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끔 사람들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당시엔 내가 그 의미를 이해 못 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그런 말들을 던지고 지나간다.
그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먼 훗날 홀연히 깨달아지는 때가 있다.
그런 걸 보면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있는 개념인듯하다.
나는 '시간'이 중첩되어 있는 개념이고
거기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면 새로운 점이 시간의 선 위에 그려지고
그 점에서 시간이 가지처럼 뻗어가며
이미 존재하는 다른 선들과 뒤엉키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나의 상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세 개의 시간 개념이
인간 두뇌의 인지능력을 벗어난,
어떤 형태 아닌 합쳐진 형태를 한 어떤 것이지 않을까 상상한다.
언젠가 먼저 어떤 것을 깨달은 어떤 사람이
나도 신이고, 나무도 신이고, 새도 신이고, 이웃도 신이라고 했는데
그의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밤새 그게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는데
그는 그저 웃으며 제 갈길을 갔다.
어젯밤에 문득 그게 무슨 말인지 깨달아졌다.
나는 늘 '자유'하기를 희망했는데
그보다 훨씬 더 어렸을 적
누군가가 내게
무엇으로부터 자유하고 싶은지 물었다.
분명 자유하고 싶은 것은 맞는데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 질문은 늘 내 마음에 있었다.
그것도 어젯밤에 깨닫게 된 무언가와 맞닿아 있었다.
나는 요즘 내가 2000년에 들어서면서 그렇게 찾고자 했던 어떤 것
본질, 나, 혹은 자아에 대한 것이
확연해지는 어떤 여정의 끝에 다다르고 있는 것을 느낀다.
두 개의 상이 분리되어 초점이 맞지 않는 상태에서.
이 두 개가 온전히 명료한 하나가 되는 느낌이랄까.
더 이상 분리된 다른 하나를 찾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상태
그리고 그 합쳐진 상태를 그대로 수용하고 잊는 상태
그래서 그다음으로 나아가려는 상태
1층 정원이 있는 현재의 작업실에서
통창을 통해 보는 세상을 통해
무엇이 신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 그것에 온전히 몰입해서 사는 삶
그냥 그것이 되어, 존재에 대해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아도 되는 삶
두 개의 분리된 자아가 하나로 합쳐지고
과거와 미래의 개념이 현재와 완전히 일치되는 상태
그 언어조차도 필요 없는 상태
허상과 실체가 모호한 상태에서
거짓과 분열된 상태가 좀 더 명료해진 상태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지만,
말해도 모를 것 같고
그러면 안 되는 것 같다.
그건 스스로 찾아야만 깨달아지고 느끼는 어떤 것인데
전달이 불가능할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어떤 질문을 받았던 것처럼
아니면 어떤 지나가는 알 듯 모를듯한 문장을 듣고 잠시 멈춰 선 것처럼
내 글도, 내 문장도, 내 존재도 누군가에게 어떤 질문과 여정의 출발점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의 표현은 세상에 기여하고 있을 것 같다.
길을 잃었던 나에게
계속 따라가 보라고 던지는 하나의 불빛처럼
말없는, 생각 없는, 남이 보든 말든, 알아채든 말든
자신으로 그냥 있는, 주변에 있는 듯 없는 듯 있는
수많은 존재들이 보인다.
이것들이 바로 그것이었구나.
세상에 가장 강력한 신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바로 판다 바오네 패밀리가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상의 방식으로 일하지도 않고,
그렇게 생겨먹도록 스스로 의도하지도 않고,
게으르고,
잠자고 싶은 대로 자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그 흔한 설교도 하지 않고,
학교에서 뭘 배운 것도 없고,
심지어는 말도 못 하는데,
울음소리조차도 덩치에 눌리는데,
그저 태어나 생긴 대로 살고,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싫어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쏟아내도록 하고,
쏟아내면서도 치유를 받고,
더 많은 사랑을 차오르게 하고,
말없이 지켜보게 하고,
안타깝게 하고,
우리는 뜰에 있는 나무와 풀, 판다 가족들
이들처럼 살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나도 판다처럼 사랑을 세상에 많이 뿜어내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
그게 바로 신이 궁극에 원하는 거라고
아주 오래전 인간이 알아들을 만한 언어로 받아 적게 했는데
여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사랑'도 곡해된 인간의 편견어린 언어였지 않을까?
결국
가장 좋은 것을 누리라고 준 세상을
못 누리고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 걷어차 버렸던 어떤 책의 구절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일하지도 먹지도 않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지 말고...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구하라... 찾으라... '
문구가 정확한지는 않지만 굳이 그 오래된 책을 찾아 원문의 문구를 완성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종교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책에 나오는 신이 저런 말을 했을까...
그 신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깨달은 지혜와 통찰이 있는 존재였음엔 틀림없다.
잘난 인간에게 새를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내가 통창 밖 정원수를 본받고 있는 것처럼.
찾아야 할 것은 '진리'이고
그것이 뭔지는 궁금해하지 않은 채
성급히 자유하고만 싶었다.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말
그게 무엇인지 깨달아진다.
그게 왜 문득 어젯밤에 깨달아졌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누군가가 내 곁을 스쳐가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그 대답을 건네주고 간 것 같다.
우리는 그저 사랑할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냥 있는 오늘이다.
자.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