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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페어란 무엇인가? (3)

아트페어 참가과정과 내부 사정

by 이영선

아트페어를 한 번쯤 나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어디든 작품들이 사람들이 많은 곳에 보이기만 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주된 이유였다. 개인전도 오픈스튜디오도 해보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전시관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내 스튜디오에도 포교나 영업활동, 자신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필요할 때 어디서 선한 얼굴을 하고 거의 빈손으로 들어와 내 시간을 잡아먹을 때에는 사람들이 한 번 오면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죽치고 앉아 있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정작 오라고 문을 활짝 열어 두는 오픈스튜디오 전시 때에는 간식거리를 펼쳐 놓아도 문밖에 거의 아무도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지방에 있는 미술관은 시설은 좋고 관람객도 꽤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전시가 끝나면 추후 관련자들과의 네트워킹 같은 게 이루어지기 힘든 지역사회의 한계가 있었다. 전시는 어디에다 내놓아도 좋다고 생각했을 만큼 최선을 다했으나, 이후 금세 잊히는 무엇이었다. 뭔가 공허하고 이건 아닌데 싶었다.


혹시 분주한 서울 거리는 다를까 하여 밖에 행인들이 북적이는 안국역 근처에서 전시를 했을 때에도, 같은 건물 내에 유리로 안이 들여다 보이는 갤러리 출입구 바로 앞에 있는 허름하고 조그만 일본 라면 가게에는 젊은 인파들이 줄을 지어 얼마 되지도 않는 그 라면 한 그릇 먹겠다고 서 있으면서, 전시관 안으로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라면 가게의 계란이 전시관 출입보다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한 번 가봤는데, 먹다가 남겼다. 심지어는 내가 좋아하는 계란까지도. 일본 라면에 떠 있는 계란은 난생처음 보는 색으로 이상하게 생긴 게 먹기가 께름칙했다. 대신, 물론 관계자들의 유입과 질적인 피드백과 대화, 유투버의 자발적 방문은 있었다. 다양한 격려와 희망고문 같은 칭찬들은 있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풍요 속의 빈곤과 같은 일이 나한테만 일어나는 일인가 싶었다. 며칠 전 비가 오던 날, 나름 잘 알려진 인사동 미술만평가이자 컬렉터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갤러리 공간에 불쑥 들러 얘기를 나눠 본 결과, 많은 경우 길에만 사람들이 북적이지, 정작 전시관 안에서 작품을 들여다보는 나 같은 사람들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했다. 실제로 내가 앉아있던 운치 넘치던 토요일 오후 몇 시간 동안에도, 그 공간에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혹자가 또 아는 척을 하면서 나를 초짜 취급하며 가르치려 할까 봐 미리 부연설명을 하자면, 아, 참 피곤한 세상이다, 나도 어떤 곳들의 어떤 사람들의 작품에 인파가 북적이는지 대략 안다. 순진무구한 바보 초짜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다. 선생이 되고 싶어 한이 맺힌 사람들이 많은지, 조금이라도 빌미를 보이면 머리 위로 바로 올라가 가르치며 선생질하려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안다고, 알아!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내가 모르겠냐고! 대중이 어디로 쏠리는지 몰라서 쓰는 글이 아니다. 돈 있는 개인 기업의 멋진 전시관엔 대부분 예술적이면서도 돈도 되는 외국작가를 섭외하려 할 것이고-그게 쉽고, 입장료도 두둑이 받아 적자도 덜하니까, 나 같아도 그렇게 운영할 테니까. 명품 태그 떼어버리면 그게 왜 명품인지도 분간 못하는 대다수 일반 대중들은 대부분 작품은 볼 줄 모르고 뭘 좋아하는지 취향도 불분명해서 예술보다는 그들 귀에 솔깃한 경력과 주변 추천으로 투자가치나 부의 과시나 돈 많은 자의 취미 등으로 작품을 소비할 것이고. 돈도 안되고 생소하기도 한 아방가르드한 예술가들의 작품은 그나마 학계나 예술계의 인맥과 암묵의 지원 없이는 웬만하면 작품을 내보일 곳도 없는 사각지대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걸. 내가 모르겠냐고! 그렇지만, 예술의 발전과 그다음의 것은 늘 이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은근과 끈기로 가득 찬 열정적인 삶에서 나온다는 것도 좀 알았으면 한다. 여기서 글을 멈추고 싶은 생각이 나지만, 나를 위해 계속 이어 가련다. 읽기 싫으면 안 읽으면 된다.)


아트페어를 나가려고 해도, 개인이 나가는 경우는 드물고 갤러리를 통해서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갤러리와 작가의 성향도 맞아야 하는데, 갤러리라고 해서 무슨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나 자격이 있거나 뭐 대단한 순수 예술적 사명을 띤 예술가의 구세주의 역할을 하는 곳은 매우 드물고, 공공 미술관이 아닌 이상 거래가 가능한, 그리고 다른 것보다 수월한 평면 회화 작품을 팔아 이문을 남기는 걸 주업으로 하는, 그나마 본인이 예술을 전공했거나 예술을 좋아하는 1인 영세 사업체인 경우가 많다. 이문을 남긴다고 하긴 했지만, 이문을 남기는 건 극히 드물고, 대부분 고급 컬렉터와의 사적인 인맥이 없이는 이문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일 것이다. 내 작업실도 공간 자체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갤러리로 사업자가 등록되어 있기는 하다. 한국에서는 뭐든 내가 직접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서 그렇게 해 놓기는 했으나,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없어서 내 작품의 연간 오픈스튜디오 전시활동 이외에 일반적인 갤러리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고 있지 않다. 대관문의나 전시의뢰가 오기는 하지만, 대관으로도 수익이 남지 않고, 갤러리 운영자의 입장으로 의뢰가 들어온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굳이 내 공간을 내주면서까지 모험을 감수할 만한 흥미로운 창의성이나 소위 '팔리기라도 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 작가라면 당연히 내 공간에서는 전시를 안 할 것이다 (나는 나름 여러 다른 관점과 입장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도 안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말이다.


오기가 생겨서 해외 아트페어를 알아보기도 했는데, 페어 자체의 참가비도 매우 높았고, 작품의 운송비 및 체류비 등을 고려할 때, 십 원짜리 작품을 팔려고 천 원짜리 월세를 내고 자리를 임대하는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소위 대형 해외 아트페어는 현지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고려해 볼 만하나, 외국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국제적인 인지도와 가격이 높게 형성된 그런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자리였다. 나는 나중에는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내 드로잉이 뭐라고 당장 그것으로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는 목적보다는, 그간 쌓인 작품들을 그나마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누군가 원한다면 적정한 가격을 받고 팔 수 있는 자리가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보다가 아트페어를 알아보게 된 것이었다. 나는 다원창작예술가라는 커다란 스펙트럼으로 활동을 하는 창작자이지, 그림만 팔아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화가가 아니다. 물론 화가가 아닌 것도 아니지만, 내 작품의 정체성은 그것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그냥 내 작품을 내가 컬렉팅 하면서 나 혼자나 잘 즐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트페어에 대한 생각을 접고 있었다. 실제로 나는 내 작품이 좋으니, 내가 좋아하는 내 작품을 굳이 남에게 컬렉팅 하도록 만드는 것보다 그 좋은 거 내가 컬렉팅을 하면, 누구보다 멋진 작품을 잔뜩 소유하고 있는 컬렉터의 대열에도 포함되는 것이기도 한 것 아닌가. 그래서 나도 스스로 내 작품의 컬렉터라고 부르고 있다. 내 작품들이 시장에 있으면 나는 나의 작품들을 사고 싶어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 아닌가. 작품이 안 팔린다고 목매는 작가분들은 뭐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거 안 팔아도 먹고살기 때문에, 오히려 저렴한 작품비에 엄청난 작품들을 컬렉팅 하고 있는 셈 치면, 기분이 정말 좋다. 갖고 실컷 즐기면 그만이다. 내 작품을 두고 팔리고 안 팔리고의 기준으로 삶이 좌우된다면, 그건 정말 기분 나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 아닌가.


그러던 중 우연히 내 작업실을 방문한 두 중견작가 (나름 국내에서 인지도가 있기도 하고 어느 정도 가격이 형성되어 작품이 팔려 생계를 유지하는)가 옮길 곳도 마땅치 않고 일부는 망했다고 생각해서 젯소칠로 지워서 다른 걸 그리려고 했던 캔버스를 하나씩 꺼내보더니 국내 아트페어를 나가보면 어떻겠냐고 본인이 참여하는 갤러리에 추천을 해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장 아트페어 참가에 갤러리도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아직 시장성이 검증되지 (검증이란 말을 매우 싫어하지만) 않은 작가를 초대해서 부스의 한편을 내어줄 모험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곳은 많이 없다. 현실적인 것을 들여다보면, 작품이 안 팔려도 자신의 갤러리의 입지에 도움이 되는 시장성 있는 작가들은 오히려 돈을 투자해서 초대를 해서라도 이들을 아트페어에 참가시키고, 시장에 처음인 신진작가들은 부스비용을 일부 부담해서 갤러리는 투자비용의 부담을 줄이면서, 신진작가는 아트페어 참가기회를 얻는 필요충분조건이 형성된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나는 신진작가는 아니다. 드로잉 작품으로만 굳이 미술시장이라는 좁은 영역에 진입하려니, 마치 눈이 여러 개 달린 사람들 사이에 있다가 눈이 하나인 사람들의 동네로 진입하려는 것처럼 갑자기 이들의 눈에 내가 신진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작품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고 아무도 관람객의 모든 취향의 평균치를 장담할 수 없으므로 작품력의 객관적인 판단은 매우 모호하고 어려운 부분이다. 그런 경우 사회 어느 분야나 그렇듯이 경륜이 있는 작가들의 추천으로 작가를 섭외하기도 하는 것 같다. 새로운 작품들은 계속 유입되어야 하긴 하고, 갤러리 관장 혼자의 안목으로만 이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 인지도가 형성된 초대 작가들의 안목과 인지도를 신뢰하는 것이다. 나야 복잡한 지원절차 등을 통하지 않는 데다가, 갤러리나 나나 이 작가들을 신뢰할 수 있으므로 상대에 대한 서로 불필요한 검증과정도 생략할 수 있고, 아트페어의 기회를 한 번 가져보고 싶다는 그간의 생각에 이미 작품도 준비되어 있는 상황이라 흔쾌히 참가가 진행되었다.


아트페어 참가 결정 후에도 이런 절차가 생소해서 맞는가 싶어 지인들에게 문의를 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어떤 기사에서는 갤러리가 참가 작가에게 부스 비용 일부를 부담시키는 게 이치에 어긋나는 것처럼 소개한 것도 있었으나, 알아본 결과 미술계 내부에서는 이런 게 이미 거의 관행처럼 되어버린 듯했다. 그들도 결국 돈으로 지탱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는 비용 대비 가성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고, 그나마 다른 갤러리에서 제시한 비용보다는 저렴한 편이었다. 한 번쯤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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