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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Mar 24. 2023

햇살 즐기기

나도 한때는 햇살을 관념으로만 아는 사람이었다.


스튜디오는 양면이 통창이라 오후 내내 한가득 햇살이 들어온다. 매일 들어오는 햇살이지만 매일 그 표정이 다르다. 그래서 매일 보는 햇살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전에는 흰색이었다가, 늦은 오후에는 황금빛으로 무르익고, 다시 노을과 함께 분홍빛을 띤 보라색으로 스튜디오의 흰 벽을 물들이다가 어둠 속으로 살포시 사라진다. 햇살이 다시 들어올 것을 알면서도, 오후를 넘어가는 햇살이 아쉽다. 아니, 이 스튜디오에 있는 햇살을 볼 날은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늘 매일의 햇살을 가슴에 기억한다. 살짝 고백하자면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서 세상의 모든 햇살이 내 스튜디오에만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다. 살면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이렇게 민감했던 적이 있던가. 해는 그냥 뜨고 그냥 지는 줄 알았는데 이젠 햇살이 매일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에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창 앞에 놓인 시유지 잔디밭에 언제 꽃이 피고 푸른 풀잎이 돋아나는지 아침마다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거의 매일 통창 앞에 자리를 잡고 그저 멍하니 앉아 있다. 조금씩 길어지는 햇살과 그림자만 보고도 삶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해가 차오르다가 때가 되어 차갑게 식은 저녁이 오는 것처럼 삶도 그렇게 차오르는 시간을 지나 언젠가는 차가운 곳을 지날 것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 스스로 가장 아름답게 존재하기를 다짐해 본다.


문득 햇살이 내 삶을 바꿔 놓은 순간들을 기억해 본다. 늘 비슷한 시간에 시작하고 끝나는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 햇살이라는 단어는 내 삶에 없었다. 어느 날 회사에 가지 않고 쉬고 있던 조용한 주중 한낮에 아파트 베란다에 햇살이 가득 들어와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없는 동안 햇살이 이렇게 노닐다 가는구나 싶었다. 머릿속에 노랗게 핀 국화꽃에 물을 주고 있는 장면이 그려졌다. 한낮에 꽃이 핀 화분에 물을 줄 수 있는 삶이란 단순해 보이지만 그대로 살다가는 평생 해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회사라는 쳇바퀴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의 기억은 대학원 때였다. 학교는 아무래도 제도가 있는 기관이기에 단순히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 이외에 요구하는 것이 많은 곳이다. 예술가가 되려고 간 학교에서 쓸데없이 온종일 앉아있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인내심이 임계점에 다다랐을 무렵, 학기말에 늘 있는 리뷰 미팅에서 나는 폭발해 버렸다. 속에 있는 말을 잘 꺼내지 못하는 성격에 말을 빙빙 돌리면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집요한 학교 교수들이 자꾸 내 안에 있는 말들을 꺼내려 점점 옥죄어 왔다. 결국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I have to look at the sky and trees!(나는 하늘과 나무를 바라봐야 하는 예술가라고요!)"라며 내 불만족스러운 감정을 폭발시키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들도 한때는 예술가를 꿈꾸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관념에 치우친 예술가가 되기 싫었다. 햇살도 못 느끼는 관념에만 사로잡힌 예술가가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나는 이후 열이 받아서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햇살 아래 누워서 실컷 하늘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모두 다 내 춤이 되었다.


햇살을 바라보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일들은 덜어내며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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