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아 인적이 드문 늪의 안쪽을 걷다가 작년 여름에 휘몰아친 태풍에 꺾이고 쓰러진 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나무들은 가지가 꺾이고 휜 상태로 다른 나뭇가지 위로 쓰러져 있거나 땅으로 가지를 대고 있었다. 어떤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뿌리가 다 드러난 채로 땅 위에 누워있었다. 뽑힌 뿌리 아래로 동그랗게 패인 땅은 어느새 무른 습지의 물이 차올라서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나무는 다시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곳은 얼핏 뼈가 부러지고 휘어진 온갖 종류의 골절과 척추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모아 놓은 중환자실처럼 보였다.
오래전, 응급실의 문이 열리고 들것에 실려왔던 수많은 환자들이 생각났다. 이런저런 이유로 뼈가 부서지고 꺾이고 살점 아래 뼈가 허옇게 드러난 환자들의 신음과 아우성이 머릿속을 울렸다. 아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최선을 다해 제자리를 벗어난 뼈들을 맞추고 부서진 것들을 이어 나가면서 모든 것들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야만 했다. 어떤 환자들의 문제는 의사의 삶에 전이되어 오랫동안 그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나무들은 아무런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부러지고 휘어지고 쓰러진 것을 애써 다시 세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다시 하늘을 향해 새로운 잎과 가지를 뻗어 생명을 이어갔다. 나무들은 특별히 아파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았다. 주변에 있는 성한 나무들은 상처 입은 나무들이 기대어 살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의 튼튼한 가지를 내어 주었다. 그들은 그저 다른 모습의 나무가 되었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긴 목을 가진 하얀 새와 동그란 몸통을 가진 새들은 나무를 가려 앉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친구가 되어 함께 살았다. 그에게는 아우성을 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아름답고 평온해 보이기까지 한 나무들의 생명력이 인간의 생명력보다 더 강인하게 보였다. 다친 나무는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나무가 향하는 곳은 자신의 꺾인 몸이 아니라 위로 펼쳐진 하늘이었다. 그는 숲 속 나무들과 새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내내 진료실에선 아무도 본 적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늘 아무도 없는 길을 따라 헤매듯이 늪을 거닐었다. 그는 길이 없는 풀숲으로 성큼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쩌다 풀숲 밖으로 인기척이 들려도 당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낯선 모습을 봐도 늪에 사는 이름 모를 동물이라고 여기고 흠칫 당황하며 알아서 오던 길을 되돌아 나갔다. 가로등도 없이 자연 그대로 내버려진 거대한 늪에서 느끼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은 실제 눈앞에 보이는 기괴한 것들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정말로 기괴한 것이 눈앞에 있어도 늪이기 때문에 이를 그다지 기괴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을 의심하기보다는 본인들의 두려움과 늪에 대한 낯섦이 그런 착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저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런 기괴한 것들이 주는 묘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정돈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한 생명력을 발견하러 이곳에 오는지도 몰랐다. 이곳의 나무와 풀들은 제멋대로의 질서에 따라 구불구불하고 거칠게 자라났다. 이곳은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자연이 존중을 받는 세상에 몇 안 되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에게도 이곳은 그가 본인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그의 사랑스러운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따로 있었지만, 그에게는 이곳이 더 실제 집처럼 느껴졌다. 늪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가족들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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