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진 비탈길이 있었고 대문이 있었다. 푸른색 대문이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의 기억이 이제는 희미해졌다.
대문 밖 비탈길에 뜨거운 물이 담긴 세숫대야가 있었다. 그것을 건드리면 물이 쏟아질 것이고, 엄마한테 혼날 것이고, 손이 델 것이 뻔했다. 그래도 건드려보고 싶었다. 작은 마음에 두 개의 선택지가 강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고집스러움의 대가는 역시나 손목의 화상이었다.
물은 쏟아져 내 팔목을 덮쳤고 내 기억은 거기에서 멈추었다. 얼마나 뜨겁고 아팠는지, 이후 엄마가 어떻게 했는지, 병원에 갔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여린 갈색의 착색이 작게 파도치는 물결의 가장자리처럼 내 팔목을 두르고 있었다. 크게 표시가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입은 화상의 흔적이라는 것은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어느샌가 다시 그 자국은 기억에서도 지워져 버렸다. 그만큼 내 피부가 태어나고 각질이 되어 떨어져 나가기를 오랫동안 반복했다는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