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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Aug 09. 2024

들어오라고 하니까 들어갔지!

나처럼 살면 호구가 된다

무더운 날씨에 멍한 에어컨 공기를 하루종일 쐬고 있기가 힘들어 푸르고 풍성한 바닷물을 보고 싶었다. 마침 동생과 엄마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대천 해수욕장에 가서 조개구이를 먹고 오기로 했다. 식당을 나서면서 동생이 문득 왜 이 식당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들어오라고 하니까 들어갔지!"라고 말했다. 동생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러니까 내가 호구가 되는 거라고 말했다.


온풍기를 틀어놓은 듯한 열기에 바닷가 앞쪽의 거리에도 한낮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점심때가 지난 상가들의 주차장은 텅텅 비었고, 손님 없는 가게들은 대낮에도 휘황찬란한 전등을 모두 켜고 에어컨 냉기가 새어나갈까 문은 꼭 닫은 채 다들 낮잠을 자거나, 권태로운 오후를 견디며 침묵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상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 공영주차장이 있었지만, 무더운 날씨도 그렇고 걷기를 싫어하는 엄마 때문에 주차금지 표지판을 빽빽이 세워 놓은 골목의 빈자리를 탐색하며 누군가의 차가 방금 빠져나간 자리에 차를 대고 골목을 지나 상가들의 앞쪽으로 가려는 중이었다. 거동이 느린 엄마와 주차를 마무리하는 동생을 뒤로하고 나 먼저 바닷가로 향하는 길을 걸어가는 중이었다.


바닷가가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주차한 곳 앞에  바로 있는 한 식당의 외부 주차장에 비쩍 마른 채 새까맣게 탄 얼굴로 앉아있던 중년의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식당으로 들어오라며 나를 따라왔다. 나는 좀 돌아보려고 한다고 작게 한 마디 건네었지만, 아저씨는 자신의 식당을 돌아 출입문까지 나를 졸졸 쫓아 유인하며 열심히 식당의 메뉴와 서비스를 설명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마치 프레젠테이션을 하듯이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나도 충분히 보고 읽을 수 있는 현수막의 사진들과 문구들을 가리키며, 서비스로 이것도 주고 저것도 준다고 매우 열정적으로 설명을 했다. 텅 빈 실내와 뜨거운 날씨 비쩍 마르고 새까맣게 탄 아저씨의 열심에 다른 식당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조차 민망하고, 뭔가 여태 열심히 설명한 그의 성의를 외면하는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그냥 문을 열어주는 대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동생과 엄마는 잠시 후 나를 따라 식당에 들어와 앉았다. 손님이 없는 식당에서 갑자기 서너 명의 직원들이 재빨리 일어나 서빙을 시작했고, 금방 켜진 불 위로 서로 질세라 벌어지는 조개들을 타지 않게 먹어대느라 우리는 별 대화를 할 여유가 없었다. 굳이 있었다면 "이거 탄다, 빨리 먹어라"였다.


아저씨는 현수막 사진에 나온 서비스 메뉴 중 두 가지는 주지 않았던 것 같지만, 텅 빈 식당의 고뇌가 느껴지는 것 같아 숙연한 마음으로 나온 음식을 열심히 남기지 않고 먹는 데 열중했다. 나는 속으로 아무도 없는 대낮에 켜놓은 에어컨과 수많은 전등의 전기세, 아무도 없는 시간에 앉아 있는 종업원들의 쌓이는 인건비 등을 생각하며, 마치 내 사업체의 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고 '남걱정'이 되었다. 무한리필이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미안해서 조개를 더 시켜 먹기가 어려웠다. 조개는 세 가지 종류가 나왔는데 작은 조개들은 까먹기가 귀찮았고 왠지 큰 걸 달라고 하긴 미안했는데, 큰 거만 더 달라고 주문을 하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조심히 종업원을 불렀다. 종업원 남자는 동남아인처럼 보였는데, 거기에서 또 그가 남의 나라에 와서 더위에 밥을 잘 먹는지, 주인한테 핀잔이나 하대를 받는 건 아닌지, 너무나 일을 많이 시켜서 힘든 건 아닌지, 월급은 잘 받고 있는지, 손님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고 혼나고 있는 건 아닌지, 내 동생 같고, 식구 같고, 누군가의 아들 같아서 불러서 시켜 먹기도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착하게 생긴 동남아 청년 종업원에게 나는 '동죽'이니 '가리비'이니 그런 말은 잘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다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를 굳이 쓰레기통에서 찾아들고, "작은 거 말고, 이거 동그랗고 큰 거로만 조금 더 주세요"라고 손가락으로 큰 동그라미를 만들어가며 말했다. 그 종업원은 송아지처럼 착하게 생긴 눈을 끔뻑거리며 알았다고 해놓고서는 반은 작은 조개로 뒤덮인 쟁반을 가지고 왔다. 나는 '아, 역시 못 알아 들었구나, 저래서 주인아저씨한테 많이 혼나겠구나'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맙다고 받아 들었는데, 살아있는 조개가 그대로 버려질까 봐 동생과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 꾸역꾸역 끝까지 먹어치워 버렸다.


겨우 세 사람이 앉아있는 한 테이블의 매출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종업원들과, 전기세와, 음식들 생각에 배는 부르지만 조금이라도 영수증 금액을 늘려줘야 하지 않을까 해서 굳이 안 먹어도 되는 칼국수까지 시켜서 먹고(나는 칼국수를 좋아하지 않지만, 다행히 동생과 엄마는 칼국수를 좋아한다) 식당을 나왔다. 다른 곳은 가보지 않아 모르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냥 머릿속에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조개구이와 칼국수를 잘 먹고 나온 것 같았다. 그제야 거리에 있는 다른 커피숍과 식당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간 식당보다 더 크고, 인테리어가 세련되고, 온갖 메뉴 사진이 행인을 유혹하는 곳이 많았다. 동생은 원래 가려던 곳이 있었던 모양이었으나, 그냥 나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제야 동생이 물었다. "그런데 애초에 저 식당은 어떻게 들어간 거야?" 뭘 어떻게 들어가나, 밖에 있던 아저씨가 들어오라고 하니까 들어간 거지! 동생은 어이없어하고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동생은 밖에 저렇게 많고 좋은 식당이 있는데 한 바퀴 돌아보고 결정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고 했지만, 조개구이가 대부분 그렇고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불평은 하지 않았다. 동생은 내가 그러니까 호구가 되는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이를 반박했다.


나는 내가 많은 경우에 소위 세상의 '호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노력을 해도 잘 고쳐지지는 않는다. 물론 큰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더 영악하게 깎거나 엄청 가성비 있는 것을 골라내지 못하는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를 호구로 본 그런 사람들의 심성이 고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식당에 들어간 이유는 아저씨가 오라고 해서 가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따라 들어간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럴 때 뭐라고 하고 들어가지 않을지 궁금하다. 나는 둘러댈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굳이 들어가지 않아야 할 이유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숨이 막힐 듯 뜨거운 날씨에 다른 식당들은 다들 문을 쳐 닫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피신해 있는데, 한 명의 손님을 더 찾겠다고 굳이 밖에 나와서 영업을 하고 열심히 설명을 하는 그 성의가 감동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또한 그 식당의 주인이었다. 돈 주고 시켜도 안 할 일을 식당 주인이 직접 나와 무료하고 텅 빈 주차장을 지키고 앉아 한 명의 손님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그의 열심이 좋아 보였다. 나라면 절대로 하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부분을 강조해서 동생과 엄마에게 설명을 했다. 그의 노력이 다른 식당과 차별화된 것이라고 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들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해변가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차를 주차한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식당 주인은 텅 비고 넓은 주차장 한편에 낡고 불편하게 생긴 나무 의자를 지키고 아까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안에서도 훤히 밖이 들여다보이는 시원한 식당 안에서 있지 않고 왜 밖에 저렇게 나와 있어야 하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치열한 생업의 현장에서 열심히 분투하고 있는 그가 대단해 보여서 그를 지나치면서 응원의 한 마디를 건네고 싶었다. 그는 아까와는 다르게 우리가 지나가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나는 일부러 다가가서 "식사 아주 맛있게 잘했어요"라고 웃으며 성의 있게 말을 건넸다. 그는 좀 전과는 달리 대단히 반갑거나 열심히 나의 말에 반응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의외'라거나, 그의 기억에서는 이미 몇 시간 전에 자신의 식당에 찾아온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은 지워진 지 오래인 듯 보였다.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아니, 모르겠다, 고개를 끄덕였는지, 무슨 말을 건넸는지. 아주 무표정한 건 아니었지만, 그 표정이 미소였는지, 반가움이었는지, 뭐라고 말을 건넸다면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그의 표정이 어땠는지 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생은 주차장을 바로 지나쳐 돌아오는 내게 "기억도 못할걸? 맞지? 기억도 못했지?"이라고 건네며 비웃었고, 엄마는 그가 영업을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그의 텅 빈 주차장에 누가 차를 세우지 못하게 하려고 지독하게 지켜서 있는 거'라고 말했다. 동생은 거기에 대고 한 마디 덧붙였다. "그 식당 3층이 전부 식당인 거 같은데, 그 옆에 있는 식당도 이름만 다르지 같은 사장의 식당인 거 같은데? 봐봐! 아까 그 종업원 아줌마가 그 옆에 식당에서도 일하잖아. 같은 식당이야. 그 사장 부자야!" 동생은 나를 보고 호구라고 계속 낄낄거렸다.


그러게, 내가 호구였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감성으로 대한다는 게 세상에서는 호구가 된다는 뜻일까? 나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아주 좋은 사람들과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가 다른 이상한 세계로 넘어온 듯하다. 이전에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감성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친구 말마따나 이제껏 내가 사기를 크게 당하지 않은 것이 마치 신이 나를 보호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하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는 사람들 보기를 돌같이 하고, 남걱정은 하지 말고 내 걱정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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