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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페어란 무엇인가? (4)

두 아트페어의 현장

by 이영선

아트페어를 처음 참여하는 거라 사전에 많은 정보를 찾아보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마침 호텔아트페어 티켓이 생겨서 이를 미리 참조할 겸 방문했다. 주말의 주차장은 거의 만차라 대기줄이 길었고, 호텔의 좁은 통로와 방 안에는 기이한 냄새들이 뒤섞여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5성급 호텔이라 뭔가 럭셔리한 관람객과 그에 상응하는 품격 있는 큐레이팅을 상상했으나, 실제로는 그다지 럭셔리해 보이지 않는 좁은 방 구석구석에 마찬가지로 그다지 럭셔리해 보이지 않는 작품들이 놓여있는 형상이었다. 참조로 무엇을 '럭셔리'로 볼 것인가는 사람과 문화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다. 객실 자체로만 보면 내 집이 훨씬 더 넓고 편하고 좋아 보였다.


오래전 미국 대학에 다닐 때, 학교 기숙사 방을 다양하게 꾸며놓고 방문객을 맞이하는 오픈하우스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창의력을 비교하자면, 그때 그 기숙사의 행사와 각 방을 점유하고 있는 학생들이 훨씬 더 창의적인 감각이 있던 것으로 보였다. 기숙사 건물은 똑같이 생긴 방이 많이 있는 곳이었지만, 학기 중에만 잠깐 머무는 그곳을 학생들이 기가 막히게 개성을 살려서 꾸미고 있느라, 각 방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에 비하면 호텔 아트페어의 디스플레이 방식은 작품의 가치를 살리기는커녕 마치 시장에 내놓은 생선가게의 좌판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함부로 그렇게 작품이 놓이는 방식이 호텔의 격을 살리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어떤 작가들은 실제로 시장에서 물건을 팔듯이 호객행위로 관람객을 유인하는 것처럼도 들렸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니 그것을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나, 열심히 무언가를 팔려고 시도하는 열정만큼은 대단해 보였다. 붐비는 방문객들 사이에서 제대로 작품을 감상하기도 힘든 공간감과, 이 사람들이 정말 작품구매에 관심이 있어서 오는 사람들인지, 호텔 아트페어를 마치 먹방이나 데이트코스로 생각하며 발도장을 찍으러 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예술을 진지하게 감상하는 격식 있는 그런 자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호텔 주인이라도 그렇게 침구와 방이 외부인의 수많은 먼지 묻은 발자국을 남기는 행사는 굳이 반기지 않을 듯한데, 아마도 그에 상응하는 상당액의 호텔 사용료가 지불된다면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 사용료는 결국은 팔리지 않는 작가들을 대표하는 갤러리나, 일부 작가들이 부담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많은 인파에 비해 복도와 방문은 비좁았으며, 진지한 감상과 작가나 갤러리 측과의 대화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결국 들어가지도 못하는 방문에 발길이 막히고, 덩치 큰 남성 관객의 배낭에 이리저리 치여지는 게 거슬려서 대충 한 바퀴를 돌아 행사의 분위기만 파악하고 다시 정체 중인 고속도로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작품은 시각예술이기에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기 마련인데, 대단한 작품들일지라도 이런 환경에 놓이면 가치가 없게 보이거나, 작품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날 나는 간만의 인파들 가운데에 있던 바람에 몇 년간 걸리지 않던 감기 바이러스에 옮았는지 5일 동안은 지독한 몸살을 앓았던 것 같다.

구매를 목적으로 하거나 새로운 예술을 발견하고자 하는 순수 관람객, 또는 장소를 내주는 호텔 측에게 호텔아트페어라는 행사의 취지와 목적이 각자에게 효과적으로 와닿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관람객으로서 말하자면, 뭔가 모호해서 어떤 목적으로도 다시는 방문할 것 같지 않다. 구매자로서는 그냥 해당 갤러리나 작가의 정보를 사전에 다른 경로로 찾아내어 별도의 만남을 계획할 것 같다. 호텔 이용객으로서도 침구나 객실 내부의 모든 표면에 각종 화학물질에 오염된 물건이 놓이고, 그렇게 많은 인파가 휩쓸어간 손 때 묻은 곳에 몸을 편히 뉘이며 머물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예술가로서는 더더욱 작품이 그렇게 계획 없이 놓이고 작가나 작품에 대한 진지한 감상이 생략되는 호텔 아트페어에는 가지 않을 것 같다. 놀거리가 한정된 특정 집단 문화에서는 어떤 사회적 붐을 일으키며 잠깐 번지는 유행과 같은 놀이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안타까운 건 경제적 희생을 감당하고 있는 취약한 집단이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로 인해 아트페어라는 것에 참여하면서 대단한 긴장감이나 작품들에 대한 너무 높은 기준치를 갖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갖게 된 것은 나름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아트페어 당일 작품들을 내 차에 싣고, 부산으로 직접 출발했다. 서울에 위치한 갤러리에서는 작품을 서울로 보내면 거기에서 다시 부산으로 운송을 할 거라 했지만, 별도의 운송비를 요구하기도 했고, 내가 옆에서 보지 않는 상황에서 타인의 손에 의해 작품들이 이리 저리로 운송이 되는 것에 민감하기도 했으며, 현장에서 설치되는 과정도 보고 싶어서 직접 작품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장거리 운전과 작품을 좁은 승용차에 포장해서 싣는 것에 대해 매우 긴장을 하며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전 날 여행가방을 꾸리는 데에도 몇 시간이 걸렸다.


현장에 도착했는데 뭔가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내 작품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고, 내 작품이 지닌 순수성과 밝은 색감이 주는 에너지에 나름의 기대와 준비를 했다. 그런데 해당 부스를 가르는 가운데 칸막이의 양면 중 한 면이 내게 할당된 전시면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발견하고 황당한 좌절감이 몰려왔다. 겉에서 보았을 때 내 작품은 전혀 보이지 않고 세로로 긴 가벽의 모서리만 눈에 들어왔다. 다른 작가들이 나름 이런 페어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라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의 서열이 작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당당히 참가비를 내고 참여한 작가이고, 그렇게 하면서도 참가를 결정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보이고 싶은 이유가 컸다. 사전에 공간 계획에 대해 들은 바도 없고, 계약서 같은 것도 작성하지 않았으나, 연배가 있는 지인 작가가 중간에서 소개를 시켜준 자리이기도 하고, 이 분야의 관례가 그려려니 하는 것도 감안하고 있었다. 페어 참가가 처음이고, 질문을 하거나 계약서를 요구하는 등의 합리적인 소통 자체에도 매우 공격적으로 느끼는 게 한국 예술계의 문화라는 것도 오랜 경험을 통해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얼굴도 못 본 사람들 사이에서 괜히 뭔가 낯선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기엔 스스로도 민망할 정도로 주먹구구인 관행들이 많아서 생략하겠지만(사실 그 부분이 더 궁금하고 흥미로운 얘깃거리이겠지만, 너무나 민망하고 거기까지 얘기하기엔 스스로 침을 뱉는 것 같아 언급하기가 꺼려진다. 이런 모호한 문장법은 나의 스타일이 전혀 아니지만, 그냥 모호한 채로 남겨두고자 한다. 사실 그 부분이 더 필요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혹자가 궁금해한다면, 사석에서 얘기를 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아니면, 나만 몰랐고 이미 누군가는 다 알고 있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가끔 나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거나, 나만 모르고 다른 사람은 알고 있는 그런 얘기들이 있는 것 같다), 예술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가 작품에 대한 소중한 취급과 존중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민망하게 느껴졌다. 페어가 팔기 위한 곳이지, 전시장과 다르다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아트페어에는 그래도 '아-트'가 나와야 하는, 일반 제조상품의 전시장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가는 게 궁극적으로는 여러 모로 장점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첫날부터 욕심과 기대를 내려두고, 그냥 하나의 경험으로서만 가치를 두기로 하고 이 여정을 즐기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나의 진지한 노력과 준비가 늘 세상에 늘 속는 위치에 놓이는 것 같아서 올해도 '역시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들에 대해 속상했다. 나는 운이 그리 내 편이 아닌 어떤 세상의 한 구석에 놓여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백하건대, 나는 예술가로서 이 나라가 정말 싫다. 떠날 수 있으면 떠나고 싶은데, 계속 떠나 있고 싶었는데, 방법을 모르겠다. 다음 생에 태어날 수 있다면 내 생긴 것은 그대로 두고,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고 싶다. 정말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얼마 전 호텔페어에서 본 작품들이 이곳에서도 똑같이 놓여있는 것을 많이 발견했다. 흥미로운 작가가 3-5명 정도 있던 것 같았다. 역시 나의 감성이 서양의 그것과 더 맞는지 대부분 외국작가였고, 아트페어에서 가장 비싼 값을 호가하는 작품들이었다. 누군가 전시장을 들어오면서, "다들 보따리 장사들이야, 볼 것도 없어, 어디 가나 본 작품들이 여기에도 또 있어"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얼핏 직설적인 이 말이 모욕적 이게도 들릴 수 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도 같았다. 내 작품들이 그런 자리에 있는 게 싫었다.


스레드라는 앱에는 회화작가들이 많이 발견된다. 그림을 얼마나 많이 오래 그렸는지를 내세우면서 회화의 '기본'에 대한 논란도 종종 보인다. 나는 '기본'이라는 말만큼 어렵고 모호한 게 없다고 생각하며, 나도 '기본'과 '기술'을 중시 여기지만, 그에 대한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작품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며, 작가가 도달하려는 어떤 목적에 충족하고 있느냐는 작가의 주관적 판단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기본'을 따지면서 어느 아카데미의 교육을 받았는지 강조하고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에 비해, 호텔페어를 비롯하여 국내 3대 아트페어라는 이 전시장의 레이아웃과 각 부스의 작품 레이아웃이 '조형'이라는 기본적 수준에서 어떻게 보였는가를 생각하면 그 논란이 상당히 모순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조형 요소의 일부는 공간과 색감을 구성하는 원리도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열띤 논쟁을 벌이는 아카데미를 거친 소위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이 부스와 전시기획과 작품들의 배치가 '아트페어'라는 것의 차별성에 기여를 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자신의 캔버스 안에서만 그런 요소들이 작용한다고 배운 게 아닌지 궁금하다. 전체 전시 기획과 각 부스를 차지한 갤러리의 운영방향에 작가 개인이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부분은 많이 없었고, 모든 부스와 갤러리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 경험을 통해 긍정적인 것은 굳이 세상에 뭔가 대단한 것이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이로 인해 나의 다음(next)에 대해 많은 영감어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대가 경험으로만 충족된다는 것은 어쩌면 부정적인 경험을 포장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겠지만, 진짜로 나는 경험에 대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그러지 않았으면 잘 보이지 않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대는 이제 외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기대를 만들고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별것이란 건 없다는 건 자신감이었고, 그건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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