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근원적 질문
스튜디오에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누군가가 찾아왔다. 그녀는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많은 방문자들이 그랬듯이 '여기 이런 곳이 있었네요'라며 공간을 휘둥그레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내 스튜디오의 존재를 잘 모른다. 오래전부터 안으로 사람들을 잘 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문을 열어 놓으면 그제야 누군가가 안을 들여다보면서 '안이 이렇게 생겼네요'라며 신기해한다. 그녀는 스튜디오 안에 있는 작품들과 나에 대해 매우 궁금해했는데, 잘 모른다고 하면서도 곧잘 자신이 보고 느낀 인상을 직관적으로 토해내었다. 나는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관찰하고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해 주는 말을 좋아한다. 특히 예술감상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은 어설픈 현학적 예술전공자들보다 오히려 투명하게 내가 작품에 담은 것을 그대로 읽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더니 그녀가 이렇게 말을 했다.
"여기는 비어있지만 모든 걸 시도해 볼 수 있는 느낌이 들어요. 공간을 들어서면 온화한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계속 앉아있게 되는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내 긴 여정의 근원적인 출발점이 무엇이었던가를 환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내가 어쩌다 왠 아트페어에까지 오게 되었을까? 본질적인 것은 아트페어에서 그림을 파는 화가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나의 긴 여정에서 잠시 머물게 된 하나의 정박지에 불과했다. 그 정박지에서 나를 어떻게 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휘둘려 잠시 잊을 뻔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존. 재. 감.... 존재의 감.... 바로 그거였다. 내가 오랫동안 찾고 있던 것......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투명인간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많이 있었다. 비 오는 날에 옷을 모두 벗고 북적거리는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나를 아무도 아는 체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군중 속에 묻혀서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을 사람인 느낌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지금의 나를 겉으로 보면 내가 그럴 거라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겠지만, 나는 매우 소심했고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늘 내성적이거나 소극적이라는 말이 쓰여 있어서 그게 무슨 뜻인지 집에다 묻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이런 내가 싫어서 소위 '날라리'같은 아이들 틈에 끼어서 함께 어울려 다니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아처럼 그룹 지어진 학생들의 명단에도 내 이름은 빠져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거기에도 속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냥 조용한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나는 내가 어디에도 없는 사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뭔가 어중간한 상태로 있다가 그다지 무언가에 몰입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일까.
오래전 어느 날 내게 질문을 했다. 내가 만일 당장 사막에 있게 된다면, 나는 누구일까 질문을 하게 된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나'라는 게 무엇일까? 내가 없었다. (요즘 사람들이 유행처럼 '나'찾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오래전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 여정을 실행에 옮겨 현재에 이르렀다. 그건 감상에 젖어 내뱉는 말이 아니고, 그것을 실행하는 자의 처절한 말이어야 할 것이다. 그 여정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작성 중이라 이곳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을 통해 유명한 사람이 되거나, 대단한 권력과 자본을 누리려고 현재의 삶을 파고든 것이 아니었다. 잠시 내 근원적 질문을 잊고 있던 것 같다. 나는 아주 오래전 그냥 내가 되고 싶었다. (이 말도 사람들이 요즘 유행처럼 쓰고 있긴 하지만, 오래전 나 스스로 다짐한 나의 소원이었다. 비슷한 사람들의 우연한 공감대인지 모르겠으나, 이전에도 지금도 나는 나를 찾아 헤매었고, 그냥 내가 되어 살고 싶은 바람에는 변함이 없으며, 그래서 '영선아트'라는 내 장르까지 만들어 나의 작품을 창작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냥 내가 되어 산다는 말은 세상의 섬, 생긴대로의 낯선 소우주가 된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세상이 나를 동경하든지, 등을 지든지 둘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나'인 사람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적당히 서로의 비위를 맞추며 일부를 타협하거나 하얀 거짓을 말하며, 비슷해 보이는 '우리'로 살아가야 제도 내에서 '착한'사람도 되고 '아름다운' 세상도 되는 것 같다. 내가 나일 때, 세상은 여지없이 극단으로 나뉘었다. 인간 개개인의 '나'라는 것이 표출되었을 때, 극히 이질감을 가진 상대의 낯섦을 직면하는 매우 무서운 경험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 이질감이 모두에게 존재하는 사실임에도, 막상 그 이질감을 접했을 때, 사람들은 왠지 모를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내가 나인 게 좋다. 언젠가는 다시 '나'가 아닌 엇비슷한 '우리'라는 사회적 페르소나로 살아가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지만, 우선은 내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조차 못하고 살던 때와는 다를 것 같다. 나와 타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아가 흐릿하게 뭉개진 상태에서는 나를 감춘 것도 타협한 것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야 궁극적으로 타협도 하고 감추기도 할 것 같았다.
내가 나를 다 알지는 못할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끈질기게 찾아서 오랜 여정을 헤매었는데, 마치 '유레카'의 순간처럼 최근에서야 그게 무엇인지 하나의 일면을 발견하게 된 느낌이 들었다. '나'라는 것은 결국은 '존재감', 즉 '존재의 감'이었다. 그것은 이름표도 생김새도 아닌 어떤 사람을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감', 말 그대로 그냥 유일한 '그 사람', '한 인간'이었다. 이 방문객이 내게 '나'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말해주었고, 나는 우연히 '나'가 무엇이고, 그게 어떤 개념인지를 드디어 찾게 되었다. 공간이 비어있음을 의미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공간을 각기 다른 한 사람처럼 인지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람을 구별하여 기억하는 것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에 대한 '감'과 같은 것이 아닐까? 물론 외부적인 타이틀이나 경력사항도 한 사람을 인식하는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런 외양적인 설명서로 한 개인을 인지한다는 것이 전혀 다른 개념처럼 느껴진다. 어떤 나에 대한 '감' 혹은 '에너지', '기운', 보이지 않는 그것들이 '나'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게 '나'였다.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한 연극 워크숍을 들을 적이 있었는데, 과정 중에 지속적으로 학습자들 앞에서 무언가를 발표해 보이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진행자가 유독 나를 파고들듯이 내게서 자꾸 무언가를 끌어내려고 했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나도 무척이나 답답했었다. 그때 처음 그가 '존재감'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을 듣고 그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게 뭔지 이해하기가 힘들어서 한동안 매우 고민했었다. 그 진행자는 내 차례만 되면 자꾸 이것저것을 시켜보면서 "너는 전에 연극해 본 적이 없니? 연극 해 봤던 것 같은데... 쟤는 '존재감'이 있어서 조금만 하면 아주 잘할 것 같은데, 자꾸 뭘 하려고 하네"라며 몹시 안타깝고도 답답해했다. 나는 지금은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시의 참여자들에게 "도대체 존재감이 뭐야?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뭘 하라고 시켜놓고 왜 또 뭘 하지 말라는 건데?"라며 묻고는 했다.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내게 설명하기 힘들어했는데, 그것이 있다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며, 내게 그게 있다고도 했다.
나는 '존재감'에 대한 질문을 이후 집요하게 궁금해했는데, 결국 무대에서 그것을 알게 되었다. 존재감을 영어로 하면 'presence'이다. presence는 현재라는 단어 'present'와 어원이 같다. 현재 여기에 있는 그것, 나의 말로 다시 말하면 이 순간과 공간에 싱크로율 100%로 온전히 몰입해 있는, 그저 존재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이를 개인화시켜 말하자면, '현재 이전과 이후의 어느 것에도 비켜가지 않고 어떤 공간과 타인의 통제 없이 존재하는 나로서의 모든 것을 하나도 숨김없이 내보인 채 그대로 있는 것'쯤 되겠다. 그 오래 전의 나처럼 '존재감'이란 경험하지 않고는 참 설명하기 힘든 단어임이 분명하다.
내가 처음 무대에 섰을 때, 그건 마치 고요한 호숫가에 나르시서스가 처음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과 같았다. (나르시서스에 대한 나의 시각 또한 별도의 글로 공개할 생각이다. 나는 심리학자들이 그렇게도 비난하는 나르시시즘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르시서스만큼 자신을 발견하지도 못한 채 죽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의 원문을 나름 해석하자면 나르시서스는 병적이고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을 발견한 자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나르시서스의 이야기를 심리학적 병증으로만 규정하고 원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부정적으로만 곡해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과 타인은 사라지고 그곳엔 오로지 나만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나를 발견했는데 그 '나'라는 게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기가 참 곤란했다. 그런데, 스튜디오의 방문객이 내게 해준 말 한마디에 그것이 무엇인지 '존재감'이란 말을 빌어 조금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트페어에 작품을 팔고 말고 하는 화가 혹은 시각예술가 이전에 '나'라고 생각하는 내 안의 세계를 밖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이고, 그 이전에 그냥 나이고 싶은, 그런데 그 '나'가 뭔지 몰라서 '나를' 찾아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꾸 만들어서 세상 밖으로 내어놓는 그냥 '나'가 되고 싶은 탐색의 여정에 있던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무용하는 사람들과도, 영어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과도, 글을 쓰는 사람들과도, 미술을 하는 사람들과도 뭔가 비슷은 하지만, 전혀 같은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나를 찾고 싶었고, 그건 비어있는 공간도 각각의 정체성이 있는 것처럼, 내 안에서 퍼져 나오는 어떤 '감', '느낌'이라는 정체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바로 내가 아는 잘 알려진 예술가나 작품이 지닌 특성이기도 하다. 특히 현대 예술에서 내가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 건 그걸 만든 사람이 그냥 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고흐나 피카소나 서태지나, 그들은 그냥 그들 자신이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도 무슨 예술 이론가들이 떠드는 예술사조나 기법 등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들 자신이었고, 그들 자신만의 존재감이 오로지 빛나는 작품들이었기에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에 대해서 처음 깊게 접했을 때, 나는 그 오래전에 '예술가란 자기 자신과 가장 닮아 있는 사람'이라는 나름의 정의를 가지고 나의 여정도 시작을 했다. 어떤 장르나 결과물도 부귀영화도 아니었다.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었다.
여정을 시작하면서 중간중간 마치 한 정거장을 지나치듯이 내 무용작품이 내 이름을 달고 내가 되기 시작했으며, 그다음엔 어쩌다 그리게 된 그림과 이를 별생각 없이 버리려 했을 때 우연히 작업실에 놀러 왔던 다른 작가들이 '그림에 느낌이 있다'라는, 마치 연극이나 무용과 같은 공연예술계에서 무대 위의 '존재감'을 언급하듯이 '느낌'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을 듣고, 시각예술의 존재감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나 남이 그런 말을 내게 언급했다고 해서 내가 온전히 이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막연히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는 느끼거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어느샌가 보이고 느껴지기 시작하고, 그건 '나'라는 것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예전의 다른 작가들이나 먼저 공연을 시작한 많은 공연예술인이 그랬듯이 타인이나 타인의 작품에서도 그런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아트페어로 이어지는 나의 여정에 있어, 나는 하나를 일관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중간의 여정만 관찰한 타인들과의 마주침에서 내가 단편적인 어떤 사람, 혹은 어떤 것에 처음인 사람처럼 여겨지고, 또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내가 갑자기 화가가 된 사람쯤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별 대응을 하지 않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 그건 국내의 예술에 대한 장르구분적인 인식과, 인문학적 세계관이나 철학보다는 보이는 기술로부터 시작하는 예술에 대한 접근법이 우세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묻어가듯 맞춰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것, 이 여정의 정체성을 아트페어를 거치는 동안 재고하게 되었다. 나는 추후에 기회가 되면 아트페어에 나갈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지금 아트페어에서 많은 작가들이 하고 있는 방식으로의 거래나 전시방식 (비록 다양한 성격의 아트페어 중 단지 하나의 경험치였지만)은 '나'와는 맞지 않다고 느꼈다. 갤러리 관장과 나를 소개한 지인 작가는 내게 다음 아트페어를 제안하며 심지어는 갤러리에서 키우겠다고도 말을 했다. 그런데, 나는 아트페어 이후 여러 이유로 일부러 이들과 관계가 멀어졌다. 나는 이들이 생각하듯이 '초짜'가 아니었고 (국내에는 세부 장르 전공자가 아니면 마치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거라는 편견과 함께 상대를 초짜 취급을 하는 이상하고 못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관행이 있다), 이들은 나를 감당할만한 존재도 아니었다. 나는 이미 커져있었고, 작은 갤러리에서 가둬질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팔고 말고의 장으로 내 작품을 판단받는 것이 당장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용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세부장르가 아닌 '예술'이라는 더 큰 울타리에 나의 장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다원창작예술가 (Multidisciplinary, Young Sun Art)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나의 페어와, 나의 기획과, 나의 장이 필요한 것이었고, '나'라는 삶의 길은 결국 내가 모두 개척해야 할 부분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였다.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세계를 구현해 내는 사람. 나는 나의 작품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까지 창조해야 하는 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어쩌면 내가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루었는지 모른다.
세상과 현실로 나를 확장시키는 소통의 문제는 오랜 숙제처럼 느껴진다. 그 문제는 아직도 해결책을 모르는 채 막혀있다. 세상은 예술이라도 그 본질보다는 겉으로 쌓아지는 경력을 더 중시 여기는 경향이 있으며, 취향을 너머 예술의 본질까지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매우 소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외부의 판단을 받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진 것을 믿기 때문이고, 그런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를 잃을 것을, 즉, 본질을 타협하거나 해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을 걷어내었을 때, 나라는 존재가 가진 가치'에 대한 의문에서 이 길고 엉뚱한 여정을 시작했는데, 코로나 이후 최근 몇 년 새 잠시 길을 잃은 듯했다. 그런데, 내 근원적 질문을 다시 기억해 냈을 때, 겉으로 쌓이는 것을 싫어했던 그간의 삶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이제 더 뚜렷이 생각났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고, 이제야 내가 버리고 다시 가지게 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무것도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이젠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왜 내 모든 예술은 나이고, 내 이름을 달고 있는지,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의 결과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졌던 혼란 속에서, 내가 찾은 것은 나의 비어있지만 비어있지 않은 빈 공간처럼 나의 현재의 삶과 내 존재의 가치는 헛된 것이 없었다. 나는 내 삶의 존재감, '지금 그리고 여기 (Present)'에 잘 안착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