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팔렸다
내 작품은 회화의 형식을 띠고 있더라 하더라도, 춤과 음악과 문학과 회화와 조형적인 그 모든 것의 통합적 결과물이다. 그래서 나의 길은 힘들 수밖에 없지만, 그게 바로 가장 강력한 예술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창의적 결과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이 길을 지속하고 있다.
외부 사회적 문맥으로 나를 본다면, 하나의 장르적 특성과 비슷한 교육과정을 거쳐 맺어지는 인맥, 이후 각종 협회로 이어지는 집단의 권익을 주로 강조하는 현재의 대한민국 예술계에서는 여러 면에서 현실적으로 매우 불리하고도 취약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또한 창작 예술가로서는 매우 강한 무기가 된다. 결국 예술가는 그의 삶의 행보, 작품으로서 바라봐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같은데 다른 작품이 나올 리 만무하다. 나는 창의성의 발현이란 개인적 감각 경험의 알 수 없는 무의식적 조합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정성과 창의성은 공존이 어렵다. 그렇다고 한 쪽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다. 그것도 내 개인의 기준이고, 다른 사람의 기준이 어떻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예술가로서 나의 목표가 정치적 입지와 같은 것이었다면, 나는 전혀 다른 과정을 겪거나 아예 이 길을 시작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목표는 나다운 삶과, 행복한 인생, 어디에도 없는 창의적 결과물, 나의 기준을 충족하는 양질의 작품을 만드는 이 삶의 최대치를 지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사회적 인간이기 때문에 이런 생을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력 확보, 사회적 인정욕구라는 모순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괴로울 때도 있다. '이왕이면' 내 작품을 바라봐주고, '이왕이면' 작품에 담긴 것들을 모두 발견해 주길 바라는 사회적 소통의 욕구가 내 본질적인 즐거움을 넘어뜨리지 않기 위해 늘 주의하고 있다.
맨 위에서 언급한 부분들 때문에 각 장르별 영역에 들어가서 무엇을 내보여야 할 때, 나는 약간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막연하지만 해당 장르에 속하는 많은 이들로부터 나올 어떤 비난 같은 부분이 무엇일지 예상하는 바가 있고, 이들의 경험치가 나와 다를 수 있는 부분에서 내가 마치 건강한 몸에 들어온 세균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질적인 어떤 것이 집단 내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일단 자동적으로 방어적이 되고, 공격성을 지닌 백혈구처럼 반응을 한다. 그건 그런 반응을 경험한 내 의식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가지로 이 아트페어는 암묵의 전쟁터에 첫발을 내딛는 것과 같았다. 이질적인 것과 변화는 전체 예술계를 고려할 때에는 긍정적인 것이나 그 안의 개개인에 대해서는 거슬리는 경쟁자일 수도 있고, 편안한 일상을 깨뜨리는 두려운 침입자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이런 것들을 살면서 많이 경험했다. 이를 위해 사전에 흔들리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다행히 내가 참여한 갤러리 관장과 참여 작가들은 연배가 있어서 그런지 다름을 받아들이는 넓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각자의 생각은 다르겠으나, 내 작품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심지어 일부는 내 팬이 되어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래서 진심으로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그 또한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머글과 슬리더린 마법사 혈통들처럼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알고 있다. 적절히 거리를 둬야 서로 관계가 유지될 것이다. 내 작품이 이들이나 관람객들과 소통이 될만한 것이라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전시 4일째 마지막 날, 나의 머릿속은 아트페어를 떠나 이후 이루고 싶은 나의 꿈들과 자신감, 그리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작품에 대한 영감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내 작품과 내 삶의 경험치가 지닌 가치를 더 구체적으로 보게 되었다. 전시장에 나오기 전에 가격책정이 어려웠는데, 내 작품은 아직 팔 때도 아니고, 제시한 낮은 가격으로도 팔면 안 될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난 내 작품이 더 좋아졌다. 사려는 작품 앞에서 작품이 좋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좋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작가로서 똑같이 해당 작품에 대해 더 욕심을 내게 된다.
3일 내내 별로 사람들이 없어서 작품철수까지 3시간 남짓 남은 마지막 날 오후에 무슨 일이 있으랴 싶어, 그제야 한시름 놓으면서 편히 혼자서 로비에 있는 한적한 커피숍에서 내 팬이라 자처한 한 참여작가와 작품에 대해 더 수다를 떨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차피 팔리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혹시나 해서 장난 삼아 그간 낮게 책정되었다 생각하는 작품에 몰래 가격 앞에 볼펜으로 1자를 더해 넣고 나왔다. 한껏 간만의 여유로운 수다를 떨고 전화를 끊으니 30분 전에 내 작품이 팔렸다고 나를 찾는 카톡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순간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에 잽싸게 전시장으로 달려갔다. 나 대신 관장이 찍은 작품사진과 함께 작품이 없어져 버렸다. 누군가가 나머지 걸려 있는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무엇을 결정할지 몰라 입에 지갑을 물고 흥정을 하는 중이었다. 친구가 나 같은 사람들은 결정장애가 있어서 비슷한 것들을 여러 개 걸으면 오히려 사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며 서로 다른 작품들을 몇 개만 전시하라고 제안했는데, 그 관람객이 이것도 저것도 사고 싶다며 살 것처럼 딱 그러고 한동안 서 있다가 가버렸다. 나는 누군가 내 작품을 여러 개 사고 싶어 지갑을 입에 물고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몰랐는데, 아트페어에서 작품이 가장 많이 팔리는 때가 마지막날 오후부터인 듯했다. 가장 치열한 거래의 시간을 관찰할 중요한 시간에 커피숍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간 관람객들의 눈빛은 구매력에 반짝거렸고, 관장은 전날까지와는 다르게 매우 적극적으로 판매활동을 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아트페어에 나가는 결정을 한 뒤, 엄마가 이 얘기를 지인 작가에게 전해 듣고 전화를 해서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과 함께, 돈을 내고 하는 전시에 관장이 네 작품을 적극적으로 팔아줄 것 같으냐며 길길이 화를 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이 당시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작품을 홍보하러 가는 목적이 더 크고, 개인 전시보다는 여러 면에서 비용이 낮고, 관람객 유입이 수적으로 유리하며, 작품이야 보는 사람들이 좋으면 사는 거지, 누가 팔려고 한다고 팔리는 건가 싶어 말다툼을 했다. 무엇보다 나는 다른 작품이 가지지 않은, 내 작품이 가진 에너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물론 보이지도 않는 자리에 걸린 것부터 실망스러웠지만 말이다. 관장은 전시 기간 중 문득 '나 작품 잘 팔아요'라든지', '오늘은 저 작가의 작품을 좀 팔아봐야겠다'라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는데, 그제야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해할 것 같았다. 관장이 적극적으로 서 있는 곳에 관람객이 열심히 설명을 들었고, 물론 그게 구매로 모두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그곳에 서 있는 시간이 길었다.
얼마 전 방문했던 자동차 대리점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대부분 차를 구매할 때 본인의 선호도와 각 차량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가지고 대리점에 방문한다. 나처럼 자동차를 그다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대략 어느 브랜드의 어떤 모델을 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대리점에 방문한다. 그 대리점에 방문했을 때, 영업사원이 나와서 내가 의도하지 않은 차량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원래 관심이 있던 차량에 대해 물었는데, 단박에 "그 차는 별로라 추천하고 싶지 않아서요"라며 다른 차에 대해서 열심히 장점을 설명했다. 그가 더 전문가라 생각한 나는 그의 말을 따르게 되었다. 결국 그날 나는 해당 차를 보지도 않고 나왔다. 이후 동생을 통해 다른 대리점의 영업사원을 소개받아 해당 차를 사게 되었는데, 그 영업사원은 내가 묻기도 전에 원래 내가 관심을 보이던 차량을 먼저 적극 추천했다. 나는 그 차를 다른 대리점에서는 추천하지 않더라는 얘기를 했더니, "차는 좋은데 다른 차를 팔고 싶어서 그랬을 거예요. 인기가 많아서 출고 대기 시간도 몇 개월이나 걸리거든요. 지금은 출고 기간이 단축되었어요. 제 와이프도 이 차를 타요. 차는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다. 영업사원의 역할을 갤러리 관장이라고 생각하면 관람객의 호불호가 있다 하더라도 관장의 영업활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또한 무작위적인 잠재 관람객 구매자를 위한 이런 전시가 아니라면, 이미 형성된 개인의 사적 인맥(잠재 컬렉터)의 역량에 따라 특정 작품이 팔리고 안 팔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시장에서 어떤 것이 얼마에 얼마큼 팔렸다는 뉴스를 접하면, 많은 경우 '그 작가의 작품이 좋구나'라는 막연한 인식을 따라서 갖게 된다. 이 부분이 참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이다.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본다면, 좋고 나쁜 작품의 기준이 애매한 작품의 구매와 영향력, 가격책정과 그로 인한 인지도의 확산은 사실 갤러리 관장 혹은 갤러리스트의 역량과 선호도에 따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게 그렇게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예술작품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는 어느 정도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예술시장의 전체를 내가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은 전혀 못된다. 팔고 말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내게 '시장'과 경제 논리는 이제부터 생각해봐야 할 나의 무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전혀 못해봤는데, 작품뿐만 아니라 주식이나, 부동산, 제품, 브랜드 등, 사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렇게 가격이 책정되고, 힘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새롭게 바라봐야 할 것 같은 인식을 갖게 되었다. 내가 작품 하는데만 신경을 쓰다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하나도 몰랐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넓혀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맞는 것일까? 아니, 내게 맞는 것일까? 내가 그간 정말 멍청하게 살아온 것일까?'라고 질문한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방법과 관점들 사이에서 무엇이 전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며, 내 삶이 그렇다고 헛되거나 쓸모없었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는 듯하다는 현재의 생각이다.
마지막 날, 총 2개의 작품이 팔렸다. 함께 참여한 작가들 중에서 나를 포함한 일부 작가의 작품만 팔리고 나머지는 전혀 안 팔렸다. 가격이 그리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쓴 비용을 상쇄할 만한 금액이었다. 그런데 내가 기분이 좋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작품 왜 팔았냐고 나를 소개해준 지인 작가에게 단호하게 따졌다. 그 작가분은 황당했을지도 모르겠다. 딴에는 좋은 일 해주고 욕을 먹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간 하지 못했던 나의 전시 참가 소회를 조목조목 터놓을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인 것은 이 글에 모두 밝힐 수는 없다. 그가 매우 존경할 만한 귀한 예술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마지막 날 전시장에 왔던 그 지인 작가분에게 다른 작품들은 다 팔고 내 작품은 절대 팔지 말라고 당부를 하며 커피숍으로 간 것이었는데, 그 지인 작가분이 괜히 내게 미안했는지 열심히 영업활동을 했던 모양이었다.(왜 그 작가가 영업까지 솔선수범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진심으로 팔지 않기를 바랐던 건데, 으레 예상했던 어떤 공식적인 절차 (예를 들면, 작품보증서나 작품과의 기념사진 등)도 없이 함께 여행 왔던 작품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내 작품을 당장 헐값에 팔기보다는 전시를 통해 더 알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생각하게 된 것이지만 당시 판매 수수료 분배도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아트페어에서는 사람들이 바로 벽에서 작품을 떼어내어 발포지 같은 것으로 포장해서 가져가는 것 같기는 했다. 내 작품이 가서 무명작가의 것이라고 어디서 푸바오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닌지 자꾸 생각이 났다. 두 작품이 비어버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뭔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구분이 새삼스러웠다.
나는 이후 이 작가를 통해 '천재 꼴통'이란 별명을 얻었다. (마지막 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