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구별해야 하는 시대
살면서 내가, 혹은 타인이 인간인지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때가 도래한 듯하다. 일부 웹사이트에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넣는 과정에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를 확인하기 위해 그림을 선택하거나 문자를 넣는 인증과정이 그리 심각한지 모르고 있었는데, 이젠 현실 세상에서도 내가 만나는, 겉은 사람같이 생긴 상대가 인간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인증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이전에는 나 스스로 내가 인간인 이유와 타인을 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지 굳이 의식하지 않고 살아도 되었는데, 이제는 나 조차도 매 순간 내가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는지 자각해야 하는 때인 듯하다.
최근 내 브런치스토리 글에 '좋아요'와 함께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소통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이렇게 귀중한 콘텐츠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과 노트를 기대하겠습니다. 이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창의적인 선택에 영감을 준 것은 무엇인가요? 이 글을 읽고 나서... 이 글과 관련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으신가요? 공유해 주세요.
답글을 달려고 했는데, 직관적으로 이걸 ai가 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ai한테 네 친구들이 쓴 거 같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 같단다. 프로필을 보니 별 설명도 없다. 바로 차단하고 신고했다. 어떤 이유로 ai 같은 댓글을 달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에요'라는 영혼 없이 친절해 보이는 가면을 쓴 얼굴을 하고, 속을 대체로 알 수 없는, 혹은 온라인상의 여기저기 출몰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다니는, 좀비 같은 사람들의 인간관계에 신물이 나는데, 그래도 조금은 진솔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듯한 브런치스토리 안에도 그런 댓글이 출몰한다는 게 씁쓸하다. 영혼 없는 글은 악플보다도 무섭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떠나버린, 마치 알맹이가 빠져버린 땅콩 껍데기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일 아닌가. 브런치스토리에 있는 글을 몽땅 보따리에 싸서, 어디로 달아나고 싶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수많은 내 글들을 보따리에 싸서 서랍에 넣어두고 있는 중이다) 그 좀비들이 영혼 없는 댓글을 다는 것뿐만 아니라, 내 글을 빨아먹고, 공장처럼 복제해서 여기저기 댓글로 양산하거나 자신의 글처럼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상상만으로도 싫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아니면 상대한테 미안한 게 되겠지만, 아니, 잠깐! 이게 굳이 미안한 일인가? 안 미안하다. 나는 이런 정제당 (설탕 혹은 인공감미료)처럼 생긴, 자기를 숨기는 듯한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글은 건물에 붙어있는 화장실 안내 표지판이거나, 변기마다 붙어 있는 '물을 내리세요'라고 하는 글과 다르지 않다. 익명이라도 그 아래 진정성과 인간적인 개별성이 필요하다. 이런 작품도, 이런 글도, 이런 사람들도 혐오한다. 형식적이고, 내 글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언급도 없고,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칭찬에, 감정표현도 너무 정제되어 있는, 브런치스토리에 올려진 모든 글에 달아도 다 해당되는 댓글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상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생각 없는 '좋아요' 혹은 '좋아요 품앗이'에서부터, 미리 짜고 치는 마케팅 회사의 블로그 포스팅과 체험단들의 리뷰, 원문을 읽지도 않고 관심을 유도하려 자극적인 자기 얘기만 하는 귀와 눈은 없고 입과 손가락만 달린 문해력 부재자들,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온라인 계정에 몰려가서 마찬가지로 뭐가 좋은지에 대한 언급도 없이 '좋아요', '멋져요'를 남기며 이들 옆에 붙어있으려는 자들, 으악, 무섭다, 다들 좀비들이구나, 달아나야지!
PS: 나는 세상 인간 같은 내 글의 온갖 다양한 감정과 나 같음을 사랑한다. 이것이 앞으로는 더 존귀해질 세상이 온 것 같다. 인류가 이전까지는 정제되고 완벽한 무엇이 되려 달려왔다면, 이제는 '인간'의 인간다움, 불완전성, 감정의 다양한 표현, 직관, 희로애락이 희소가치가 되는 사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입니다'. 정제되지 않음으로써 나는 삶의 살아있는 생명력을 잃지 않은 듯하다. 고로, 나는 자각하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내 작품들이 살아있다고 말하는가 보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내 글과 그림과 춤과 공간을 통해 내 삶의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이미 그걸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많이 사라지고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