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기 위한, 또는 팔리는 작품
제목을 '아-트페어'란 무엇인가?로 썼지만, 내 글의 목적은 아트페어에 대한 백과사전적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정보는 굳이 내가 쓰지 않아도 책자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백과사전에는 내가 처음 경험하는 특정 아트페어에 대한 주관적 인상과 같은 단원은 없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는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이를 잘 안다고 해도, 그건 내 삶이 아니기에 내가 경험한 첫 아트페어에 대해 쓰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아트를 '아-트'라고 표현한 이유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할 때 순수예술을 그렇게 늘려서 발음을 하면서 희화화시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뉘앙스를 단어에 담았을 뿐이다. 순수예술은 허망할 정도로 현실에선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만큼 이를 추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예술의 길에 들어선 많은 자들은 스스로도 매 순간 수만 번씩 '그만둘까'의 고민을 되풀이하며 자조적인 기분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때 나와 지인들끼리는 저렇게 단어 가운데를 늘려서 '아-트'라고 발음을 하곤 한다.
페어는 말 그대로 작품을 파는 시장과도 같다. 팔기 위해 작품을 내어놓는 곳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팔리기 위한 작품과 안 팔리기 위한 작품이 다른가? '팔릴 것 같은' 작품이라는 말을 누군가 썼을 때, 직관적으로 그런 작품이 어떠해야 할 것 같은 이미지를 나도 모르게 떠올리게 된다. 이런 문구를 예술가나 관련자들 사이에서 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들어왔기도 하다. '이런 작품이 잘 팔릴 것 같아' 혹은, '이렇게 그리면 잘 팔릴 것 같아'라는 그런 문장들 말이다. 그런데 모두가 다른 사람들 개개의 취향의 호불호와 희소성이 중요한 예술작품에 있어 정말 그러한 명확한 기준이 존재할까? 그런 걸 맞출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능력일 것이다. 내가 만일 구매자라면, 나는 사람들이 '팔릴 것 같은' 작품이라고 대략 짐작하는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정말 창의적이고 독특한 작품과 작가관이 베여있는 작품을 구매할 것 같다. 나의 취향은 나름 분명한 편이기 때문이다.
아트페어에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전체적으로 색감이나 소재, 작법 등에서 느껴지는 비슷한 분위기 같은 게 있다. 대놓고 '나 팔릴 거 같이 생겼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작품들도 아트페어들마다 꼭 보인다. 예를 들면, 동그란 항아리 같은 건 어디에 가나 많이 있는데, 원조가 어디에 있기는 한 것인지, 우후죽순 대량생산되는 것 같은 그것들을 작품이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찾으니 많이 내어놓는 것일 테지만, 나는 그것이 있는 부스는 재빨리 지나치게 된다. 심지어는 괜히 '꼴도 보기 싫은(그 작품들과 만든 작가들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냥 그 소재를 매일 보는 내 느낌이 그렇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내가 달팽이를 소재로 작품을 많이 할 때에 나의 모친은 한동안 '달팽이'란 단어가 듣기도 싫다고 했는데, 달팽이가 꼭 싫어서 그 얘기를 한 것이 아닌 것과 동일한 뉘앙스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작가로서 나를 작품 삼아 브랜딩을 하는 요즘으로서는, 내 이름을 비슷하게 듣기 싫어하는 중이다. 내가 싫은 게 아니라 그 자주 듣는 브랜드화된 이름이 그냥 싫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게 그냥 혐오처럼 느껴지는 '싫은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요즘 문해력이 없는 독자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불필요한 해석을 이렇게 달게 된다. 피곤하긴 하지만, 더 피곤하기 전에 미리 방지할 차원에서 친절히 해석까지 달아서 글을 쓰는 중이다. 나보고 가끔 글이 길다거나, 말이 많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그렇게 된 것은 간단히 말하면 어렵다고 하거나 전혀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을 위한 배려에 설명을 친절히 붙이다 보니 말과 글이 길어진 탓도 있다. 나도 길게 쓰기 귀찮고 피곤하니 사람들이 제발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는 버릇을 들여서 문맥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문해력이 나아졌으면 좋겠다. 온갖 학위들은 다 따는 나라에서 기본 문해력도 안되니 답답한 사회이다. 아니면 아예 아무런 토도 달지 않거나. 모르면 차라리 질문을 하면 되는데,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논리도 없는 아무 말이나 써대면서 '아무 말 대잔치'로 상대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무지한 걸 자랑으로 여기거나 알량한 지식을 우기는 겸손하지 못한 사람들을 매우 싫어한다. 세상 살면서 내 글과 삶이 그런 사람들에게는 가급적 닿지 않으면 좋겠다. 서로 피곤하다)' 생각도 든다. 많은 참가 갤러리들이 돈을 투자하여, 짧은 페어 기간에 당장 판매가 될 것 같은 것에 급급하게 작품을 선별하고 보여주어야 하니 다수가 찾을 것 같은 것들을 내어다 놓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도 내가 작품을 선별할 때 내 작업실에서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거나 구매 의사를 표현한 것들을 고려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참여 갤러리가 팔릴 만한 작품을 가지고 있는 여러 작가들 중 하나로 나를 선별한 것처럼, 나도 내게 할당된 부스의 전시벽면에 걸릴 작품을 선별하면서 단기간에 팔릴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고려하게 된다. 팔려고 만든 작품도 아니고, 꼭 팔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도 굳이 아트페어라는 장에서 이해와 공감의 난이도가 높은 작품들을 내어놓아야 할까 스스로 질문했다. 이때 나는 매우 힘겨운 갈등을 겪었다. 시작은 그간 작품을 알리는 일을 게을리해서 첫 아트페어이니만큼 예술성에 비중을 두어 나라는 작가를 홍보하고 싶었던 게 컸는데, 대중적으로 어필이 될만한 작품들로만 선별했을 때 나의 예술적 역량을 그 정도로만 평가받는 게 아닌지, 그렇다고 예술적 참신성에 집중한 난해한 작품을 괜히 가져가서 내 돈 들여 남한테 영감만 주고 오는, 소위, 남 좋은 일만 하고 오는 것인지 등에 대한 갈등이었다. 차라리 개인전이고 공간이 넉넉하게 부여되었다면 덜 힘들었을 텐데, 제한된 공간 안에 보는 이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는 동시에, 일부는 팔려서 전시비용이라도 충당하는 방식을 찾아내야 하는 시험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경험이 많은 갤러리 측에 전화를 해서 의견을 물어보았고, 여분의 작품들을 가져와서 현장의 느낌을 보면서 선별해 보자는 것으로 편히 결론을 지었다. 하긴, 공간에 따라 작품이 달라 보인다. 작품이 놓이는 공간도 작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