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농사를 좀 아는 지인이 다녀갔다. 대책 없이 호박 모종 두 개와 고추 모종 두 개를 사놓고 농사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화분 두 개에 나란히 모종을 꽂아 놓고 좋다고 일주일을 보낸 나에게 난생처음 먹을 것이 열리는 무언가를 키우는 귀찮음을 감당하기로 한 것은 내 인생에 획기적인 일이었다.
지인이 온다 해도 별 할 일이 없어 보였다. 모종을 두 개씩 같이 심어 놓은 것을 하나를 파내어 다른 곳에 옮기는 일이니 구멍을 파는데 3초, 모종을 꺼내는데 3초, 다시 다른 곳에 구멍을 파고 모종을 박아 넣는데 3초, 총 30초 이내로 끝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내가 해도 되는데 귀찮기도 하고 안 해도 그만일 것 같아 그냥 지인에게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호박과 고추 모종을 심은 것을 자랑이나 하고 싶었다. 혹시 몰라서 다이소에서 저렴한 이천 원짜리 호미 하나를 사 두었는데, 땅을 한 번 푹 파면 모종을 심을 구멍이 금방 생길 것이었다. 그보다 흙이 베란다 위로 여기저기 튈까 봐 그게 더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막상 풀숲을 헤치고 땅을 파려고 하니 풀을 건드리기도 꺼려지고, 조그만 콩벌레 같은 것이 위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땅 속에 각종 벌레들과 여름에 가끔 나타나는 뱀같이 커다란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있을 듯해서 선뜻 엄두가 안 났다. 지인이 오기도 전에 나는 이미 모종을 그대로 화분에 두고 키워도 될 거라는 자기 설득과 합리화를 끝낸 후였다.
유난히 아침부터 봄바람이 정신없이 불어서, 흙먼지가 날아들까 봐 베란다에 나가기도 꺼려졌다. 지인은 안 옮겨도 된다는데도 모든 걸 본인한테 맡겨두라고 했고, 나는 준비했던 장갑과 호미를 건넸다. 작업하는 걸 옆에서 거들며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작업실에 잠시 들어갔다 나와보니 한참을 지나도 지인이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어느새 나타난 지인이 쭈그려 앉아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대단한 일거리가 생긴 게 아닐까 하며 걱정스레 베란다로 나가 보았는데 호미로 푹 한 번 찍어서 모종을 거기에 쏙 넣으면 될 거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네모나게 주변의 풀을 다 뜯어서 작은 밭고랑까지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손으로 일일이 땅을 밀가루처럼 고르고 섞어서 잘린 풀뿌리까지 죄다 골라내고 있었다. 밭고랑 주변에는 벽돌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지인은 벽돌을 주우러 동네를 돌아다녔다고 했고, 훔친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나는 순간 머리가 멈칫했다.
내 예민한 두뇌에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겹쳐서 나타났다. 상당한 황송함과 정성에 대한 고마움, 벌레는 안 나타났는지에 대한 궁금함, 흙이 여기저기 어질러져 베란다 대청소를 또 해야 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남모를 우려, 내가 좋아하는 풀꽃들이 죄다 헤쳐져 봉오리채 던져진 것의 충격, 이렇게 일이 크게 벌어질지 몰랐던 것에 대한 놀라움 등이었다. 풀 가운데 주먹만큼의 빈 공간을 파고 거기에 살짝 모종을 숨기듯 심으려고 했던 건데, 그건 마치 작은 점 같은 충치를 치료하러 갔다가 푹 파진 어금니를 보았을 때나, 혹은 누군가의 머리 안에 커다란 원형탈모가 생겨난 것을 본 것처럼 흙바닥이 넓게 파진 것을 보고 적잖이 놀라고 또 만감이 교차했다. 베란다 밖으로 초록의 풀과 노랗고 하얀 풀꽃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은 사실 못내 아쉽고 황당했다.
지인은 이미 내 성격을 파악하고 차 안에서 깨끗한 실내화를 꺼내어 신고,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비닐까지 깔끔하게 깔고 앉아 흙 한 톨도 튀지 않게 열심히 손으로 땅을 고르고 있는 중이었다. 지인은 커다란 지렁이가 나올 것을 예상했는데 없어서 오히려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풀은 뿌리까지 꼭 없애고 모종 주변으로 넓게 풀을 죄다 없애야 영양분을 뺏기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긴 머리에 예쁘장한 모습으로 거침없이 땅을 손으로 반죽하고 있는 지인이 왠지 멋있어 보였다. 물론 나는 별로 손으로 직접 벌레가 와글거리는 흙을 만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풀하고 호박하고 같이 살면 안 되겠냐고 했는데, 검증한 바는 없지만 자라면서 주변에서 그렇게 배웠다고 했다. 정말 풀이 친구 식물의 양분을 다 빼앗아 먹을까 의문이 들었다. 아마 같이 자라도 괜찮은데 아무도 그렇게 키워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도 싶었다. 먹는 식물에만 집중한 인간의 욕심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오랜 농사의 경험을 지닌 인류가 그렇다고 하니 우선은 그렇게 믿어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지인이 완성한 작은 호박밭을 보니 역시 벽돌과 함께 예쁘게 정리가 된 것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지인은 식물이 비도 맞고 바람도 맞으면서 여러 날씨에 적응을 하면서 강해질 거라고 했다. 그리고 식물을 옮기면 식물이 당분간 땅에 적응할 때까지 몸살을 앓을 수가 있으니 잘 지켜보고 얘기도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물도 수돗물은 2-3일 지나서 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고추가 자라면 막대기도 꽂아서 묶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미리 꽂아두면 너무 어렸을 때부터 자유롭게 크는 걸 제한하기 때문에 안 좋다고 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면 비료도 주고 베란다가 뜨거울 테니 호박 열매 밑에 신문지를 깔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안 쓰는 요가매트를 깔아준다고 했다. 별일이었다. 주먹만 한 조그만 식물에 안 보이는 손길이 많이 필요했다. 나는 자꾸만 늘어나는 해야 할 일들의 목록에 난감하고 무거워지는 머리를 느끼다가, 결국 그냥 지인이 모종을 파가서 어디 다른 곳에다 심으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대신 가끔 와서 봐준다고 해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지인이 가고 나서 이제 호박 모종은 땅에 잘 묻었는데, 바람이 부는 베란다에 놓인 다른 화분과 식물들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특히 화분이 자꾸 바람에 나뒹그러져서 몹시도 신경이 쓰이는 바람에 몇 번이나 뛰어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작업실 안쪽에는 들여놓을 공간이 마땅치 않아 화분이 쓰러질까 봐 전전긍긍하여 자꾸만 밖을 내다보았다. 급기야 장미꽃 화분만 문 안으로 겨우 들여놓았는데 오후 늦게까지 온 신경이 바깥의 화분에 집중되었다. 식물을 옮기면 몸살을 앓는다는 지인의 말이 자꾸 떠올라서 시시때때로 앞서 심은 호박잎을 만져보고 시들었는지 마는지를 점검했는데, 또 너무 손으로 만지면 잎이 닳아질까 봐 옆에서 가만히 앉아 뚫어지게 쳐다보고 들어오는 동안신경이 아주 예민해졌다. 집에 갈 때쯤, 내가 없는 동안 밤새 화분들이 날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꽃이 활짝 핀 사피니아 화분 네 개와 제라늄 화분을 컴컴한 화장실에 안에 다 들여놓고 문을 잠그고서야 작업실을 나올 수 있었다. 햇빛이 안 드는 화장실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도 고민이었지만, 나뒹그러지는 것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이 우세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도 화장실에 넣을까 말까 하루종일 결정장애에 시달렸다.
다음 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편인 데다가 오전에는 먼 곳에 가서 강의를 하고 점심때나 지나서야 작업실로 돌아올 수 있어서, 일하는 내내 기껏 활짝 피었는데 컴컴한 창고 같은 화장실 안에 갇혀있을 꽃화분들이 걱정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아이러니한 장면인지 모르겠다. 나는 일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화장실 문부터 열고 식물들이 다 시들어 죽었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다들 멀쩡해 보였고 제라늄은 그 어둠 속에서도 꽃을 몇 개 더 피웠다. 부리나케 햇볕이 드는 베란다에 화분을 죽 늘어놓고 꽃이 어제보다 얼마나 더 피고 졌는지, 이파리들은 다 싱싱한지, 화분의 무게는 줄었는지 늘었는지 확인했다. 신경 쓸 일이 한 둘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이파리와 꽃잎, 꽃봉오리 숫자와 위치까지 각인된 거 같았다. ‘아, 내가 이것들을 왜 들였을까……’ 스스로 괜한 생각이 들었다. 밖에 고추 모종은 제대로 힘을 내고 있는 것 같은데, 호박이는 어째 잎이 그대로인 채 쳐져 있는 게 자꾸 눈에 밟혔다. 물을 자꾸 주지 말고 알아서 땅에서 잘 살도록 내버려 두라고 했는데, 쳐진 잎들을 보니 물을 줄까 말까 앞에 앉아서 또 한참을 고민했다. 호박이 땅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날 지경이었다. ‘아, 내가 정말 이것들을 왜 들였을까……’ 내 몸에 팔다리가 열 개는 더 생겨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밖에서 사람들이 화분을 훔쳐가거나 호박이를 뜯어가면 어쩌나, 화분에 실리콘을 붙여서 바닥에 붙여 놓아야 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인에게 연락이 왔는데 식물하고 대화도 자주 해야 한다고 했다. 풀은 조금이라도 보이면 반드시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대답은 했지만 오히려 풀이 자라서 호박이를 아무도 못 보게 감춰주었으면 했다. 문득 식물도 자식을 키우는 것과 비슷할 거란 생각을 했다. 자식이 없으니 망정이지 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이 있었다면 아마 노이로제에 걸려 새장 같은 방에 처박아 두고 아무것도 못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식에 대해 노심초사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어린 왕자가 매일 청소하고 가꾸는 그의 별과 장미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었다. ‘어린 왕자가 많이 바빴겠구나……’ 가장 중요한 건 그래도 식물들이 이쁘다는 것이었다. 말은 못 하지만 친구들같이 내가 쳐다봐주면 향기도 더 나고 더 싱싱하게 잎을 펴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보였다.
덤으로 얻은 작은 꽃화분 세 개는 그나마 물을 많이 안 주고 실내에서 키워야 한다고 해서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그래도 갑자기 생긴 화분 아홉 개와 고추 모종 두 개, 호박 모종 두 개와 돌아다니면서 대화를 하고 만져주고 물을 주느라 틈틈이 아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세상의 농부들과 마트에 있는 많은 농산물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내가 농부가 아닌 사람이라 또 다행이다. 내가 교육부 장관이라면 텃밭에 자기 이름을 단 작물 키우기를 교과 과목에 넣을 것 같다. 아주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귀한 수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한다는 말을 식물이 알아들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아주 신나게 말을 걸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왔다. 물론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지 소심하게 살펴보면서 말이다. 식물들이 오랫동안 제 명대로만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탈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