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은 어렵다. 그러기에 그 어떤 창작도 존중한다. 거기에 무언가 토를 단다는 것은 참 어렵고 힘든 일이다. 누군가는 해내고, 발표했고, 하고자 하는 걸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존경심을 표하고자 한다. 물론 졸작도 있지만, 그것은 오직 결과물에 아무런 열정이 보이지 않았을 때에나 가능한 악평이다. 모든 작품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이런 것을 기본으로 하고 관객으로서 조심스러운 후기를 남겨보고자 한다. 혹여라도 감독은 이 글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경험과 일상의 기록에 국한된 글이기 때문이며 좋고 나쁨에 관한 것은 아니나, 내 언어에는 좋은 필터가 달려있지 않으므로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창작자로서 나의 창작과정을 되돌아보기 위함도 있다.
이 작품엔 노고와 애씀이 보였고, 영화제작의 기술에 대해서는 숙달한 사람의 작품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직 '영화는 만들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내게도 늘 상기하는 문구이지만, 언어를 배울 때를 예로 들면, '평생 문법만 디립다 하고, 평생 글 하나 못쓰는 사람'처럼 되는 것을 매우 지양하는 바이다. 작품을 할 때 배운 기술이나 작법 등에만 치중하면 평생을 문법만 하다가 글 하나는커녕 한 마디의 생각도 상대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다수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되어버린다. 차라리 단어 두 개 아는 것으로도 최대한 활용하여 뭔가를 표현해 내는 것까지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바로 어젯밤 영화를 보았음에도 사실 희한하게도 기억이 나는 것이 별로 없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너무나 많은 것을 하나의 영화 속에 다 집어넣으려 해서 영화가 배탈이 날 지경인 느낌이 들었다. 배탈이 나서 토한 토사물 속에 아직 소화되지 않은 색색의 갖가지 출처가 불분명한 음식물의 조각들을 보면서 그 음식의 재료에 대해 추론을 해야만 하는 과정을 힘겹게 겪어야 한다. 한 마디로 '흥을 돋우는 (entertaining)' 대중적 재미는 없는 영화이다. 그렇다고 '예술성이 집중한 독립영화일까'라고 생각해 본다면 그것도 아닌 듯하다. 뭔가 나름 많은 고민과 실험을 하려고 했던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장점들이 될만한 요소를 너무 많이 가지고 헤매다가 이를 많이 쳐내지 못해 생긴 결과일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릴 때에 색을 너무 많이 섞다 보면 색이 깊고 세련되고 진중해지기보다는 그냥 튀튀 한 물질로 변해버리는 때가 있는데, 무의식적으로 남한테 잘 보이려 할 때나 아카데믹한 배움의 과정에 너무 치중할 때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토사물과 전쟁과 고통을 작품화했음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잔잔하고 마음이 평온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영상미도 줄거리의 감동도, 어쩌면 의도했을지 모를 추상적인 요소의 활용이라는 영악함도 찾기가 힘들었다. 아주 많은 것들 중에서 강한 것들만 모아서 호기롭게 보여주려 했는지, 강한 선들이 짧게 짧게 콜라주 된 그림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시각적으로 아름답거나 흥미로운 뭐가 전달되어야 영화라는 시각작품을 보고 있을 만한데 시각적으로 괴롭거나 힘든 톤과 장면으로 연이어 전개가 되었다. 기괴함에도 아름다움이 있고 고통에도 아름다움이 있는데, 자극을 억지로 만들려고 해서 튀튀하기만 한 느낌이랄까. 꼭 피상적으로 아름다워야 할 이유는 없다 하더라도, 그럼 관객으로서 그런 시각적 자극을 수용하면서 무엇을 기대하고 얻어가야 하는 것일까? 미학적인 문구로 얘기하자면 작품에서 어떤 '미적 감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작품을 보러 가면서 예상할 수 있는 기대치이다. 디스토피아적 현시대에서 이 작품의 음울한 디스토피아적 장면연출을 보고 그저 우울하고 허무하고 무기력함만을 느끼며 2시간가량을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 이 세상에서 말이다.
연기자의 선별과 촬영방식, 연기에도 이런 감독의 취향이 드러나는 듯하다. 뭔가 과하게 굵고 강해서 연기자들의 외모나 연기에서 이들의 개성이 영화에 수긍할만한 참신한 기괴함으로 드러나기보다 시각적으로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실제로 기괴했다. 어떤 것이 영화 속에서 기괴해 보여야지, 실제로 기괴한 것을 굳이 보러 가고 싶지는 않다. 속된 말로, 정말 쓰고 싶지 않은 단어로 미안하게 하는 얘기이지만, '안 그래도 못생긴 연기자들을 데려다가, 더 못생겨 보이게 만들었다'라는 느낌이 강했다. 연기도 강약이 있어야 몰입이 되는데 좋고 강한 것만 나열된 느낌이라, 실제로 배우들의 연기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수술실의 의사 역할을 맡은 어색한 여의사 엑스트라의 대사만 빼고) 연기를 잘한다기보다는 뭔가 보기가 민망하고 거북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기괴함'을 콘셉트로 가져가려는 의도였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어떤 '아름다움(꼭 평준화된 것이 아닐지라도)'이 연기자의 연기나 장면의 영상미를 통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을 왜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를 느낌이 계속 들었다.
나는 공포물을 좋아하는데, 공포스럽다기보다는 그냥 보기 싫다는 느낌이 더 들었다. 그래도 돈을 냈으니 계속 보고 있었는데 시간이 가지 않고 영화 시작 시간인 7시 10분이 그대로 멈춰 있는 듯했다. 다 보고 난 느낌은, 영화가 돈과 노력은 들였고, 좋은 세트나 제작 기술들은 나름 제대로 갖추고 있었는데 재미있거나 감동이 있다거나 미적 감흥이 있다던가 그런 건 거의 느끼지 못했고 이 감독은 왜 이런 어둡기만 한 장면들을 구성하였을까, 본인은 영화를 보면서 어떤 행복을 어디에서 느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영화를 보는 사람이 뭔가 긍정적인 일면을 어디에선가 하나라도 얻어가야 하지 않을까. 눈요기라든지, 재미있는 줄거리라든지, 인상적인 장면이라든지, 사운드트랙이라든지, 깊게 생각할 거리라든지 말이다. 감독이 소위 말하는 INTJ의 성향이나 공대생 혹은 이과생적 기질이 강한 사람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논리를 컴퓨터 프로그래밍하듯이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각각의 요소는 공식으로 떨어지는데 뭔가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 같은 느낌'이랄까.
아,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걸 다 알고 있는 사람들도 역시 창작은 힘들다는 것이다. 남의 작품을 보면서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창작자들에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