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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Apr 29. 2023

잡초가 갑이었네

호박 키우기

무엇을 키우고 돌보는 것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다 나에게 오는 동식물은 모두 죽거나 시들다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거북이는 물을 갈아 주는 동안 어디론가 잽싸게 도망가고, 금붕어는 배를 곯다가 추위에 떨며 생을 달리했고, 봄날 베란다에 내어 놓은 강아지는 감기를 앓다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기지개를 켜고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축 늘어져 죽었다. 그래도 나는 이것들의 존재를 일반적으로 즐기고 사랑한다. 단지 소유해서 내가 책임을 져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 나는 이것들을 애초에 사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로 가져온 것들을 내가 잘 지키지 못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무책임한 우리 엄마였다. 늘 일만 벌이고, 그다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거북이도, 금붕어도, 강아지도 예쁘다고 사 오고 누군가에게 얻어왔다.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나는 이런 점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을 경멸한다. 지키지 못할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있는 자 말이다. 나는 그저 서툴렀을 뿐, 물론 모르고 서투른 것도 잘한 일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작년에 꽃화분 하나를 아주 잘 키웠다. 밥도 안 주고 간식도 챙겨준 적 없는데, 물만 한 바가지씩 먹고 매일 피고 지는 꽃이 신통방통해서 올해는 화분을 여섯 개로 늘렸다. 화원에서 덤으로 작은 꽃화분을 세 개 더 얹어 주었다. 나도 작년에 키우던 것과 비슷한 꽃나무 하나쯤은 키울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화원에 있는 화분을 몽땅 가지고 오고 싶었는데 그나마 아홉 개의 화분을 작업실 여기저기에 놓고 보니 한 편으로는 그나마 내가 왜 저걸 다 가져왔을까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래도 이것들을 돌보는 것은 일이 아니라 하루의 시작을 환기시키는 어떤 의식과도 같아서 마음이 즐겁다. 꽃은 내가 아침에 다가가면 향기를 뿜는 것 같았다. 내가 다가가기 전에는 분명 아무 향기도 없었을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말이다. 귀찮은 것을 아주 싫어하는데 굳이 시간을 내서 인터넷을 뒤져서 해당 식물에 대한 공부도 조금 했다.


화분을 다 늘어놓고도 자리가 아주 많이 남은 베란다에 나는 넝쿨넝쿨 호박과 수박이 자라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여름 햇빛도 막아주고 호박도 따먹고 이파리도 따먹고 수박도 한 통 따서 작업실 상가 건물주 아저씨에게도 하나 줄 수 있지 않을까 혼자 마음이 들떴다. 엄마와 드라이브를 하다가 마침 길가에 호박과 야채 모종을 파는 화원이 있어서 잠깐 들렀다. 엄마는 절대로 호박이 화분에서 나와 넝쿨넝쿨 베란다를 덮으며 열매가 열리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상추 한 포기나 심으라고 했다. 수박은 어림 짝도 없다고 했다. 나는 저게 자라 봤자 얼마나 자라느냐고 호박이 열리면 달라고나 하지 말라고 했다. 모종 가게 주인은 호박을 두 개만 가져다 심어보라고 했고, 한 개도 아깝고 어림없다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며, 모르는 척 엄마가 산 고추 모종 꾸러미에서 고추 모종도 몇 개 잘라 내 작업실로 왔다. '흙에다 심으면 나겠지 뭐! 쪼그만 게 지가 뭐라고!'  수박 모종은 없어서 못 샀다.


사실 나는 도심 한가운데 도로 옆 1층에 자리를 하고 있어 먼지가 자주 쌓이는 야외 작업실 베란다 청소가 하기 싫어 뭐라 자라서 여름 내내 거기를 덮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어렸을 적 집집마다 꽃밭에서 나팔꽃이나 호박을 심어 줄기가 옥상으로 타고 넘어가면서 호박도 열리고 거실 큰 창문 앞으로 그늘도 생기고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실용성도 있고, 멋도 있고, 보기도 좋아서, 여러 면으로 좋을 것 같았다.


모종은 가져왔는데 사실 화분도, 호미 같은 농기구도 없었다. 흙이 없다는 사실도 그제야 깨달아서 우선 모종을 베란다 앞에 잠깐 세워 놓고 재빨리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정보는 많았지만 끝도 없어서 머리가 아팠다. 그냥 컴퓨터를 닫고 다이소로 향했다. 왠지 거기에 가면 모든 게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거기에는 모든 필요한 것들이 다 있었는데 저렴한 줄 알았더니 흙은 오히려 화원에서 사는 게 훨씬 더 저렴하고 크기도 몇 배 이상 컸다. 급한 김에 화분은 집에 두었던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스티로폼 박스를 찾아서 썼다. (문득,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통에 심은 모종에서는 호박 대신 아이스크림 케잌이 열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그런 나무가 있으면 너무나 좋을 것이다. 그것도 내 작업실 앞에서만 자란다면 말이다. 아니면, 호박 안을 열었더니 아이스크림이 가득가득......) 구멍을 뚫어야 한다고 해서 굴러 다니는 드라이버를 찾아 얼추 뚫었고, 방충망 메꾸는 스티커를 떼어서 구멍 위로 붙였더니 나름 그럴듯한 화분이 되었다. 1회용 포크랑 나무젓가락으로 대충 흙 구덩이를 파고, 모종을 넣고, 다 먹고 난 생수병에 물을 채워 물을 주었다. 고추는 죽은 식물이 살았던 빈 화분에 그대로 심었다. 화분이 더 없어서 우선 모종을 두 개씩 한 화분에 심었는데, 조금 떨어져 심는다고 심었는데 심고 보니 서로 5센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잘 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살아있는 동안 어딘가에 심어는 놔야 시간을 벌 수 있을 거 같았다. 흙 위로 이파리가 삐죽이 나온 채 식물이 나름 잘 서있는 걸 보니 뭔가 뿌듯했다. 더 크기까지는 시간이 있을 테니, 공부를 좀 더 하는 동안 얼마든지 옮겨 심으면 될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어떻게든 심어 놓으니 그다음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아 은근히 후회를 했지만, 어쨌든 살려보기는 할 것이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농사일을 하는 지인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호박과 고추 모종 모두 따로따로 심어야 한다고 했다. 같이 붙어있으면 식물의 뿌리가 엉키기도 하고 싸우기 때문에 발육에 서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그리고 호박은 화분보다는 땅에 거름이 많은 곳에서 키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비실거려 조금만 자라거나 아주 조그만 호박 한 두 개만 열려도 좋다고 했다.


지인은 식물에도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한다고 해서, 급한 대로 화분 여섯 개는 월욜, 화욜, 수욜, 목욜, 금욜이라고 지었다. 여섯 개 중 두 개는 장미와 제라늄이라서 그것을 토욜과 금욜로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금요일과 토요일이 뭔가 특별하고 설레는 날이기 때문이다. 올해 장미에 대한 동화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쓸 예정이라 장미 화분을 보면 뭔가 더 영감이 떠오를 거 같았다. 호박과 고추는 지인 이름을 붙일까, 친한 친구 이름을 붙일까, 엄마 이름을 붙일까 하다가 아직은 그냥 '호박이'라고 부르고 있다. 꼴베기 싫은 사람이 생기면 화분에 크게 그 사람 이름을 써놓을 예정이다. 지금은 엄마 이름이 유력한 후보자이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나의 소심한 복수라고나 할까.


지인은 역시 인터넷보다 더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나누어 주었고, 아예 주말에 와서 본인이 직접 호박이와 고추를 손보기로 했다. 식물을 옮겨 심는 것도 마구 옮겨 심으면 안 된다고 했다. 새로운 환경에 이사를 하면 자리를 잡는데 시간이 걸리듯이 식물도 똑같다고 했다. 또한 베란다에 호박넝쿨이 자라면 경우에 따라 호박이 익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처음에 못 알아 들었다. '그럼 호박이 자라고, 열리고, 익지, 뭐 걸어 다닐까 봐?' 지인은 그게 아니라 한여름 뜨거운 아스팔트에 계란을 깨뜨리면 열기로 하얗게 익듯이 식물도 흙이 아닌 곳에서 자라면 고문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요리가 되듯 익는 것이라고 했다. 살아 있는 것이 인간의 인위적 환경에 놓이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이렇게 많아지는구나 싶었다. 지인은 내가 여태 모르는 재밌고 신기한 동식물의 세계에 대해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나는 지인이 올 때까지만이라도 식물이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역시 자연을 경험해 봐야 삶이 풍요로워진다.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해 내가 가져온 생명들에 대해 책임을 질 생각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호박은 그냥 사 먹는 게 낫다.


매일 아침 작업실 베란다로 가서 밤새 식물들이 잘 있었는지 확인하는 순간이 가장 설렌다. 내가 안 쳐다보면 삐칠 것 같아, 제일 먼저 베란다로 가서 화분들과 대화를 한다. 호박이는 삼일 째 되던 날 전날 물을 많이 주었는데도 밤새 숙취에 찌들다 직장에 나온 샐러리맨처럼 시들해 있었다. 저렴한 다이소 흙이라 그런가, 아니면 밤에 도둑고양이가 밟았나, 이유는 모른 채 조금 걱정이 되었다. 지인에게 다급히 연락을 하니 주말에 올 때까지만 잘 돌보고 있으라고 했다. 오후가 되니 호박이가 다시 생생하게 살아났는데, 아무래도 나를 닮아 야행성이라 오전에 축 늘어져 졸린 상태로 있었던 모양이었다. 뭔가 호박이와 내가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았다.


드디어 내일이면 지인이 온다. 오늘은 밤새 비바람이 쳤는지 화분 두 개가 옆으로 고꾸라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바람에 혼자 욕을 하며 여기저기 눈을 흘겼다. 제라늄 꽃봉오리가 축 쳐져있어 그것도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건 원래 그렇게 생긴 듯싶었다. 호박이가 생긴 지 거의 엿 새가 되었는데 호박이는 거의 자라지 않고 베란다 경계석 바로 앞에 있는 풀만 몇 배로 자랐다. 저러다 언제 호박이 열리는 건지 가늠이 안된다. 풀은 옆집 간판 공사 때문에 지나간 트럭에도 밟히고, 물도 안 주고, 챙기는 사람도 없는데 매일 몇 센티씩 자라는 듯했다. 호박이 옆으로 풀이 없었는데 지금은 고작 며칠 새 화분과 호박이를 합친 것보다 풀이 더 크게 자랐다. 갑자기 화분이 조금 재미가 없어졌다. 대신 풀에게 문득 관심이 갔다. 풀이 점점 더 멋있게 보였다. 까탈스럽고 새침해서 잘 자라지도 않고 밤새 뒤집어지기나 하는 꽃 화분들보다 알아서 꽃을 피우고 길게 자라는 싱싱한 초록의 풀이 훨씬 더 멋지게 보였다. 풀의 길게 뻗어 구부러진 유려한 곡선이 훨씬 더 고고하고 당당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황야의 무법자처럼 야생미가 넘쳤다. 여름이 무르익으면 밤에는 찌르르르 보이지 않는 온갖 벌레들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는 풀숲이 된다. 호박이나 꽃화분이나 다 같은 식물인데 풀의 존재감이 그간 홀대를 받아 왔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지 인간이 먹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돈이 안 되서? 혼자 잘 자라서? 나는 풀이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는 꽃보다는 왠지 풀에 가까운 사람인 듯하다. 나도 그다지 돌보는 사람 없이 혼자서 풀처럼 쑥쑥 자라고 풀꽃 같은 야생화를 피워내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돈은 안되지만 나름은 멋있는 삶이라고 느끼고 있다. 오늘 나는 비실거리고 약해빠진 온실 속 꽃화분보다, 자유롭고 진취적으로 자라는 풀이 갑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풀아, 네가 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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