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은빛 머리의 외계인

by 이영선

도시의 각진 건물의 경계는 남겨둔,

아직은 다 검지 않은 짙은 회색의 어둠.

그 어둠보다 조금 더 짙은 물체가 공중을 배회했다.

낮은 소리를 내며 맴돌던 그것은

허공의 정점을 찾은 듯,

한 곳에서 미동도 하고 있지 않은 채,

고요한 밤을 더 무섭도록 고요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것의 입이 크게 벌어지고,

은색으로 빛나는 머리를 가진,
전에 보지 못했던 어떤 존재가 창으로 뛰어드는 걸 보았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언어로

소용돌이 같은 문장들을 빠르게 내지르고,

사람들의 존재를 탐하며 이들을 향해 다가왔다.

나도 이들처럼 숨을 죽여 내 존재를 감추려 하고 있었다.

허공에 멈춰있던 그 물체는,
전구색 불이 켜진 건물의 창을 향해 정확히 조준을 하고,
순식간에 포격을 퍼부었다.

불 켜진 창의 불은 곧 꺼지고,

도시는 아우성 없이 이들의 포격을 받아들였다.

이들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숨죽여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는 것일 뿐.


그때 눈치 없이 해맑은,
둥그런 배냇머리를 하고 있는 어린아이가
들고 있던 방울을 크게 흔들었다.

은빛 머리를 하고 얼굴이 세 갈래로 갈라진 모습을 하고 있던 그 실체는 ,

아이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커다란 포격을 맞은 듯,

오던 모습보다 더 빠르게,

창문밖으로 튕겨져 버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꽃의 철딱서니