 내보일 장소를 계속 물색 중에 있지만, 그 와중에 작품 한 조각을 장르가 정해진 타인의 기획에 합류해서 내보일 수 있는 시간이 내게도 나름 여름휴가인 것이다. 남의 기획이든 나의 기획이든, 작품의 무게와 이를 준비하는 긴장감에는 변함이 없다. 난 세상에서 하나뿐이 없는 내 춤이 좋다. 내가 추는 춤이지만, 내가 어떻게 이렇게 신기하게 움직이는지 종종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